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대석>은 '이슈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계 각층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정치·사회·문화 등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핵심 사안에 대해 '이슈 인물'이 생각하는, 느끼는, 판단하는 이야기 등을 솔직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종로=오경희 기자] 장하나(40)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 사회에 '엄마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임신·출산·육아 등 '돌봄노동'을 홀로 짊어지며, '엄마'란 단어의 무게에 자기 희생과 무한 노동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장 전 의원도 '엄마'가 되기 전엔 몰랐다. 그는 19대 국회에서 임기 중 결혼과 출산을 했다. 이후 삶은 달라졌다. 최근 그가 우리사회에 '엄마 정치'란 화두를 던진 이유다.
국회의원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임신과 출산은 축하받을 일이었지만, 대한민국의 일하는 여성들이 그렇듯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주변 시선을 먼저 걱정했다. 임기 끝까지 '축복'을 숨겼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청년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기에, 임신(과 출산)을 구실 삼아 나중에 '청년, 여성'은 뽑으면 안되겠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후회했단다. "저와 같은 일을 겪는 엄마들을 위해 나섰어야 했는데, 엄마라는 사실을 스스로 민폐라고 생각했다"며 자신을 '엄마들을 배신한 국회의원'이라고 평가했다. 자성은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20대 총선에서 낙마한 그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고, 지난 6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엄마들과 '정치하는 엄마들'이란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왜 '엄마 정치'일까. 우문(?)을 품은 채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한 커피숍에서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장 전 의원을 만났다.
◆ "낙선 후 근황요?…떨어지길 잘했다 싶어요"
질끈 묶은 머리와 운동화, 화장기 없는 얼굴…. 국회에서나 밖에서나 소탈한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차분하지만, 신중하고, 예리한 모습도 그대로였다. 물음 하나도 허투루 대답하지 않았다. 허공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했고, 곱씹어 자신의 언어로 말했다. 그는 최근 '쓰리잡'을 뛴다고 했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 그리고 '엄마'다.
"좀 더 쉬시지 활동가로 바로 일을 시작하셨어요"라며 근황을 묻자, 장 전 의원은 "아휴. 하하하. 그러게요. 국회에서 얻은 것들을 묵혀두기는 아까웠죠"라고 답했다. 장 전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속해 '노동·인권·환경' 문제 등을 주로 다루며 목소리를 냈다.
그는 "장소만 옮겼을뿐, 이곳에선 예산을 주로 보고 있다. 4대강 사업과 같은 반환경적인 예산이 정말 많다. 저도 (임기 내) 4년동안 예산심의에 몰입했다고 볼 수 없다. 사실 국회에서 정말 중요한 예산·결산 심사를 허술하게 보게 된다. 취재 열기도 국정감사와 확연히 다르지 않나. 임기 중 시간이 없어서 볼 수 없던 예산들을, 책을 쌓아놓고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을 설립해 활동을 시작했다. 계기는 한 언론사에 기고한 <장하나의 엄마정치>란 글이었다. 장 전 의원은 19대 국회 임기 중 직접 겪은 임신과 출산의 경험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장 전 의원에 공감하는 '엄마들' 40명과 '정치하는 엄마들'을 만들었다. 현재 회원은 100여명으로 늘었다.
"4월 22일 연재글에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니 오십시오'라는 글을 적었어요. 몇명이나 올지도 모른 상태에서 제가 쓴 글을 본 분들이 모였죠. 이후 엄마들 뜻이 모여서 6월 11일 창립총회를 하고 공식적으로 출범했어요. 이후 한차례씩 만나고 있구요. 국회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실제 당사자인 엄마들을 정치세력화하고 하는 일들을 할 수 없는데, 막상 떨어지고 나서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어서 떨어지길 잘했다 싶기도 하고, 또 제 아이가 어리잖아요. 20대 (국회에) 들어갔으면 아이가 자라는 것도 못 볼 뻔했는데 그런 의미에선 떨어지길 잘했다 싶고요. 하하하."
◆ "저는 엄마들을 배신한 국회의원입니다"
장 전 의원은 임기 중 출산한 유일한 국회의원이다. '엄마정치'를 꺼낸 이유다. 민의를 대변해야할 국회의원이었지만, 일하는 여성으로서 '엄마'라는 굴레에 갇혔다. 그는 "엄마가 된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엄마 아빠 아이들을 위한 정치에 활용을 했어야 했는데 소극적이었다. 출산하기 직전까지 임신 사실을 많이 숨겼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임기 때 뒤늦게 결혼한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독박 육아'를 했다. 그는 자신을 "엄마들을 배신한 국회의원"이라고 표현했다.
"(국회의원인) 제가 그럴정도면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똑같을 거다.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것은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공적인 일이고, 우리 모두의 아이이다. 그러니까 나라에서 출산율 걱정하고 행정력을 투입하는 것 아닌가. 저출산 정책에 매년 20조원을 쓴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선 임신과 출산, 육아 등은 사적영역의 문제이고,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배려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들이 너무 힘들고, 불행하고…. 제가 엄마들을 배신했다고 한 이유다."
그는 올해 세 살배기 딸 두리를 둔 엄마다. 딸을 얻기까지 "엄마라는 계급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장 전 의원은 "정말 당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 같다. 제 친구들도 다 아이낳고 겪는 일을 전혀 까마득히 몰랐다.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하층 계급이다"라고 지적했다. 순간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엄마로서 분노가 느껴졌다.
◆ "'남초국회'가 여성을 어떻게 대변하겠어요?"
모든 문제의 답은 결국 '정치'에 있다. 그러나 장 전 의원은 "보육과 경력단절, 아토피와 미세먼지 같은 환경 등 엄마들이 겪는 문제가 너무 많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국회의원들이 관심이 없다"고 봤다.
"대한민국 국회는 여성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이미 성비가 완전히 균형을 잃었는데, 남초 국회가 어떻게 여성을 대변하겠나. 평균 연령도 55.5세인데, 육아를 겪어본 분들이라고 해도 20년도 전의 일아라 현재랑 문제의식도 다르다. 또 20대 국회 평균 재산이 40억원대라고 한다. 평범한 3~40대 서민층의 엄마, 아빠들의 문제를 공감하길 바라면 바라는 사람이 불가능을 바라는 것이다."
장 전 의원은 '엄마정치'의 핵심을 '보육과 노동'으로 꼽았다. 특히 "장시간 노동을 만악의 근원"이라며 노동시간 단축과 육아휴직 활성화 등을 강조했다.
그는 육아휴직제도와 관련해 양극화를 지적했다. 장 전 의원은 "여성 노동자들 두 명 중 한명은 아이를 낳고 경력단절이다. 자발적인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일-가정 양립이 안돼서 회사에서 주는 눈치때문에 엄마들 스스로 당연히 결혼하면 일을 관둬야 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은 민간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육아휴직 출산휴가 사용률이 두 배 이상 높다. 교사 공무원의 경우 75%가 육아휴직을 쓰고, 민간에서는 35%가, 민간에서도 비정규직은 1.9%만이 육아휴직을 쓰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하는 엄마들'은 최근 국민 정책 제안 프로젝트인 '광화문 1번가'에 참여해 보육 분야 정책을 제안했고, 국회 앞에선 '칼퇴근법' 통과를 촉구했다. 단체 내 개별 프로젝트로 '맘충(엄마를 뜻하는 맘과 벌레를 칭하는 충을 합성한 신조어)' 등 '혐오표현 금지법', 아토피·비염·식이 알레르기 등 급식 개선, 페미니즘과 모성 교육 학제 도입 등을 구상·진행 중이다.
◆"엄마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테니 바꿔보자는 것"
"엄마들은 엄마정치하면 되고, 아빠들은 아빠정치하면 되고, 청년들은 청년정치를 …."
"왜, 엄마정치가 필요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장 전 의원은 우문현답을 내놨다. 정치 참여주체로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엄마 정치'는 "대한민국에서 '엄마'이기 때문에 너도 겪고 나도 겪는 문제를 엄마들이 스스로 해결하자"는 데 있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까지 엄마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못 냈죠. 엄마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으니까, 정치하는 엄마들이 목소리를 낼 테니 한번 바꿔보자는 것이다. 이는 엄마들 뿐아니라 한국 사회 각 주체로서 당사자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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