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울중앙지검=변동진 기자]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당내에선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진 사퇴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외부에선 검찰과 경찰이 '금품수수 의혹' 사건을 비롯, 정치자금 관련 수사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수천만 원대의 금품제공을 주장하는 사업가 옥모 씨의 과거 전력과 '통합론'과 '자강론'으로 내홍에 휩싸인 바른정당 내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대표적 자강론자인 이혜훈 대표 체제를 흔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서울중앙지검(지검장 윤석열)은 5일 이 대표에 대한 진정 사건과 관련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지난 4일 사건을 형사3부(부장검사 이진동)에 배당했다.
앞서 옥 씨는 2015년 10월부터 올 3월까지 현금과 명품 가방 등 6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이 대표에게 건넸다며 지난달 31일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검찰의 수사와는 별개로 경찰도 이 대표에 대한 정치자금 관련 첩보를 입수, 내사에 착수했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5일 "지난해 7월부터 첩보를 입수해 이 대표를 내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이 들여다보고 있는 의혹은 그가 회장으로 있는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에 기부된 정치자금 5000만 원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피의자가 아닌 피내사자 신분"이라고 했지만, 두 건의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지면서 바른정당 안팎에선 '이혜훈 자진 사퇴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 6월 26일 당 대표로 선출된 지 70일 만이다.
◆바른정당, 야당 연대·통합론 활발…이혜훈 '자진 사퇴론' 힘받나
눈여겨 볼 대목은 공교롭게도 이 대표의 금품수수 의혹 사건과 함께 바른정당 내 자유한국당 또는 국민의당과의 연대 및 통합을 주장하는 진영에서 이 대표의 자진 사퇴를 거세게 요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당내 대표적 '자강론자'인 데, 바른정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강론'과 '통합론'을 놓고 내홍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합론'을 주장하는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은 이 대표 거취와 관련 "본인이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당이 여러 통합설과 관련해 앞으로 방향에 관한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 과정에서 당 대표의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져서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과 정진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열린토론 미래'라는 스터디 모임을 지난달 30일 공식 출범시켰다. 정치권에선 이 모임을 통합의 연결 고리로 보고 있다. 김 의원은 당시 '지금은 정책연대로 시작하지만 결국 양당 통합의 기초가 되는 게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런 고민도 하고 있다. (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 역시 "안보위기 앞에서 보수우파가 분열하는 것은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오늘 처음 시작했으니까 토론회를 거듭할수록 (통합) 논의들이 진전되고 살이 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국민의당 싱크탱크 '국민정책연구원'과 바른정당 싱크탱크 '바른정책연구소'는 정책연대 차원에서 원전 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기구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으고,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출범 날짜와 구성 방식, 토론기구의 형식 등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연대나 통합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원외위원장 원탁회의에서 "국민의당이 중도 통합의 중심 정당이 돼야 한다"고 했다. 정계에선 이를 '바른정당 흡수 통합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한다.
◆사업가 옥 씨 수상한 전력…'자강론' 이혜훈 흔들기 시나리오?
사건의 발단이 된 사업가 옥 씨의 과거 행적도 이번 사건을 '단순한 금품수수' 의혹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당내 분위기다.
옥 씨는 지난 2011년 10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인도국제영화제(IIFA)를 지원해준다는 조건으로 2009년 12월 24일, 29일, 2010년 2월 17일 등 수차례에 걸쳐 룸싸롱에서 3000만 원가량의 술 접대 및 실물을 편취했다"며 고소장을 접수했다.
앞서 2011년 3월에는 전직 국무총리의 아들 서울대 A 교수를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하면서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협박을 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옥 씨는 당시 검찰에 소장을 제출하면서 "A씨가 2010년 인도국제영화제의 한국 유치 및 진행과 관련해 현 정부 실세 인사들을 통해 5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도록 해주겠다고 속여 강남 룸살롱 등에서 수억 원어치의 접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 사건과 관련 <더팩트> 취재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옥 씨는)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알고 있어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표 역시 옥 씨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으며, 이번 금품수수 의혹이 '허위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옥 씨는 사기 전과범"이라며 "(옥 씨가) 자원해 돕고 싶다며 접근해 알게 됐다. 금전은 수시로 연락해 '개인적으로 쓰고 갚으라'고 해 중간에 갚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는 방식이 지속되다 오래전에 전액 다 갚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코디 용품이라며 일방적으로 들고 왔고, 구입대금 모두 오래 전에 전액 지급 완료했다. (대기업 부회장급 임원과 금융기관 부행장은) 연결한 적도 없고, 더구나 청탁한 일은 전혀 없다"며 "옥 씨에 대한 법적대응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야당과의 연대·통합론이 활발한 상황에서 '자강론'을 펼치는 이 대표 체제를 흔들기 위한 준비된 기획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모든 사건에는 '정치적 의미'가 내재돼 있다. 자강론자 이 대표가 이렇게 된 것을 누가 가장 좋아하겠냐. 낡은 보수(자유한국당)'가 가장 좋아할 일이다"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하 위원은 또 '결국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일부에서도 나오는 여러 가지 형태의 통합론의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이 대표가 제거되는 정치적 효과가 나지 않냐'는 질문에 "그렇다. 제가 볼 때 (자유한국당과 무원칙 합당은) 보수 폭망의 길인데, 그런 흐름이 내부적으로 강화된 면이 있다"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바른정당 한 의원은 "당 안팎에서 '기획의 냄새가 난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금품수수 의혹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낄낄대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자진 사퇴'와 관련 "제가 당에 대해 가진 충정을 믿어주시길 바란다"며 "당을 위한 결정을 곧 내리겠다. 조금만 더 말미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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