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느낀 북한의 여전했던 폐쇄성
[더팩트ㅣ하노이(베트남)=이원석 기자] 지난 2일 오후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베트남을 떠나 귀국길에 오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일 오후 여전히 선로 위에 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가는 길도 열차를 택한 김 위원장은 오는 5일께나 돼야 북한에 도착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출발해 베트남에 도착할 때까지 66시간이 걸린 바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김 위원장의 귀국길이 먼 것만큼이나 그가 간절히 바라는 북한의 발전 또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는 단순히 이번 회담이 결렬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회담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던 북한의 여전한 폐쇄성 때문이다. 현장에서 김 위원장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일정은 대부분이 비공개였다. 다른 루트를 통해 확인된 것 외에는 김 위원장 관련 거의 모든 정보에 대해 북측은 함구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 들어온 김 위원장이 랑선성 동당역에서 내릴 것이란 사실도 취재진이 알아낸 사실이지 북측에서 알린 바는 없다. 다들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김 위원장 숙소가 멜리아 호텔이란 사실도 확실해진 것은 당일에 가까워서였다.
물론 국가 정상의 경호를 위한 보안 유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 백악관도, 우리나라 청와대도 출입기자단에겐 취재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 정보들을 알린 뒤 엠바고(embargo, 일정 시간까지 어떤 기사에 대해 한시적으로 보도를 중지하는 것)를 활용한다. 이건 단순히 취재진의 편의를 위한 필요라고만 할 수는 없다.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다.
더한 일도 있었다. 애초 미국 백악관 기자들이 정상회담 기간 상주할 프레스센터는 김 위원장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 차려질 뻔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 도착한 지난달 26일 미국 프레스센터는 갑작스레 베트남-소련 우정노동문화궁전에 마련된 국제미디어센터(IMC)로 옮겨가게 됐다. 북한 측에서 거부 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작부터 멜리아 호텔로 거처를 정했던 백악관 측에선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설령 미국 측 프레스센터가 같은 호텔에 차려졌다고 하더라도 김 위원장은 통제된 고층부에서 묵었고, 거의 분리된 공간이나 다름없었을 것이었다. 무엇이 걱정됐던 것일까.
달라진 모습도 있던 것은 사실이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회담 직전 백악관 출입기자의 질문에 이례적으로 답변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지의 데이비드 나카무라 기자는 김 위원장에게 '협상을 타결할 자신이 있느냐'고 질문했고, 김 위원장은 "속단하긴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직감으로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고 답변했다. 이후 확대회담 자리에서도 '비핵화 준비가 됐느냐'는 질문에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회담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회담장을 나와 각각 숙소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기자회견(원래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회담 결렬로 인해 2시간 당겨 진행)을 열고 회담 결렬 이유 등 질문에 약 40분 동안 답했다. 기자회견엔 백악관 출입 외 언론사들도 사전 신청을 통해 참석할 수 있었다.
반면 김 위원장은 멜리아 호텔에 들어가 두문불출했다. 그러더니 자정을 넘겨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김 위원장 대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한 반박 성격의 회견이었다. 회견이 열린다는 사실은 일부 언론에만 전해졌고, 현장엔 극소수 취재진만 들어갈 수 있었다. 기자회견 소식에 옷을 대충 입고 죽어라 뛰었지만, 결국 회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회담장에서 리 외무상은 시작부터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통보한 뒤 입장문을 다 읽고는 퇴장했다. 지극히 일방적인 기자회견에 불과했다.
최선희 외무상 부상이 짧게 질의응답에 응했지만, 입장문을 읽었던 시간까지 모두 합해 10분 정도였다. 모든 면에서 미국과는 크게 대조적이었다. 이 짧은 기자회견을 위해 뛰었다는 게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론 북한은 역시 북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누구를 위한 기자회견이었을까. 결국엔 자신들이 엄청나게 양보했다는 점과 미국이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던 것 같아 씁쓸했다.
트럼프는 떠나고, 김 위원장은 하노이에 남아 공식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응웬 푸 쫑 베트남 주석과 만났던 1일, 포착된 김 위원장 표정은 시무룩했다. 회담 무산에 대한 김 위원장의 우울한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북한이 완전한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에 반박하며 'UN 제재의 일부, 즉 민수 경제와 특히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힌 북측 기자회견 내용만 봐도 현재 북한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짐작이 간다.
김 위원장이 현재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건 북한의 경제 발전이다. 그에 대한 조건이 핵 무기라는 사실 자체가 정상적이진 않지만, 김 위원장이 진정으로 상황이 달라지길 바란다면 굳게 잠가 놓은 사소한 자물쇠부터 풀어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노이에서처럼 여전히 폐쇄적인 모습을 고수한다면 전 세계 그 어떤 국가로부터도 신뢰를 얻어낼 수 없다. 제재 수위에 대한 미국 측 주장이 설령 거짓말이라고 해도 현재 같은 모습으론 아무도 북한을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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