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소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추진키로 한 가운데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 요구 우선순위로 법률시장 개방을 꼽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이를 두고 국내 대형로펌은 법률시장이 추가 개방되면 인재 유출을 비롯해 서비스 분야에서 앞서고 있는 외국 로펌에 국내 로펌들이 잠식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시장 개방은 대형로펌의 전관예우 논란을 원천봉쇄시키는 호(好)전략이 될 것이라 보는 시선도 있다.
국내 법률시장 개방은 한미 FTA에 따라 총 3단계로 이뤄졌다. 지난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 발효 동시에 실시된 1단계 개방에서 미국 로펌이 국내에 외국법자문사로 구성된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를 설립하는 것이 허용됐다. 2단계(2014년 3월 15일)에선 미국 로펌의 국내사무소와 국내 로펌간 업무제휴, 수익배분이 허용됐다. 올해 3월 3단계 개방으로 미국 로펌과 한국 로펌이 합작법무법인을 만들어 국내 소송 및 자문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미국 로펌의 지분율과 의결권을 최대 49% 이하로 제한한 부분은 미국의 불만을 낳았다. 국회는 지난해 2월 미국 로펌히 한국 로펌과 합작법무법인을 설립할 때 지분율과 의결권을 최대 49% 이하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는 국회에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지만, 개정안은 원안대로 가결됐다.
이에 미국은 3단계 개방에도 미국이 피부로 느끼는 실효성이 미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3단계 개방을 통해 한국 변호사 채용이 가능해졌지만, 지분율과 의결권 제한이란 장벽이 한국시장 진출을 막은 것과 다름 없다는 게 미국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은 미국 로펌이 한국 로펌과 합작법무법인 형태로만 한국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법률시장 3단계 개방 이후 지금까지 합작법무법인 설립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 법조계에서는 미국 측의 법률시장 개방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FTA 개정 협상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먼저 국내 대형로펌은 법률시장 추가 개방이 이뤄지면 국내 로펌이 입게될 피해는 불보듯 뻔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대형로펌 관계자는 <더팩트>에 "좋은 인재들이 전부 외국 로펌으로 가게 되는 것 아니냐. 이게 위기가 아니면 무엇이냐"면서 "미국이 서비스 부문에서 법률시장 개방 폭을 완전히 확대해버리면, 한국 법률서비스 산업은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외국계 로펌은 현재 개방 수준은 국내 대형 로펌의 이해관계만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외국계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는 변호사는 "사실 해외 로펌의 입장에서는 합작법무법인을 설립하면서까지 한국에 진출해서 얻을 이익이 없다. 합작법무법인을 차렸다고 해도 일반 송무나 공증, 노무, 지식재산관, 등기, 상속 등은 한국 로펌이 맡기 때문"이라며 "한미 FTA 재협상 시 법률시장 추가개방은 1순위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 법학 전문가들은 외국계 로펌에 문호가 개방돼도 국내 로펌이 직접적으로 받게 될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오히려 전관예우 등 국내 대형로펌이 쌓은 적폐를 청산하는 동력을 쌓아갈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길준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국 로펌에 법률시장이 지금보다 더 개방되면 통상문제, 국제 문제, 계약, 거래 관계 등에서 국내 로펌이 받게 될 영향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또 외국 로펌의 대우가 좋으면 국내 변호사들도 대거 이동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인재 유출 위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형사 사건 등 국내 사건은 아무리 큰 외국계 로펌이 들어온다고 해도 국내 대형로펌이 이미 시장을 차지 하고 있는 파이가 크기 때문에 받게 될 영향은 미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사실 형사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나 낮은 형량을 받기 위해서는 비싼 돈을 주더라도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해야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인맥적인 면이나 다양한 면을 고려했을 때 대형 로펌에 근무하고 있는 전직 법관, 검사 등을 선임하는 게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면서 "외국계 대형로펌의 국내 진출은 인맥 재판 등을 지양하고, 소수 대형로펌이 쌓은 사법 적폐를 깨부술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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