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임태순 칼럼니스트] 보수와 진보정권이 10년 단위로 교차하고 있다.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했으니 서로 국가를 운영할 때의 어려움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정권을 놓고 싸우는 정당이라 해도 일정 부분 서로 돕고 지낼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론 그렇지 않다. 갈등과 대립, 반목은 날로 커지고 오히려 간극이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념 간 대립을 떠나 진영논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념논쟁은 그래도 괜찮다. 논쟁하면서 서로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그렇게 하면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영논리는 그렇지 않다. 진영론자들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주장을 논리와 객관성을 따지지 않고 그대로 따른다. 반대로 상대진영의 주장은 논리와 옳고 그름을 떠나 반박한다. 한쪽만 보고 한쪽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외눈박이다. 그래서 진영논리는 상대에 대한 적대감, 반감만 키울 뿐이다.
최근 우리 사회도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농락한 것을 고발하는 ‘미투(#Me Too)’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순수한 미투운동도 진영론자들에겐 모종의 음모가 있는 공작으로 비친다. 방송인 김어준 씨는 얼마 전 “미투운동을 지지해야 하겠지만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말해 진보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있길래 미투운동을 진보를 분열시키는 공작으로 만들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진보가 공작, 음모론이라면 보수는 색깔론을 들고 나온다. 보수와 우익은 진보의 주장이나 정책을 친북주의자, 종북주의자라 하는가 하면 빨갱이라고 몰아 부쳐 색깔론으로 덧칠한다.
이러니 보수와 진보, 좌우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 언론사가 국회의원 이념성향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7대 국회의원의 보수와 진보간 이념간극은 49점 차이가 났다. 18대 50.2점, 19대 52.2점, 20대 54.2점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졌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국회의원이 더 우측, 좌측으로 이동해 이념적 양극화가 심해진 것이다. 이념간극이 커진 것은 중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가 허약한 중도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니니 사회가 중심을 잡지 못한다. 여기에 진영논리까지 등장해 일반인들의 눈을 흐리게 해 올바른 판단을 저해한다. 이러니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논의와 토론은 언감생심이다. 속된 말로 자기 팔 흔들어 자기 길만 가는 불통, 불임(不姙)의 세상이 된다.
신문에서 최저임금제에 대해 쓴 칼럼을 봤다. 최저임금제는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이 임금인상에 대한 부담으로 고용을 줄여 실업을 야기시키고 상품가격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가져오기도 한다. 한편으론 저임금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가계소비를 늘려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 쪽은 전자의 논리를 들어 최저임금을 완만하게 올리려 하고, 반면 진보 쪽은 후자를 들어 최저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한다. 칼럼에서 필자는 최저임금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면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은 얼마나 줄었고, 삶의 질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그 정도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보수, 진보의 진영논리에 갇혀 있으면 원점에서 맴돈다. 그저 자기 주장만 해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제의 양면성을 인정한 뒤 긍정적, 부정적인 면이 어느 정도인가 라는 좀 더 진전된 자세로 들여다 보면 현상이나 문제를 둥글고 깊이 있게 볼 수 있고,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보수, 진보의 단순 잣대로 세상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 보수, 진보의 구분도 희미해지고 있다. 비근한 예로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없애 정도로 세상은 통합적이고 융합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어제의 보수정책이 오늘의 진보정책이 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또 보수주의자이지만 사안에 따라 진보인 사람도 있고, 진보이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사람도 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양 극단에서 자기 주장만 해선 접점을 찾을 수 없다. 중도가 사회 구성원의 폭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사안에 따라 보수, 진보를 왔다 갔다 하면 포용력이 생겨 사회가 훨씬 유연해진다.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이 줄어들고 양보와 타협의 문화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 중도는 보수, 진보의 충격을 흡수하는 든든한 완충지대가 될 수도 있다. 중도에서 보수와 진보가 만나면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 혼합하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도가 넓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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