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대석>은 '이슈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계 각층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정치·사회·문화 등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핵심 사안에 대해 '이슈 인물'이 생각하는, 느끼는, 판단하는 이야기 등을 솔직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김소희 기자] 2017년은 헌정사상 헌법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웠던 한해다. 3월 10일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만장일치로 탄핵 되기까지 국민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제 24대 차기 한국헌법학회장으로 선출된 고문현(58)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도 헌법에 쏠린 국민적 관심을 실감했다. 헌법이 사회 질서와 정의가 실현되는 데 바탕이 되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인식했다.
헌법과 관련한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 많은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최대한 자제했다. 꼭 하고 싶었지만 쌓아둔 말은 연구로써 보여주고 싶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헌법개정안 작업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고 교수는 스스로를 "사회를 고치는 의사"라고 설명했다.
<더팩트>는 지난 10월 30일 숭실대학교 진리관에 위치한 고문현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고 교수는 현재 차기 한국헌법학회장 외에도 기후변화특성화대학원장, 에너지법제도 전문가양성 과정 책임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맡은 역할이 너무 많은 탓에 인터뷰가 진행된 날 고 교수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 고 교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헌법개정안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오늘도 국회에 다녀왔다"며 하루 일정을 설명했다.
왜 그리 바쁘게 사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동안 사회에서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하려고 고민하고 있다"며 "우리가 사회에 진 빚을 갚는 도리이자 재능기부"라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인터뷰 도중 한 장의 엽서를 건네기도 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독일 비텐베르크의 만인성자교회에 내거는 모습이 그림으로 담긴 엽서였다. 이 그림은 고 교수의 가치관과 이상향 설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 교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다. 오늘날도 사회를 합리적으로 개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마틴 루터는 본래의 정신을 잊지 않고, 기본적인 사회, 틀, 원칙에 충실하면서 부패한 교회를 개혁했다"며 "롤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오는 12월 1일 고 교수는 한국헌법학회장으로 정식 취임식을 갖는다. 한국헌법학회는 회장과 차기회장을 동시해 선출한다. 1년여 기간을 두고 뽑는 이유는 회장으로서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는 데도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헌법학회 회원은 헌법이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이를 통해 강의를 하는 학자 외에도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 공무원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다. 고 교수는 "내년 1월 1일부터 회장으로서 실무를 시작하게 되면,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협회 회장이 수석부회장을 해주기로 했다"며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내비쳤다.
다음은 고 교수와 나눈 일문 일답.
- 내년 1월 1일부터 한국헌법학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회장에 출마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동안 받은 은혜를 되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회장은 위에서 군림하는 게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리잖아요. 앞으로 1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연구자 그리고 학회를 섬긴다는, 지난한 몸부림을 할 각오로 회장에 출마하게 됐습니다. 총 3명이 출마했는데, 65%가 넘는 지지를 받아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어요. 저의 진정성이 회원들에게 전달돼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 한국헌법학회장이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웠나.
12월 1일에 취임식을 갖고, 1월 1일에 한국헌법학회장으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저는 임기가 시작되기 전이지만 12월 하반기부터 활동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먼저 서울지방변호사회와 함께 '대체복무제'에 대한 첫 번째 세미나를 열 계획이에요. 양심적 병역 거부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대체 복무가 먼저 마련돼야 하잖아요. 그때 대만에 대체복무제를 최초로 도입한 진신민 전 대만 헌법재판관도 초청해 국제 세미나를 하기로 했습니다. 대만의 제도를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 대체복무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
이제는 우리 사회도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일정한 요건 하에서 인정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구체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대체복무제도 실시될 수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체복무제와 관련한 근본적 검토를 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도 만나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할 것입니다.
- 군사법원 폐지에 대한 목소리도 내왔다. 국방부 장관과 만나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할 계획인가.
우리나라는 이미 문민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군인과 관련한 모든 재판은 일반 법원이 아닌 군사법원에서 이뤄지고 있어요. 굳이 일반 법원에서도 할 수 있는 재판을 군사법원을 따로 두면서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얻을 만한 이익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폐지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군의 특수성 때문에 군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가 알려지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한 번 더 점검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 군사법원과 관련한 헌법 조항이 있나.
군사법원에 대한 헌법적 근거는 헌법 110조입니다. 1항은 '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하여 특별법원으로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고 돼있고, 2항은 '군사법원의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관할한다'고 돼있어요. 대법원에서 콘트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거죠. 문제는 4항입니다. '비상계엄 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돼있는데요. 중요한 사건도 사형이 선고된 경우가 아니면, 단심으로 끝나는 거죠. 분명히 인권침해 소지가 생깁니다.
- 우리나라는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으로 이어지는 3심이 기본원칙이지 않나.
네, 맞습니다. 군사법원법, 군사법 등 관련법에 법률을 근거로 단심이 가능하다고 헌법에서 규정해 버리면, 3심의 기본원칙을 흐뜨리게 됩니다. 여기서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누구나 헌법 27조인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단심으로 끝내면 억울한 것이 있어도 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게 되죠.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 헌법학회장 외에도 기후변화특성화대학원장, 에너지법제도 전문가양성 과정 책임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헌법과 조금 이질적인 느낌도 드는데.
헌법과 환경은 무관하지 않습니다. 헌법 35조에 환경권이 있어요. 지금 기후변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됐지요. 삼한사온 현상이 없어지 지 오래입니다. 요즘은 일한이온이라고 느껴지지 않나요. 모두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제2의 노아의 방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 외국에서는 이미 에너지법에 대한 각종 제도들이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실험 단계입니다. 결국 법이 있어야 인가되고 추진되며 정착될 수 있는데요. 저는 이러한 실험 과정에서 법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법률을 만들어 '대중수용성'과 조화를 시키는 일이죠.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 재학 시절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돼 약의 가격도 비싸지 않고, 약을 복용하는 기간도 짧지만, 저는 18개월동안 한 주먹의 양을 먹었습니다. 결국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죠. 공부에 단절이 생기니까 앞으로가 막막해지더라고요. 계속 공부 하고 싶단 생각과 동시에 우리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이 있나 생각을 했는데, 정보와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생각이 닿았습니다. 그래서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법학을 전공한 상태였지만, 서울대환경대학원에 도전해 5전6기로 합격했죠. 박사과정은 다시 법학을 선택하게 돼 이중학적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 서울대환경대학원을 그만둬야 했지만, 환경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 항상 문을 열어두는 것 같다. 진보적인 학자란 생각이 든다.
저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10대 강국임에도 국력에 걸맞는 사법수준이나 인권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어요. 사법수준과 인권시스템을 국력에 걸맞게 올리기 위해선 전향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법도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학문이에요. 사회에서 지켜져야 하니까요. 그러나 생각의 유연성과 다양화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사회는 바뀌어 가는데 고정관념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나요. 법이 사회를 선도하진 못하더라도 바뀐 사회엔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입니다. 드론이 날라다니는 시대에 소달구지 달고 다니면 안 되죠. 빨리 변해야 하고, 법 역시 보다 개방된 사회로 나아가 다양한 사람과 공존해야 합니다.
- 사회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이진성 재판관을 현재 공석인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 보는가.
이번엔 통과될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을 정략적으로 지명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헌법재판소장으로서 누가 적임자인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고 할까요. 유남석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소장으로 지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만, 국회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삐걱거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 재판관을 소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마디로 '통큰 정치'이지요.
- 헌법재판소 측에서는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소장 권한대행직을 계속 하는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김이수 재판관이 권한대행만 계속 했다면, 어쩌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국회에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지 모르죠. 그런데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부쳤는데 부결됐습니다. 국민의 대표가 부결한 것을 계속 이어가는 것 역시 대통령에겐 부담이었을 겁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소장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 재판관직에 대해 사표를 낸 일이 있었습니다. 헌법 111조 4항에는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있는데, 헌법을 가볍게 생각하고 소장이 되기 위해 재판관 자리를 놓았던 것입니다. 결국 소장 임명이 물건너간 어리석은 일례죠. 이런 사태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엿보입니다.
-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 자문 기구인 수사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영입됐다.
헌법 12조 3항을 보면,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돼있습니다. 현재 영장청구권은 검사에게 있습니다. 경찰은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를 삭제하고, 영장청구권이 경찰에게도 부여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저 역시 헌법에까지 명문화해 검사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은 적절히 분배돼야 합니다.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아 적폐가 생기는 것이니까요.
- 차기 한국헌법학회장으로서 진짜 개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민의 기본권이 신장되고,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게 행복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개헌이 이뤄져야 합니다. '국민을 위한 개헌'이 진짜 개헌입니다. 국회를 위한 개헌이 되어서도, 각 기관을 위한 개헌이 되어서도, 각 부처를 위한 개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100년 후를 생각한, 미래를 설계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합니다.
- 정년까지 7년이 남았다. 이루고 싶은 것도 정말 많을 것 같은데.
우리는 평생 학습을 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입니다. 이제 평균 수명은 100세가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생소한 분야라고 하더라도 꾸준히 참여해 정보를 얻고, 또 자신의 정보를 나눠야 합니다. 저는 정년 퇴직을 한 이후에도 80세까지 각종 학회에 참여할 생각입니다. 모든 곳에 참석해 지혜를 빌리고,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사회에 나눠줌으로써 집단지성을 활용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돈을 벌지 않아도 좋습니다 . 지속가능한 학문적 연계가 이뤄진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죠.
- 평생 학문에 전념하겠다는 계획인 것인가.
저는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셸을 좋아합니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자기가 언젠가는 죽을지도 모르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무엇인가를 하려는 지난한 몸부림이 있다고 말했죠. 죽는 순간까지 학문적 활동을 하다가 죽고 싶다는 게 제 궁극적 목적입니다. 헌법에도 '평생 학습을 할 권리가 있다'고 돼있어요. 죽은 후에 '고문현은 학문을 하다가 죽었다'고 평가 받고 싶습니다. 65세가 넘어야 진정으로 무르익은 학문이 완성됩니다. 교수라고 어디가서 목에 힘 줄 것도 없어요. 열심히 연구하는 자가 다 교수이고, 연구자이지요. 학벌이 없어도 연구하면 연구자로 존중 받아야 합니다. 퇴직 후에도 젊은 사람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손들고 발표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1년 사이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 헌법학자로서 소감은?
취임식 때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공로패를 드리는 것을 계획 중입니다. 헌정사상 헌법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린 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비록 본인은 파면을 당한 일이지만, 헌법의 중요성을 반어적이면서도 절절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 자리를 결정 지을 정도로 헌법의 권한이 강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일반 국민에게 이보다 더 헌법의 경각성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은 없었습니다. 한국헌법학회가 25년간 있었지만, 이번 만큼은 학회 차원에서 공로패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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