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큰 별이 떨어졌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1956년 8월 31일~2018년 7월 23일)이 향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루킹 의혹'에 스러졌지만, 노 의원은 노동운동가이자 '진보의 아이콘'으로 한국 진보정치 지형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의 마지막 길을 동료 정치인들과 지인 등 많은 사람들이 세대와 진영을 넘어 '기억'하고 있다. <더팩트>는 노 의원과 인연이 있었던 일부 정치인들과의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편집자 주>
한때는 치열하게 다퉜고 둘도 없는 동지가 된 魯-柳
[더팩트ㅣ이원석 기자]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정사진을 마주한 유시민 작가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애써 참았지만 곧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잔을 올리며, 절을 하면서도 그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유 작가는 결국 상임장례위원장인 이정미 정의당 대표 앞에 서서는 소리 내 울었다.
23일 밤 서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노 의원을 떠나보내는 유 작가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애틋했다. 그럴 만도 했다. 노 의원과 유 작가는 한때는 강력한 경쟁 상대였고 또, 가장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다. 나이는 노 의원이 3살 많지만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지난 2004년 각각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소속이 달랐던 두 사람은 유난히 충돌이 잦았다. 먼저, 유 의원이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민노당으로 가는 표는 사표(死票)'라고 말해 갈등이 일기도 했다. 당시 선대본부장이었던 노 의원은 "자기 당 걱정이나 하지 왜 남의 당 표가 사표가 되는 것까지 걱정하는지 모르겠다"고 유 작가를 정면 비판했다. 유 작가는 민노당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다시 '제대로' 붙었다. 이번엔 노 의원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공부를 안 한다"고 비판하면서 싸움에 불이 붙었다.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개혁파이자 개혁적 보수주의자" 라며 "노 대통령이 노동자에게 대하는 것이나 경제관을 보면 진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유 의원은 노 의원과 민노당을 향해 "오만한 사람들"이라고 맞받아쳤다. 유 작가는 "제가 보기에는 노 의원보다는 노 대통령이 훨씬 공부를 더 많이 한 정치인"이라며 "물론 경기고나 고려대 같은 명문학교를 나와야 '공부한 사람'으로 쳐주는, 그런 분들에게는 노 대통령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라고 꼬집었다.
이를 들은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냐"고 따졌다. 다시 유 의원은 "노 의원이 대통령 경호실장을 임명하는 인사권자냐"라며 응수했다. '소속'이 달랐던 두 사람은 후회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다퉜다.
노 의원과 유 의원은 최고 논객 1, 2위를 다투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지난 2005년 400회를 맞이했던 MBC '100분 토론'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유 의원이 1위, 노 의원이 2위로 기록됐다. 두 사람의 차이는 불과 2.6%였다. 노 의원은 같은 해 <오마이뉴스>의 인터넷 의정보고에 출연해서도 '토론 강적'으로 유 의원을 1순위로 꼽았다.
경쟁자이기만 할 줄 알았던 노 의원과 유 의원은 2011년 한솥밥을 먹게 됐다. 당시 새진보통합연대의 상임대표였던 노 의원과 국민참여당의 대표였던 유 작가, 민노당의 이정희 대표가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단일 대오 형성을 위해 전격 통합, '통합진보당'으로 뭉친 것이었다.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은 수권능력을 갖추고 진보 집권시대를 열어 가겠다"는 각오로 손을 잡은 노 의원과 유 작가는 이때부터 떨어질 수 없는 정치적 동지가 됐다. '유시민-노회찬의 저공비행'이란 팟캐스트도 함께 진행했다. 이후 통진당 내에서 제19대 총선에 나설 비례대표 부정선거 시비가 일었고 두 사람이 속했던 신당권파가 통진당을 나와 현재 정의당의 모체인 진보 정의당을 만들었다.
이후 유 작가는 정계를 은퇴했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계속됐다. '노유진(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의 정치카페'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청취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불과 지난 1월 JTBC 신년 토론회에서도 함께 나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등 TV토론에서도 여러 번 입을 맞췄다.
그리고 가장 최근, 유 작가는 지난달 JTBC '썰전'의 바통을 노 의원에게 넘겼다. 유 작가는 노 의원이 후임자로 온다는 말에 "안심"이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 사이의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안타깝게도 노 의원은 이날(23일) 먼저 세상을 떠났다. 댓글 조작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단 의혹을 받던 그는 동생의 자택이 위치한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유 작가는 공동장례위원장으로 '동지' 노 의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게 됐다. 이날 유 작가의 오열 속엔 한때는 치열하게 다퉜고,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의지했던 노 의원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을 것이다.
한편, 5일간 치러지는 노 의원의 장례는 26일 오후 7시 추모제, 27일 오전 10시 국회 영결식 등으로 엄수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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