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내려지는 판결은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 재판부는 원외 재판부를 포함하면 200여 개가량 됩니다. 그러니 판결은 최소 1000여 건 이상 나오겠지요.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이 몰려 있는 '법조 메카' 서울 서초동에선 하루 평균 수백 건의 판결이 나옵니다. <더팩트>는 하루 동안 내려진 판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선고를 '엄선'해 '브리핑' 형식으로 소개하는 [TF오늘의 선고]를 마련했습니다. 바쁜 생활에 놓치지 말아야 할 판결을 이 코너를 통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더팩트|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법조계는 13일 서울 지하철 전동차에 그라피티를 그린 20대 영국인 형제의 항소심, 다시 만나자는 요구를 거절한 옛 연인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해 살해한 남성에 대한 재판, 바늘로 어린이집 아이들의 손과 발을 찔러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은 어린이집 교사의 무죄 판결이 주목을 끌었다.
○…'한국 원정' 지하철에 그라피티 영국 형제 실형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김경란)는 한국까지 원정을 와서 지하철에 대형 '그라피티(graffiti)'를 그려 공동주거침입·공동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영국인 A(25)씨와 B(23)씨 형제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A씨 형제는 지난 7월 성동구 군자차량사업소와 다음날 중랑구 신내차량업소에 몰래 들어가 높이 1.0~1.1m, 길이11~12m 크기의 글자 'SMTS', 'SMT' 등을 지하철 전동차에 그린 혐의로 기소됐다. 입국한 바로 다음날 첫 범행을 저지른 A씨 형제는 지난 7월 13일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1심 재판부는 "전동차에 그라피티를 하면 직접손해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수리하는 동안 전동차를 운행하지 못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간접손해가 발생하는 명백한 재물 손괴의 범죄 행위"라고 판시했다.
A씨 형제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2심도 "죄질이 가볍지 않은 데다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복구되지 않았다"며 "피고인들이 영국에서 같은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에서 A씨 형제는 'SMT(S)'가 'So Much Trouble(s)'의 줄임말이라고 주장했지만 'SMT'는 A씨 형제가 가입된 영국 맨체스터 지역의 유명 그라피티 조직 이름으로 확인됐다. SMT 구성원들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 전역에서 130여 건의 그라피티를 전동차 등에 그려, 징역 실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영국 현지에서 A씨는 징역 14개월을 선고받았고, B씨도 징역 12개월을 선고받았다.
○…바늘로 아이 찔렀다고 보도된 어린이집 교사, 무죄 확정
대법원 제2부는 바늘로 손과 발을 찌르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은 어린이집 교사 한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2심이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정당하다"며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아동 진술의 신빙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한 씨는 2014년 3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며 '핀'으로 아이들의 손등과 팔, 다리 부위를 수회 찌르고 미술시간 중 틀리게 색칠을 했다는 이유로 옷핀으로 아이의 발등 등을 수회 찌른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사건은 JTBC를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JTBC는 2015년 2월 4일 '선생님이 바늘로 콕 했어…어린이집 수사 착수', '잠적 일주일만에 바늘학대 의혹 교사 출석'이라는 리포트 등을 통해 해당 사건을 보도했다.
하지만 1심은 아이들이 학대 주체, 범행 장소나 범행 당시 상황 등에 대해 구체성이나 일관성 있는 진술을 하지 못한 것을 통해 "수사기관이나 부모 등에 의한 암시 가능성이나 오염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7월 2심 재판부도 "만 4세 내지 만 4세7개월 정도 되는 피해자들의 신빙성이 부족한 진술과 그 밖의 간접적인 증거들만으로 한씨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기에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존재한다"고 봤다.
해당 어린이집 측은 "JTBC 방송 이후 다른 매체에서 사실 확인도 없이 기사를 받아썼고, 심지어 사건과 관계도 없는 사진을 올린 기사도 있다"며 "한 선생님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이라며 하소연했다.
○…11년째 거절당하자 연인에 휘발유 뿌려 살해한 50대 남성, 중형 선고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심규홍)는 헤어진 연인에게 재회를 요구하다가 끝내 거절당하자 여성의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살해한 혐의(현존자동차방화치사)로 기소된 A(55)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A씨는 피해여성 B(50)씨와 지난 2005년부터 1년간 동거하며 연인 관계를 이어왔다. A씨는 이별한 후에도 B씨를 수차례 찾아가 만나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1년에 걸쳐 거절당한 A씨는 앙심을 품고 휘발유와 라이터를 준비한 뒤 B씨가 근무하던 버스차고지로 찾아갔다.
지난 3월 25일 오후 4시44분께 서울 양천구의 한 버스회사 차고지로 찾아간 A씨는 B씨가 운전하던 버스의 승객이 모두 내리길 기다렸다가 버스로 들어가 B씨에게 '한 시간만 진지하게 대화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이 권유마저 거절당하자, A씨는 준비한 휘발유를 B씨의 전신에 쏟아부은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길에 휩싸인 B씨는 전체 피부의 80%에 이르는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2주 뒤인 지난 4월 7일 새벽 0시1분 끝내 패혈증 쇼크로 숨을 거뒀다.
A씨는 법정에서 "B씨에게 겁을 주려고 운전석 앞부분에 휘발유를 뿌렸을 뿐 불을 붙일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경찰 조사에서 '같이 죽으려고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고 진술했고, 밀폐된 공간인 버스에 많은 양의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면 큰 화재로 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살해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해자를 죽이기 위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했고, 잔혹한 범행수법으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죄질과 범정이 몹시 나쁘다"며 "또 A씨는 2회의 폭력범죄 집행유예를 포함하여 범죄전력이 20여회 달하고, 준강도미수죄의 집행유예 기간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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