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 삼선동·춘천역=김경진 기자] '혼추족'이라는 말이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미 우리 일상에는 '혼밥(혼자 밥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같은 단어도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6년 대한민국 1인 가구 수는 539만 7616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27.9%를 차지했다. 4명 중 1명 이상이 1인 가구인 셈이다. 이는 전년 520만 3000가구에 비해 19만 4000가구가 늘어났고, 2010년 422만 가구보다 약 118만 가구 증가한 수치다. 싱글 슈머 또는 솔로 이코노미(1인 가구 증가로 인한 소비자 패턴 변화) 등의 신조어가 경제·산업계에 주요 이슈로 떠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1인 가구 중 '2030 청년층(188만 가구)'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는데 이들의 1인 가구 사유는 '미혼'이었다. 결혼을 못하든, 스스로 비혼을 선택한 독신주의자이든 '결혼은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1인 가구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추석과 같은 '명절 보내기'이다. 이 때문에 명절을 혼자 보내는 '혼추족'이 많다. 하지만 명절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만나 '색다른'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비혼을 선택한 김모(29·여) 씨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단어는 '결혼'이다"면서 "친지 어른들께서 만날 때마다 '언제 결혼해서 집 구하고 아기 낳을 거냐', '30대엔 결혼하기 더 힘들다' 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결혼은 선택사항인데 비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내가 불행하고 인생 패배자처럼 취급하는 어른들의 오지랖이 너무 싫어 이번 추석에는 집에 가지 않기로 했다"며 "비슷한 입장인 친구 두 명과 색다르게 보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 '스트레스 없이 친구들과 하고 싶은 것을 하자'
김 씨는 9월 초부터 동갑내기 친구 두 명과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단순히 집안에서 쉬거나 친지들과 보내는 연휴가 아닌 '해보고 싶던 것을 하자'가 이번 모임의 취지였다. 이들은 이번 추석에 ▲파자마 와인 파티 ▲소양강 바이크 투어를 계획했다.
9월 29일 오후 9시께, 김 씨 일행은 사전에 예약한 파티룸 시설이 있는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한 숙박시설에 모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김 씨의 친구 염모(29·여)씨는 가방에서 풍선을 꺼내 불기 시작했다. 20여 분 후 김 씨와 이모(29·여)씨가 도착했다. 이 씨는 도착하자마자 옷 꾸러미를 풀기 시작했다. 이날 파티의 콘셉트를 위한 파자마와 머리장식이었다. 이 씨는 "한 달 전부터 오늘 파티를 위해 구입해놓은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방 한쪽이 풍선으로 가득 차자 이들은 파자마로 갈아 입었다. 이후 김 씨가 가져온 와인, 와인 잔, 훈제연어 치즈롤 등을 식탁에 꺼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건배사로 "해피 솔로, 해피 추석"이라고 외치며 파티를 시작했다.
첫 잔을 비운 염 씨는 "어른들의 잔소리 듣는 것보다 마음 통하는 친구들 만나는 게 훨씬 힐링 된다"며 "내가 원치 않아 비혼을 선택했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김 씨와 이 씨도 같이 "우리가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사는데 도움도 안 준 사람들이 무슨 오지랖이냐"며 맞장구 쳤다. 친지 어른 등에게 결혼에 대한 압박을 많이 들어온 듯한 한풀이(?)인 듯했다.
김 씨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토리)처럼 지내는 것도 아니다. 우리 역시 친구,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다"고 말했다. 이 씨 역시 "1인 가구, 솔로 이코노미 등 관련 신조어가 많이 쏟아지는데 우리는 그런 거창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며 "단순히 결혼보다 비혼을 선택한 것뿐이지 그 외 다른 점이 없다"고 했다.
1시간 가량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하던 이들은 오후 10시 10분경 부터 마이크를 잡기 시작했다. '어쩌라고', '말달리자', 'L.I.E' 등을 선곡하며 끝날줄 몰랐던 그들의 노래는 해당 숙박업소의 '12시 이후 노래 금지' 시간이 되어 겨우 마무리됐다.
◆ 건강도 챙기는 모임..."혼자 살 때 아프면 큰일"
다음 날인 30일 오후 12시, 이들은 파티룸을 치우고 체크아웃을 했다. '파티가 끝나고 집에 가는 것인가'라고 묻자 김 씨는 "자전거 타러 가요"라며 춘천역으로 향했다. 염 씨는 "예전부터 친구들과 자전거로 소양강 길을 타고 싶었다"면서 "술마시고 놀았으니 건강도 챙길 겸 이번 모임에 추가했다"고 했다.
오후 2시 30분경 춘천역에 도착한 이들은 허겁지겁 자전거를 빌리고 준비운동도 없이 출발했다. 염 씨는 "해가 여름보다 짧아져서 늦으면 자전거 타기에 위험하고 전망도 좋지 않아서 서두르고 있다"고 했다. '어제 술 마시고 늦게까지 놀았는데 피곤하지 않은가, 굳이 자전거 여행을 넣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씨는 "피곤하긴 하지만 몸도 챙겨야 한다"면서 "다들 혼자 살아서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하다 아프면 큰일이다. 누가 챙겨주기도 어렵기 때문에 미리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부연했다.
약 2시간 동안 소양강 옆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던 이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기수를 돌렸다.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춘천역으로 돌아가 서울로 가기 위해서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다리가 아프다 등 피곤을 호소했지만 표정과 목소리는 밝았다.
오후 7시경 서울행 경춘선에 몸을 실은 이들은 추석 당일 명절 음식 만들기와 10월 말 '할로윈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추석뿐만이 아니라 구정이나 지난 5월 연휴 등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사는 친구들끼리 모인다"면서 "추석 당일에는 염 씨네 집에 모여 우리들이 좋아하는 명절 음식을 만들 예정이고, 10월 말에는 할로윈데이를 기념해서 또 모일 예정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틀간의 여행에 지쳤는지 이들의 대화는 이내 끝나고 모두 잠이 들었다.
이후 오후 8시 30분경 용산역에 도착한 이들은 '추석 당일 모이자'는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김 씨는 "저도 방콕(방에서만 콕 박혀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비슷한 상황인 친구들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다"며 "피곤하고 졸리지만 친지들 만나서 스트레스받는 것보다는 덜하다"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
namubox@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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