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바야흐로 선거 정국이다. 선거 운동 기간에만 시민들의 손을 잡고 90도 인사를 하며 표를 구걸할 것이 아니라 임기 중이나 평상시에 민심을 살피고 받드는 후보자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간접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투표가 시민들의 정치행위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올바른 후보를 뽑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어떤 후보를 선출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자.
정치인이 매번 소신도 없이 인기와 권력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워 보신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정의와 정도를 위해서 과감하게 소수의 입장에 설 용기가 있어야 한다.
공자는 “마을에서 점잖고 성실한 척 행동하는 사람, 즉 속은 비어 있으면서 오직 자신의 명성 관리만 일삼는 인간은 덕을 해치는 도적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이비를 혐오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간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 자공과의 대화를 들어보자.
자공 : 마을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모두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공자 : 그것만으로는 좋지 못하다.
자공 : 마을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모두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공자 : 그것도 좋지 못하다. 마을의 착한 사람들은 좋아하고, 마을의 나쁜 사람들은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정치인이 애써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정도를 가다보면 싫어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이를 두려워하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찌 모든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을 구해야만 한단 말인가. 정치인은 연예인이 아니다.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의 인기를 얻기 위해 구걸하는 정치인은 사이비로 배척해야 한다.
‘착한 사람들은 좋아하고, 나쁜 사람들은 미워하는’ 정치인이야말로 원칙과 소신을 갖고 흔들리지 않을 사람으로서 우리가 지지해야 할 사람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동법을 효종 때 관철시킨 김육은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제거하기 위한 옥사를 일으키자 경기도 가평으로 내려가 10년간 몸소 농사짓고 나무를 팔아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는 한마디로 자신의 원칙과 명분을 위해서는 현실적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 대쪽 선비였다.
조선시대에 입신양명을 꿈꾸던 선비들의 최종 목표는 재상이나 정승이었지만 선택받은 극소수만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시대에 국왕이 어떤 관리를 정승으로 임명한다고 말하면 관리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견마지로를 다해 모시겠습니다’는 등의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눈물도 조금 흘리면서 감격해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 효종 때 김육은 달랐다. 임금이 대사헌이던 김육을 우의정으로 승진시켜 임명했지만 세 번이나 사양했다. 그래도 임금이 임명을 포기하지 않자 김육은 상소를 올려 ’대동법을 실시하려면 저를 쓰시고, 그렇지 않을 것이면 쓰지 마십시오’라고 조건을 걸었다.
결국 효종은 대동법 실시를 약속하고 김육은 정승 자리를 받아들였다. 대동법은 지금으로 말하면 부자증세였다. 백성들은 환영할 일이지만 토지를 많이 가진 양반지주층은 극력 반대할 개혁이었다. 하지만 대동법 시행의 고비마다 효종의 절대적 신임 및 김육 특유의 정치력 및 도덕성과 신하들 사이의 신망을 바탕으로 반대세력을 설득하거나 잠재우면서 대동법을 관철시켰다.
후보자의 번지르르한 말에 현혹되지 말고 후보자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를 살펴서 다음 선거만을 생각하는 ‘정치꾼’이 아닌 공직자의 화신인 김육과 같이 사리사욕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민생과 민본을 중시한 진정한 ‘정치가’를 선출하자.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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