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청와대의 '국민청원' 제도가 '양날의 검' 처지에 놓였다. 시행 3개월여 만에 폭발적인 청원 열기로, '직접 민주주의의 장을 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책 제안을 넘어선 사적이거나 여론몰이성 청원들도 난무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민청원'은 지난달 8월 19일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청와대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시작됐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국정철학에 따라 정부·청와대와 국민 간 '소통창구'로서 처음 문을 열었다. 그리고 22일 현재 4만6800건이 넘는 청원이 쏟아졌다. 하루 평균 500여건 꼴로 청원이 올라온 셈이다.
청와대도 처음부터 이런 정도의 반응을 예상한 건 아니다. 특히 '청원 답변 기준(20만명)'을 생각보다 빠르게 충족하면서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여기에 '도 넘은' 청원들도 잇따르면서, 청와대 내부에서도 운영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새 나오고 있다. 즉, '명암(明暗)'이 엇갈리고 있다.
◆ 명(明)…국민 참여로 '사회적 공론장' 형성
'국민청원'은 미국 백악관의 청원사이트인 '위더피플(We The People)'을 벤치마킹했다. '30일 간 10만 명이 참여할 경우, 60일 이내 해당 정책과 관련된 전문가가 공식 답변'을 하게 돼 있다. 청와대는 처음 청원사이트를 열었을 때, 답변 기준은 미정이었다. 지난 9월 3일 '소년법 개정'이 청원 마감도 전에 20만 명을 넘어서자 내부 논의 후 기준을 밝혔다.
청와대는 '특정 청원에 30일간 20만명 이상이 추천할 경우 청원 마감 이후 30일 이내에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공식 답변을 내놓기로' 원칙을 세웠다고 지난 9월 25일 밝혔다. 백악관보다 10만명을 높였지만, 30일을 단축해 신속성을 고려했다.
청원은 17가지 분야별로 나뉘어 있다. △정치개혁 △외교/통일/국방 △일자리 △미래 △성장동력 △농산어촌 △보건복지 △육아/교육 △안전/환경 △저출산/고령화대책 △행정 △반려동물 △교통/건축/국토 △경제민주화 △인권/성평등 △문화/예술/체육/언론 △기타 등이다.
'베스트 청원 목록'을 보면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사안들이 올라와 있다. △조두순 출소 반대(53만616명) △주취감형(술을 먹으면 형벌 감형) 폐지(10만1812명)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 금지 청원(9만3454명) △권역외상센터(이국종 교수님) 추가적 지원(8만8369명) △경사진 주차장에 경고문구 의무화와 자동차 보조제동장치 의무화(7만6859명) △군내위안부 재창설하라는 청원자 처벌(7만5705명) △한샘 성폭생사건에 대한 올바른 수사 요청(4241명) 등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지난 20일 <더팩트>에 "백악관을 벤치마킹해 10만명을 더 높였는데도 이렇게 참여 열기가 뜨거울지 몰랐다"며 "적극적인 소통 창구로서 역할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부적절한 청원들에도 모두 대응을 해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선 내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암(暗)…부적절한 청원도 속속, 수정·보완 필요
문제는 청원 열기에 따른 '잡음'도 나오고 있다. 정책화를 넘어선 사법부나 입법부의 영역에 해당하거나 개인 또는 지역 등 편향적인 사안, 갈등을 조장하는 청원 등도 잇따르고 있다.
일례로 △일간베스트 사이트 폐지(4만347명) △여자 집값 70% 폐지(3만3441명) △여성이 결혼 후 불러야 하는 호칭 개선(2만9474명) △청와대에 상주하는 기자단 해체(2만9322명) △히딩크 감독님이 한국을 원합니다. 월드컵 대표를 맡아주세요(3527명) 등이다.
특히 지난 16일 올라온 '군내 위안부 재창설' 글로 논란이 인 바 있다. 현재 이 청원은 삭제됐지만, 해당 청원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또 다른 청원에 사흘 만에 7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이후 국민청원 게시판엔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청원도 여럿 올라왔다.
또 답변 기준선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예상치 못한 열기로 20만명을 충족하면서 '여론몰이성'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벌써 3건이 기준을 충족했다. '소년법 개정'은 청원 마감도 되기 전인 지난 9월 25일 20만 명을 넘겼고, '낙태죄 폐지(23만5372명)는 답변을 대기 중이다. 다음 달 5일 청원 종료 예정인 '조두순 출소 반대'는 22일 현재 53만명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제도적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게 일각의 견해다. 문 대통령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지난 20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참여인원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청원도 있고, 현행 법제로는 수용이 불가능해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의견이든 참여인원이 기준을 넘은 청원들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성의 있게 답변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더팩트>에 "문 대통령께서 국민청원의 취지와 의도에 대해 말씀하신 대로, 설령 지금 문제되는 부분들이 있더라도 추진 방향성이나 이런 부분이 큰 틀에서 변경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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