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소희 기자] 양승태(69·사법연수원 2기) 대법원장이 22일 퇴임하면서 '전(前)' 대법원장으로 남게 됐다. 21일 국회 인준된 김명수(58·15기) 신임 대법원장이 오는 25일부터 제 16대 대법원장으로서 첫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김명수 코트(court)'의 개막이다.
'김명수호'가 출발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이 6년 임기 동안 해결하지 못한 '사법부 개혁'이 실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임기 중 '평생법관제 보장'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대법원을 보수화하고 내부 갈등을 부추겼다는 평을 받고 있다.
◆ '파격'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사법개혁' 눈 앞에?
김명수 대법원장 본인부터 '기수 파괴' 대표적 인사로 언급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연수원 기수는 양 전 대법원장보다 13기수나 아래다. 또 김 대법원장은 3·4대(1961~1968) 대법원장을 지낸 조진만 대법원장 이후 49년 만에 대법관 경력이 없는 대법원장이 됐다. 사법부내 전통적인 '승진코스'인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도 전무하다.
이에 따라 '김명수호'에서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법원장 직속인 법원행정처 출신 법관이 유일한 승진 통로인 고법 부장판사에 주로 임용되면서 행정처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져 각종 폐해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지명 후 첫 공식일정에서 "나는 31년 5개월 동안 사실심(1·2심)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이라며 "그런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릴 것"이라고 했다.
현재 대법원에 대해 '사법부 적폐'로 언급되고 있는 모든 요소가 기수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대법원장의 출발은 시작부터 기대를 얻고 있다. 대법원장은 13명의 대법관 제청권과 3명의 헌법재판관 지명권, 150명이 넘는 법원장, 고법부장 등 고위 법관들을 포함해 3000여 명의 판사와 법원 직원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다.
내년에 5명의 대법관 퇴임이 예정돼 있어 내년 8월이 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구성의 과반수가 김 대법원장이 임명한 인사들로 채워지게 된다. 물론 신임 대법관 지명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들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김 대법관이 취임 후 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인사를 이어가게 되면 진보적 성향의 판사나 재야의 순수 변호사 출신 등이 대법관으로 등용될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입견을 해결해야 하는 것도 김 대법원장의 몫이다.
김 대법원장은 야당으로부터 '정치적 편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진보적 성향의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모두 학술적 단체로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또 기존의 사법정책실과 사법정책지원실의 통합 가능성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특히 내년 2월로 예정된 법관 정기인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법원행정처의 실·국장급 주요 간부도 '김명수호'에서 교체될지도 주목된다.
◆ 고법 부장판사 폐지·상고허가제 도입… 가시밭길일까 꽃길일까
'김명수호'는 앞으로 6년간 사법부를 이끌어 나가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사법개혁을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법부 안팎에 산적해 있는 난제를 김 대법원장이 풀어나가야 한다. 특히 상고허가제 도입, 고법 부장판사 제도 폐지, 대법관 임명제청권 등이 당면한 과제다.
사법부의 대표적 적폐로 언급되고 있는 고법 부장판사 제도는 '평판사-단독판사-지방법원 부장판사-고등법원 부장판사-법원장'으로 이어지는 보임 방식이다. 이같은 수직적 법관 인사 구조에서는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가 돼야 법원장이나 대법관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소수의 엘리트 법관을 고법부장으로 승진시키는 이 제도가 법원 내 유일한 승진으로 인식됐다. 법관의 독립성에 영향을 미치고, 법관의 서열화와 관료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 대법원장은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고법 부장판사 제도를 폐지하고 지법과 고법 법관 인사를 이원화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의 법관 인사를 분리하면서 '법관 인사 이원화'를 현실화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상고허가제 재도입도 '김명수호'에서 실현될지 관심사다.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는 2014년 2937건에서 지난해 3220건으로 늘어났다. 현재 대법원이 모든 상고사건을 처리하는 까닭에 상고심의 급격한 증가는 대법원의 업무 부담을 낳았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법원이 허가한 일부 사건에 대해서만 대법원이 상고심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게 상고허가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1990년 운영됐지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폐지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허가제를 임기 내 '역점사업'으로 삼고 추진했지만,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국회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김 대법원장은 상고허가제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이다.
◆ 소수의견 부활 '청신호'…대법관 임명제청권 '글쎄'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법원노조)는 올초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대법원장은 13명의 대법관 중 11명을 제청했는데 이 중 소수의견을 표명한 사람은 1명도 없었다"며 "획일적인 대법원 구성으로 법원 판결을 전체적으로 보수화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은 입법, 사법, 행정부에서 각가 3명씩 지명하도록 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장은 재판관 중 1명일 뿐이지만, 대법원장에게는 13명의 대법관을 제청할 수 있는 대법관 임명제청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제왕적 대법원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위계질서가 강해지고, 전원합의체나 대법관회의에서 대법원장의 뜻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지난 3월 공개한 법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02명 중 443명(88.2%)이 "사법행정에 관해 대법원장, 법원장 등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 표시를 한 법관이 보직, 평정, 사무분담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했고, "상급심에 반하는 판결을 한 법관도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의견은 47%(236명)나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평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소수의견이 사라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단적인 예로 2015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개입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임에도 대법관 13명이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전원일치로 원심을 파기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수의견 부활을 위해 앞서 언급한 '대법관 임명제청권'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조재연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은 그동안 고위법관의 최종 승진 자리로 운영됐고 순혈주의 상징이었다"며 "종례 기수로만 임명된 대법관은 대법원장 영향력 아래 눈치를 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임자를 제청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후보를 추천받는 공개 천거 절차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심사, 제청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공개 천거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심사를 거치고 있지만 불투명하고 사실상 대법원장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대해 "규정에 따라 원칙을 가지고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비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법을 고쳐야 한다는 시민사회 지적에 대해서는 "회의 내용 비공개는 충분한 논의를 뒷받침하는 전제라고 생각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관 임명제청권 견제를 위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위원회 구성을 보면 현직법관이 3인, 대법원장 위촉이 3인으로 전체 위원 10인 중 과반수 이상이 대법원장의 영향 하에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 제8조 제2항 단서는 대법관 후보의 공개 천거시 심사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역시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민변 역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과 절차가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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