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과 분노" "핵 단추" 대립한 北美, 영구적 평화정착 논의
[더팩트 | 김소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2일 북미정상회담 결과물을 담은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양국은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 6·25 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등 4개항에 합의했다.
이같은 합의가 있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세기의 만남'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일종의 판타지나 공상과학 영화로 생각할 것"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향해 '꼬마 로켓맨'과 '늙다리 미치광이'라는 막말을 퍼부으며 세계를 긴장케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급기야 "내 책상 위에 '핵 단추'가 있다"고 위협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나도 '핵 단추'가 있다. 훨씬 크고 작동도 한다"고 응수했다. 이에 북미 관계가 '전쟁 직전'에 치달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 '말의 전쟁' 北-美, 핵 단추 논쟁도
"북한이 위협을 계속하면 지금까지 세계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지난해 8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겨냥해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기 소유의 골프장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하자 "(김 위원장은) 아주 위협적이며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북한은 '괌 주위 포격 사격'을 경고하며 맞섰다.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전략군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중장거리 전략탄도 로켓 '화성-12형'으로 괌도 주변에 대한 포위사격을 단행하기 위한 작전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도 별도 성명을 내어 "미국의 선제타격 기도가 드러나는 즉시 서울을 포함한 야전군 지역의 모든 대상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위협했다.
'말의 전쟁'은 계속됐다. 미국이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통해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며 군사적 선전포고를 내비칠 때면, 북한은 미국도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며 "미국이나 동맹을 수호해야 할 임무가 생긴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하자, 김 위원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직접 성명을 내어 트럼프 대통령은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면서 '불망나니', '깡패'라고 부르기도 했다.
'핵 단추' 경쟁 발언은 올 초에 나왔다. 김 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핵단추가 내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공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단추를 갖고 있다"고 응수한 것이다.
◆ 남북관계 진전, '북미 평화 무드' 단초
올초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북미 관계가 급반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설득과 적극적인 관계 개선 의지로, 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남북대화에 마음을 열었다.
북미 정상회담 논의는 3월 8일 백악관을 찾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전하면서 급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를 수락하고 김 위원장을 "5월까지 만나겠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부활절 주말 극비리에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9일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며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난관도 있었다. 회담 일정이 한동안 확정되지 않으면서 각종 추측이 난무하면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일괄타결을 강조하면서 북한과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이견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돌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3월 25~27일에 이어 5월 7~8일 중국을 방문해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해법을 거듭 확인했다.
5월 중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회담은 양국간 치열한 샅바싸움으로 6월로 미뤄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수락한 지 77일 만에 김 위원장에게 "최근 담화문에서 드러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볼 때, 나는 이번에는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바뀌면 주저하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북한이 리비아 모델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며 담화문에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한 데 대한 불쾌함 표시였다.
결국,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다음 날 '위임에 따라' 발표한 담화문에서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은 '따뜻한 뉴스'라고 화답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가 대화로 방향을 트는 데 적극 기여했다는 게 중론이다. 문 대통령은 26일 김 위원장과 '깜짝' 정상회담을 가졌고, 양국의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그러면서 북미정상회담은 다시 궤도에 오르게 된다.
"우리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날 것이다."
6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장소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백악관 접견에 대한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최대의 압박'이라는 말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재확인했다. "우리 관계를 보고 있지 않은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의 시선이 쏠린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첫 인상에 대해 "대단히 재능 많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서명한 후 기자들 앞에서 "(김 위원장은) 굉장히 영리하게 협상에 임해줬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이후 김 위원장과 악수한 후 작은 목소리로 "다시 보자(See you again)"라고 인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합의에 대해 "포괄적인 합의에 이르렀다"며 "양측이 굉장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과거와는 크게 다른 상황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 역시 "역사적인 만남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서명"이라며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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