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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1심 선고] '올림머리' 대통령→징역 24년 '영어의 몸'

  • 정치 | 2018-04-06 16:33
사상 첫 '2세·여성' 대통령으로 지난 2012년 당선된 후 재임 4년 만에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6일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4년·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다./더팩트DB
사상 첫 '2세·여성' 대통령으로 지난 2012년 당선된 후 재임 4년 만에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6일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4년·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다./더팩트DB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영애', '퍼스트레이디', '대통령'…. 화려했던 삶은 '일장춘몽'이 됐다. 박근혜(66) 전 대통령은 여생을 '영어(囹圄)의 몸(죄인이 감옥에 갇힌 상태)'으로 살아야 한다.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 전 대통령은 6일 1심 선고에서 징역 24년·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종신형이다.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인생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과 구속에 이르기까지 일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박 전 대통령, 그는 '어떤 길'을 걸어왔나.

◆ '박정희의 딸'…22살의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가 됐다./더팩트DB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가 됐다./더팩트DB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52년 2월2일 경북 대구에서 박정희(5~9대, 1963~1979 재임)전 대통령의 첫딸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은 육군본부 정보국 제1정보과장이었고,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옥천의 대부호 '육종관'의 딸이었다. 1961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1963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 영애(令愛)가 됐다. 그의 나이 10세였다.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은 1974년 다시 한번 뒤바뀐다. 1974년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교수라는 꿈을 안은 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귀국했다. 어머니 육 여사가 그해 8월15일 저격범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22살이던 그는 육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이 시기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를 가까이에서 보고 배웠다. 5년 여간 퍼스트레이디 역을 수행했다. 그러나, 1979년 10·26 사태로 아버지마저 잃는다. 아흐레 간의 국상 뒤 청와대를 떠났다.

◆ 은둔 18년과 가신의 배신…'정치인 박근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사진은 박 후보가 지난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았을 때의 모습이다./더팩트DB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사진은 박 후보가 지난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았을 때의 모습이다./더팩트DB

1980년,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생활을 청산하고 신당동 옛집으로 돌아갔다. 사실상 이때부터 '18년'의 정치적 은둔기를 보냈다. 유신정권에 복무했던 가신들은 박 전 대통령 곁을 떠났다. 그들의 배신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 훗날 정치인으로서 곁에 2인자를 두지 않은 것도, 이 때의 기억 때문으로 분석됐다.

단,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공동정범인 최순실(62) 씨만 믿었다. 최씨는 1979년 6월 한양대서 열린 새마음제전 행사 당시 구국봉사단 총재로 행사에 참가했고, 이때 영부인 역할을 하던 박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봉사단은 박 전 대통령의 멘토인 최 씨의 아버지 최태민 목사가 만든 단체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연인으로서 힘든 시간을 최 씨에게 의지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10일 새누리당 경북 구미지구당에 입당계를 제출하며 공식적인 정치적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이듬해 4·2 재보궐 선거 대구 달성지역에 출마해 이른바 '달성대첩'을 거두며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정치인 박근혜'를 각인시킨 계기는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고 나서다. 불법대선자금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천막당사'로 배수진을 치고 붕괴 직전의 당을 구해냈다. 그해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확보했다.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2세·여성' 대통령→탄핵→구속…최순실과 악연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최순실 씨가 지난해 5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남윤호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최순실 씨가 지난해 5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남윤호 기자

2007년, 박 전 대통령은 대권을 꿈꿨다. 그러나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석패했다. 그는 결과에 승복했고, 이를 계기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엔 이른바 '친박(친박근혜)' 가신그룹이 탄생했다. 지지세력을 구축한 뒤, 2012년 다시 대선에 임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었던 박 전 대통령은 제18대 대통령이 됐다. '2세 대통령' '과반 대통령' '최초 여성 대통령' 화려한 수식어가 뒤따랐다.

그러나 재임 4년 만에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6년 말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분노한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10일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됐다. 같은 달 31일 18개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올림머리'를 고수해온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머리를 풀어헤쳤다. 죄수복을 입은 그는 '수인번호 503번'으로 전락했다. 이후 기소일로부터 317일 동안 총 100차례 재판이 진행됐고,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1심 선고에도 불출석했다. 이제 '40년 평생지기'를 믿었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형이 최종 확정되면, 3평 남짓 독방에서 사실상 마지막까지 고독한 여생을 보내게 된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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