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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희의 '靑.春'일기] #미투 운동, 당신도 불안한가요?

  • 정치 | 2018-03-03 05:00

최근 '미투' 운동이 확산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김정숙 여사가 지난 1월 초 여성 창업자들 만나 환담을 나누는 모습. /청와대 제공
최근 '미투' 운동이 확산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김정숙 여사가 지난 1월 초 여성 창업자들 만나 환담을 나누는 모습.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적극 지지' 표명한 文대통령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 터질 문제"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너, 페미(니스트)지?"

대학 때부터 종종 듣던 말이었다. 남자 동기와 선배의 비아냥이었다. 진짜 페미니스트 운동가가 비웃을 소리였다. 나는 여성의 기본적 권리를 얘기했을 뿐이었다. 늘 '대화'는 '논의'로 진전되지 못했다. 연애에선 스스로 정한 금기어였다. 아무리 사랑해도 젠더 문제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사회에 나와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A 남자 선배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OO당 의원들은 여자 좋아하잖아, 가면 잘해줄 거야" "경찰서 가서 미인계로 정보를 빼와…." 그런 A는 한둘이 아니었다. 더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말해봤자, 소용없을 일이었다. 점점, 그렇게 침묵했다.

그래서 최근 폭발적인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은 무겁게 다가왔다. 근래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B 남자 선배는 말했다. "요즘 미투 운동을 보면서,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아마 (남자 중에) 걸리지 않을 사람 없을 걸"이라며 소주잔을 들이켰다.

50대의 B는 정치권에 몸담고 있었다. "정치 쪽은 '미투' 운동을 당당하게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C 여자 선배는 "지들(자기들)이 한 짓을 생각해야지. 아마 '언제 터질까' 밤잠 설치는 의원도 있을 걸"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부정할 수 없는 얘기였다.

지난 1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게시글은 답변 기준선인 20만 명을 넘어섰다. 답변에 나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1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게시글은 답변 기준선인 20만 명을 넘어섰다. 답변에 나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페미니즘 교육은 체계적인 인권 교육과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B의 '자성'은 우리 사회에서 상당수 남성들이 성희롱과 성차별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것은 '갑을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남성들은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첫 신년 기자간담회 직후, D 남성 기자와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D에게 "문 대통령에게 '이 책을 읽어보셨는지'를 물으며 성평등 정책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D도 아내가 집안 식탁에 올려놓은 책을 우연히 읽었다고 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초중고, 대학교, 취업, 회사, 결혼, 출산 등 내가 고민 없이 지나온 문제를 김지영 씨는 수없이 고민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고백했다.

지난 2016년 10월 출간된 이 책은 아들 먼저, 남학생 먼저, 남편 먼저 등 우선권을 남성이 가진 사회를 살아온 김지영 씨의 '평범한 인생'을 다룬다. 입소문을 타고 2017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도 이즈음 전직 여성 국회의원과 인터뷰에서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도 "남성 중심의 정치판에서 말 못할 마음 고생이 컸다"고 했다. 여성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지난 번 묻지 못했던 질문에 답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미투 운동'에 대해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투 운동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미투 운동과 관련해 "가해자의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0일 문 대통령이 '출범 100일 기념 대국민보고대회'에서 학생과 기념사진을 찍던 당시. /청와대 제공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이 시기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자인 남성이 약자인 여성을 힘이나 지위로 짓밟는 행위는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어떤 관계이든, 가해자의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얼마 전, 춘추관 인근 카페에서 한 정치권 인사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수십 년 전' 티끌만 한 얘기를 죄다 끄집어내면 누구도 당할 도리가 없다"며 미투 운동을 비판했다. 여성들이 '미투 운동'에 편승해 '침소봉대'한다는 주장이었다. 바로 '눈앞'의 현실이었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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