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국회=서민지 기자] 국회에서 통상임금 법제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법원이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정기 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서다. 결국, 통상임금의 '인정 범위'를 결정하는 몫은 정부와 사법부를 거쳐 국회로 돌아온 셈이다.
여야 역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해 하루빨리 통상임금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다만, 문제는 통상임금 기준 범위다. 통상임금 정의를 넓게 설정하면 기업의 추가 비용 부담과 고용 조정 위험성이 있지만, 좁게 설정하면 근로자의 임금 감소와 근로시간 단축 효과 저하 등이 나타난다.
따라서 민주당과 정의당은 노동자의 권익 향상에 방점을 찍은 안을 주장하고 있으며, 보수 야당은 기업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대립하고 있다.
◆ 각종 수당에 영향주는 통상임금…법률상 정의 없어
통상임금이란, 근로자가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으로 일률적으로 받는 기초임금을 말한다.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등 각종 초과 근로수당 산정과 퇴직금 액수를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책정하기 때문에 통상임금 범위는 근로자 임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 기초 임금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초과 근로수당도 많아지는 것이다.
문제는 법이 1953년 법을 제정한 이래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다. 단지 시행령에서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으로 규정하고 있는 게 전부다. 불명확한 정의로 기업들은 그동안 제각각 노사 간 협의를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했다. 다수 기업은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다.
불명확한 정의는 결국 소송에서 재판부에 따른 해석의 차이를 불러왔고 줄소송으로 이어졌다. 지난 1998년 고용부는 "1개월마다 지급되는 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했지만, 2013년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개월을 초과해 지급하는 금품도 정기적으로(정기성), 근로자 모두에게(일률성), 추가 조건 없이 일한 시간에 따라(고정성) 지급하는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기아차 판결에서도 법원은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현재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중 115곳이 현재 통상임금 소송을 벌이고 있다.
노사갈등이 잦아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늘어나는 데다가 이번 기아차 판결로 후폭풍이 거세지자, 노사정과 국회는 통상임금의 개념 및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30일 여야 대표를 만나 "통상임금의 기준을 명확히 근로기준법에 담아 법제화해야 한다"는 재계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집권여당 대표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통상임금 논란이 입법 미비에서 시작된 만큼 근거법에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 통상임금 어디까지 인정해야해? '고정성'에 엇갈리는 희비
국회에는 현재 통상임금 정의와 관련한 2가지 법안이 계류하고 있다. 하나는 지난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안(이하 '김성태안')이고, 다른 하나는 올해 2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근로기준법 개정안(이하 '이용득안')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이른 시일 내 대표발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두 가지 법안은 2013년 12월 18일 '업적연봉이라도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 성격 가지면 통상임금 해당한다고 판단한다'는 대법원 전체합의체 판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통상임금 소송 승패를 갈랐던 '고정성'을 통상임금 충족요건에서 제외할 것인지 여부에서 엇갈린다.
'이용득안'은 3대 요건 가운데 고정성을 제외하고 상여금이 정기성·일률성만 충족하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해당 법안은 '명절 상여금'과 '성과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는 상여금' 등을 제외한 사실상의 모든 급여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못 박고 있다.
'김성태안'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사전에 정한 급여는 통상임금이다. 그 밖에 추가적인 조건 등에 따라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달라지는 급여는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고정성'이라는 용어는 빠져 있지만, '사전에 정한 급여는 통상임금이지만 추가적인 조건에 따라 지급 여부가 갈리는 급여는 통상임금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고정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고정성'은 '근로자가 제공한 근로에 대하여 그 업적, 성과 기타의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사전에 확정된 성질'로, 고정성 유무는 일한 시간에 비례해 급여를 지급하느냐 여부에 따라 갈린다. 근무 일수만큼 상여금을 지급하면 고정성이 있는 것으로, 특정 근무 일수를 채워야만 지급하는 경우에는 고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즉, '고정성'을 빼면 통상임금에 대한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다음 주 내 대표발의 할 예정인 안은 '이용득안' '김성태안' 보다 더 범위가 확대된다. '이정미안'은 "근로자에게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것과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 달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을 포함한다"고 통상임금을 규정한다.
이 대표 측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모든 직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모든 금액'은 통상임금으로 분류하자는 의미"라면서 "이용득 의원 안은 명절 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에서 제한으로 돼 있는데, 저희는 제외되는 금품 등을 적시해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통상임금 법제화, 산 넘어 산인 이유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는 이해관계가 명확히 나뉘는 사안인 만큼 법제화까지 산 넘어 산이다. 노동계는 사용자가 지급하는 모든 급여를 통상임금에 포함하자는 주장인 반면 경제계는 고정성이 낮은 성과급이나 복리후생비 등은 제외하자는 입장이라 정치권 역시 어느 편의 손을 들어주기가 애매한 상황이다. 자칫하다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때문에 국회는 2014년부터 통상임금의 정의를 명문화하기 위한 법안 마련을 추진했지만 아직 진행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또한, 통상임금이 기준치인 만큼 최저임금 기준 및 관련 통상임금 관련 법률안 개정도 고려해야 한다. 과거 노사 간 합의에 대한 인정 여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만약 '고정성'을 제외한 통상임금 정의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이제까지 벌어졌던 고정성 관련 소송으로 확대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일부에선 근로기준법 개정의 불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기아차 노동자 측 대리인 맡은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김기덕 변호사는 "이미 통상임금에 관한 근로기준법 해석은 대법원 판례가 있으니 그대로 따르면 될 뿐, 새로 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반노동성향의 대통령이 집권할 경우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하려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바 있다. 더구나 구체적인 통상임금 범위를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남겨둬 자칫 이미 인정된 통상임금 항목이 제한되거나 논란의 소지가 남은 급여항목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을 길을 아예 틀어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1야당인 한국당이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법원 체포영장 발부를 이유로 국회 보이콧을 하는 등 얼어붙은 국회 상황도 개정안 처리의 악재로 작용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김성태 의원 안을 당론으로 채택했었지만 기아차 판결 후 사회적 파장 크다 보니까 당내에서 수정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면서 "(보이콧)상황이 종료되면 한국당의 내부 수렴을 거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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