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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취재기] 오는 길도 멀었는데 갈 길은 '너무' 먼 김정은 <하>

  • 정치 | 2019-03-04 05: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2일(현지시간)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평양행 전용 열차로 떠났다. 김 위원장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면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됐다. /랑선선(베트남)=AP/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2일(현지시간)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평양행 전용 열차로 떠났다. 김 위원장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면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됐다. /랑선선(베트남)=AP/뉴시스

현장서 느낀 북한의 여전했던 폐쇄성

[더팩트ㅣ하노이(베트남)=이원석 기자] 지난 2일 오후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베트남을 떠나 귀국길에 오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일 오후 여전히 선로 위에 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가는 길도 열차를 택한 김 위원장은 오는 5일께나 돼야 북한에 도착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출발해 베트남에 도착할 때까지 66시간이 걸린 바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김 위원장의 귀국길이 먼 것만큼이나 그가 간절히 바라는 북한의 발전 또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는 단순히 이번 회담이 결렬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회담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던 북한의 여전한 폐쇄성 때문이다. 현장에서 김 위원장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일정은 대부분이 비공개였다. 다른 루트를 통해 확인된 것 외에는 김 위원장 관련 거의 모든 정보에 대해 북측은 함구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 들어온 김 위원장이 랑선성 동당역에서 내릴 것이란 사실도 취재진이 알아낸 사실이지 북측에서 알린 바는 없다. 다들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김 위원장 숙소가 멜리아 호텔이란 사실도 확실해진 것은 당일에 가까워서였다.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 합의 무산 후 멜리아 호텔로 돌아간 김 위원장은 두문불출했다. 김 위원장 숙소 멜리아 호텔 앞을 북한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모습. /하노이(베트남)=임세준 기자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 합의 무산 후 멜리아 호텔로 돌아간 김 위원장은 두문불출했다. 김 위원장 숙소 멜리아 호텔 앞을 북한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모습. /하노이(베트남)=임세준 기자

물론 국가 정상의 경호를 위한 보안 유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 백악관도, 우리나라 청와대도 출입기자단에겐 취재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 정보들을 알린 뒤 엠바고(embargo, 일정 시간까지 어떤 기사에 대해 한시적으로 보도를 중지하는 것)를 활용한다. 이건 단순히 취재진의 편의를 위한 필요라고만 할 수는 없다.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다.

더한 일도 있었다. 애초 미국 백악관 기자들이 정상회담 기간 상주할 프레스센터는 김 위원장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 차려질 뻔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 도착한 지난달 26일 미국 프레스센터는 갑작스레 베트남-소련 우정노동문화궁전에 마련된 국제미디어센터(IMC)로 옮겨가게 됐다. 북한 측에서 거부 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작부터 멜리아 호텔로 거처를 정했던 백악관 측에선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설령 미국 측 프레스센터가 같은 호텔에 차려졌다고 하더라도 김 위원장은 통제된 고층부에서 묵었고, 거의 분리된 공간이나 다름없었을 것이었다. 무엇이 걱정됐던 것일까.

달라진 모습도 있던 것은 사실이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회담 직전 백악관 출입기자의 질문에 이례적으로 답변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지의 데이비드 나카무라 기자는 김 위원장에게 '협상을 타결할 자신이 있느냐'고 질문했고, 김 위원장은 "속단하긴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직감으로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고 답변했다. 이후 확대회담 자리에서도 '비핵화 준비가 됐느냐'는 질문에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의 회담 결렬 직후인 지난달 28일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 /임세준 기자
김 위원장과의 회담 결렬 직후인 지난달 28일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 /임세준 기자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회담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회담장을 나와 각각 숙소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기자회견(원래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회담 결렬로 인해 2시간 당겨 진행)을 열고 회담 결렬 이유 등 질문에 약 40분 동안 답했다. 기자회견엔 백악관 출입 외 언론사들도 사전 신청을 통해 참석할 수 있었다.

반면 김 위원장은 멜리아 호텔에 들어가 두문불출했다. 그러더니 자정을 넘겨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김 위원장 대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한 반박 성격의 회견이었다. 회견이 열린다는 사실은 일부 언론에만 전해졌고, 현장엔 극소수 취재진만 들어갈 수 있었다. 기자회견 소식에 옷을 대충 입고 죽어라 뛰었지만, 결국 회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회담장에서 리 외무상은 시작부터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통보한 뒤 입장문을 다 읽고는 퇴장했다. 지극히 일방적인 기자회견에 불과했다.

최선희 외무상 부상이 짧게 질의응답에 응했지만, 입장문을 읽었던 시간까지 모두 합해 10분 정도였다. 모든 면에서 미국과는 크게 대조적이었다. 이 짧은 기자회견을 위해 뛰었다는 게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론 북한은 역시 북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누구를 위한 기자회견이었을까. 결국엔 자신들이 엄청나게 양보했다는 점과 미국이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던 것 같아 씁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결렬 후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김 위원장은 베트남에서 예정했던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의장대 사열을 받는 가운데 굳은 표정의 김 위원장. /하노이(베트남)=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결렬 후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김 위원장은 베트남에서 예정했던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의장대 사열을 받는 가운데 굳은 표정의 김 위원장. /하노이(베트남)=AP/뉴시스

트럼프는 떠나고, 김 위원장은 하노이에 남아 공식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응웬 푸 쫑 베트남 주석과 만났던 1일, 포착된 김 위원장 표정은 시무룩했다. 회담 무산에 대한 김 위원장의 우울한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북한이 완전한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에 반박하며 'UN 제재의 일부, 즉 민수 경제와 특히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힌 북측 기자회견 내용만 봐도 현재 북한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짐작이 간다.

김 위원장이 현재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건 북한의 경제 발전이다. 그에 대한 조건이 핵 무기라는 사실 자체가 정상적이진 않지만, 김 위원장이 진정으로 상황이 달라지길 바란다면 굳게 잠가 놓은 사소한 자물쇠부터 풀어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노이에서처럼 여전히 폐쇄적인 모습을 고수한다면 전 세계 그 어떤 국가로부터도 신뢰를 얻어낼 수 없다. 제재 수위에 대한 미국 측 주장이 설령 거짓말이라고 해도 현재 같은 모습으론 아무도 북한을 믿을 수 없다.


lws2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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