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상고심 뒤집힐 가능성 작다' 관측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1·2심에서 모두 유죄를 인정받은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구속 기한 만료로 석방됐다. 구속된 지 562일 만이다. 서울동부구치소 앞에서는 시민 200여 명이 김 전 실장의 석방 반대 시위를 격렬하게 벌이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을 향한 성난 민심이 여전하다는 방증인 셈이다. 그렇다면 김 전 실장은 왜 풀려났을까? 라는 궁금증에 앞서, 시계를 돌려 그가 왜 구속됐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 "블랙리스트 존재"…불똥은 김기춘으로
블랙리스트 사건은 2016년 10월 당시 도종환(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도 의원은 9437명의 문화예술계 명단이 담긴 문건을 공개하기도 했다. 문제의 블랙리스트는 2014년 특정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를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명단을 말한다. 이 문건에는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등과 좌파 성향의 연예인 등의 이름이 포함됐다. 청와대가 배후로 지목되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그해 12월 김 전 실장과 문건 작성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였던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국회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모른다고 주장했다.
충격에 휩싸인 문화예술계는 법에 기댔다. 12곳의 문화예술단체는 같은 해 12월 12일 김 전 실장과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였던 조윤선 당시 문체부 장관 등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고 의심,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고발했다. 고발을 접수한 특검은 그해 12월 21일 공식 수사에 착수하고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수사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초기 문체부 장관이었던 유진룡 전 장관이 CBS와 인터뷰에서 퇴임 한 달 전(2014년 6월쯤)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고 밝히면서 김 전 실장을 배후로 지목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2017년 1월 18일 김 전 실장 등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문체부 특정 공무원들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 위증죄(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사흘 뒤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따라 김 전 실장은 곧바로 경기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의 구속 생활 시작이 이때부터다. 김 전 실장이 서울 송파구 소재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나온 것은 지난해 8월 이감됐기 때문이다. 당시 법무부는 고령의 김 전 실장의 건강상태와 응급상황 발생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서울동부기치소가 최신 교정시설인 까닭에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다.
◆ 김기춘은 왜 풀러났나?
구속 상태에서 기소된 김 전 실장은 위와 같은 혐의로 모두 두 번의 재판을 받았다. 지난해 7월 27일 서울중앙지법 1심에선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관련 혐의에선 일부 유죄, 위증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1급 공무원 사직과 관련한 직권남용 및 강요는 무죄를 선고했다. 1급 공무원은 신분 보장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이유에서다. 김 전 실장은 1심 선고에 불복, 항소했다.
김 전 실장의 항소심 형량은 징역 4년으로 오히려 더 늘었다. 지난 1월 23일 서울고법 재판부가 1심에서 무죄로 난 1급 공무원 사직 강요 혐의에 대해서 "블랙리스트 업무에 소극적인 이유 등으로 객관적이나 합리적 사유 없는 위법행위"라며 유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1심을 유지했다. 김 전 실장은 항소심 역시 인정하지 않고 상고했다. 1·2심에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7년을 내려 달려고 재판부에 요청했던 특검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대법원은 지난달 김 전 실장 등의 상고심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현재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김 전 실장은 앞선 재판에서 모두 유죄를 받았더라도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 신분이다.
그런 김 전 실장은 3번의 상고심 과정에서 3번의 구속을 갱신(지난 1·3·5월)한 뒤 최종 구속 기한인 1년 6개월을 다 채워 6일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됐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의 구속기간을 2개월씩 모두 2차례 연장할 수 있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선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총 3차례까지 연장할 수 있는데, 이를 모두 다 썼다는 것이다. 구속을 엄격하고 제한적이게 사용해야 한다는 법감정이 아니라 연장할 수 있는 기간을 다 썼기에 김 전 실장은 구속에서 풀려났다.
◆ 대법원 형 확정되면 다시 '감방'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면서 김 전 실장에 대한 선고는 상당 기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27일 구속 기한 만료를 앞둔 김 전 실장의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배경도 구속 기간 내 선고를 내리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시각이 짙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보수성향 단체를 지원한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를 지시한 혐의로 추가 기소 건이 1심에 계류해 있어 구속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대법원에 냈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향후 대법원이 원심을 그대로 유지하면 김 전 실장에 대한 실형은 그대로 확정된다. 이 경우 김 전 실장은 다시 옥살이를 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김 전 실장의 원심을 그대로 확정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법무법인 '제하' 전세준 대표 변호사는 6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검찰의 수사 기록을 보지 못해 단정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 "상고심에서 유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수사 기록상 증거에 의해 피고인이 인정한 부분도 있을 것이며, 1·2심에서 유죄가 똑같이 나온 거로 비춰볼 때, 대법원에서 일부 혐의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혐의 전체가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예상했다.
실제 대법원이 형사사건을 하위 법원으로 되돌려 보내는 경우는 드물다. 대법원의 '2017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6년 형사재판의 경우 상고율은 33.8%였다. 대법원의 항소심 파기율은 5.1%에 불과했다. 이는 1심 파기율(지방법원 항소부 33.8%, 고등법원 41.7%)보다 아주 낮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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