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민주당 의원 '공항 갑질' 논란… '규정 없는데 직원이 역갑질'?
[더팩트ㅣ김포국제공항=이원석 기자] "입장하시기 전에 신분증은 미리 꺼내서 준비해주세요."
성탄절 전날이던 24일 김포국제공항 3층 국내선 탑승 보안검색대 근처에 도착하자 이 같은 안내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공휴일을 앞둬서인지 대기하는 승객들이 많았지만, 보안요원들은 차례차례 승객들의 탑승권과 신분증을 유심히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실제 한 승객이 지갑 속에 있는 신분증을 제시하자 보안요원은 "신분증은 꺼내 달라"고 요구했다. 승객도 순순히 따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정호(경남 김해시 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항 갑질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 20일 김해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김포공항을 찾았다. 김 의원은 보안 검색 과정에서 보안요원 A 씨가 "신분증을 지갑 속에서 꺼내달라"고 요구하자 "내가 국토교통위원인데 그런 규정을 본 적이 없다. 규정이 있다면 제시하라"고 따졌다. 또 A 씨가 모 언론에 주장한 내용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은 언성을 높이며 '이새X들이 똑바로 근무 안 서네', '책임자 데려와라', '(보좌진에게) 야, 공사 사장한테 전화해!'라고 고압적 태도를 보였다.
논란이 커지자 김 의원은 사과했다. 김 의원은 SNS와 보도자료 등을 통해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 진심으로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보도가 '사실과 아예 다르거나 교묘하게 편집·과장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보안요원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일주일에 2회에서 많게는 6회까지 공항을 이용하면서 한 번도 보안요원이 지갑 속에 신분증을 꺼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면서 A 씨의 요구에 '규정을 제시하라'고 따졌고,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소 언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욕설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저는 평소에도 그랬고, 이날도 공항 이용에 있어 국회의원으로서 특권을 누리지 않았다. 정말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 공항 의전실도 이용하지 않는다"며 "국회의원에게도 이렇게 근거 없는 신분 확인 절차가 거칠고 불쾌하게 이뤄진다면, 시민들에게는 얼마나 더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길 바라는 시민의 입장에서 상식적인 문제 제기와 원칙적 항의를 한 것"이라고 했다.
<더팩트> 취재진이 직접 가본 김포공항에선 보안요원들이 여러 번 반복해서 승객들에게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국내선 탑승을 위해선 탑승권과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다. "탑승권과 신분증을 개인별로 미리 준비하시고 입장하기 바란다"는 안내방송이 계속해서 나왔고, 보안요원들은 육성으로 "신분증은 미리 꺼내주시기 바란다"고 승객들에게 재차 알렸다. 실제 승객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신분 확인을 받고 있었다.
김 의원은 A 씨와 승강이를 벌이면서 자신이 국토교통위원이지만 신분증을 꺼내서 확인한다는 규정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고, 해명 보도자료에서도 그러한 규정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제 지갑이나 여권 케이스 속에 든 신분증을 반드시 꺼내서 확인해야 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뉴시스>가 확보한 '항공보안 표준절차서'에는 '두 손으로 탑승권과 신분증을 받고 육안으로 일치여부를 확인하되, 위조 여부 등도 확인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보안요원이 위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분증을 꺼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취재진이 게이트 근처로 다가가 김 의원 논란과 관련 질문을 해도 되겠냐고 직접 묻자 보안요원들은 "대답할 수가 없다. 죄송하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 보안요원은 "저희 (대답하지 말라고) 얘기가 나왔다. 물어보실 거면 한국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에 전화해보라"고 했다. 또 다른 보안요원은 "근무 중엔 대답할 수 없다"면서도 '원래 신분증은 꺼내서 확인하냐'는 질문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항공사 측은 신분증을 지갑에서 꺼내 확인하라는 규정이 명확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공항공사 측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지갑에 들어 있으니 꺼내라는 규정이 명확히 글자로 적힌 것은 없다"면서도 "관공서나 은행을 가도 당연히 다 꺼내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현재 보안요원들이 신분증을 꺼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김 의원 논란) 사후에 조치된 것이냐'는 질문에 "평상시에도 똑같이 근무를 한다"고 했다.
공항 곳곳에서 보안검색과 관련된 여러 안내들을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안내문은 '출입통제 업무 중인 항공보안요원에 대해 업무방해·폭행·폭언 등 행위시 처벌을 받는다'고 알리고 있다. 김 의원은 상황 당시 욕설을 하진 않았으나 언성은 높였다고 시인했다. 자칫하면 '업무방해', '폭언' 등으로 판단될 수 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김 의원의 행동이 현행법상 충분히 처벌받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김 의원 갑질 소란은 항공보안법 23조 8항의 보안검색 적극적 방해 행위로서 범법행위다. 최대 징역형까지 가능한 보안검색 방해죄"라며 "보안검색 방해죄는 항공보안법 50조에 따르면 최고 징역 5년 내지 벌금 5,000만원 이하로 규정되어 있다. 공항직원의 경위서를 보면 김 의원은 그 직원에게 욕설뿐 아니라 보복을 암시하는 협박까지 했다"고 강조했다.
하 의원은 더나아가 관련 공항갑질폭언 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김 의원 행동의 경우 현재 항공보안법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즉각 체포할 수 있는 미국처럼 개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공항 곳곳에선 김 의원 논란에 대한 대화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한 공항 직원은 지인과 통화하면서 "공항 직원이 무슨 갑질을 하겠냐"고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한 중년 부부도 김 의원 논란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신분증은 원래 꺼내주는 거 아냐?"라며 의아해했다.
대다수 승객은 '김 의원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김 의원 행동이)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한다는 이영노(34·남) 씨는 "저도 제주도를 자주 가는데 그때마다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줬다. 평소에 그렇게 (꺼내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문제인 것 같다"며 "국내선이라고 해도 비행기는 테러 위험도 있고 하니 국제선만큼이나 엄하게 검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20대 여성 신모 씨도 "(김 의원이) '갑질'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시는 것 같다"며 "그럼 출국 심사할 때 모자를 벗어달라는 것도 갑질일 것 같다. 좀 이해되지 않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인천에 거주하는 이모(56·남) 씨는 "(국회의원 갑질 논란이) 흔한 일 아니냐"면서 "국회의원들이 상식적으로 행동해줬으면 좋겠다. 그 어느 누가 그런 행동을 이해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논란이 확산되고 있지만 민주당은 김 의원에 대한 처벌을 따로 논의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이날(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의원 논란과 관련 논의가 있을 것이란 말이 돌았지만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회의 직후 "논의하지 않았다"고 알렸다. 홍 수석대변인은 "본인이 소명자료를 냈다. 자기가 사과할 부분은 했고, 그걸로 저희는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징계 계획도 "현재로서는 없다"고 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김 의원이 국토교통위원을 사퇴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선 "지나친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lws2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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