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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이슈] "가혹하다" 박기영, '자진사퇴' 결심한 3가지 이유

  • 정치 | 2017-08-12 05:55

과거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돼 자질 논란을 빚은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1일 결국 자진사퇴했다. 전날 오후 박 본부장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여 간담회장을 빠져나가고 있다./이새롬 기자
과거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돼 자질 논란을 빚은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1일 결국 자진사퇴했다. 전날 오후 박 본부장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여 간담회장을 빠져나가고 있다./이새롬 기자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세상이 이렇게까지 가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기영(59)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은 11일 '사퇴의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연루'로 각계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던 그의 심경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전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던 박 본부장은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이날 자진사퇴했다. 지난 7일 임명된 지 나흘 만이다.

박 본부장은 임명 직후 곧바로 도마에 올랐다. '황우석 사태'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참여정부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박 본부장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돼 물러났다. 당시 관련 논문에 기여한 사실이 없는데도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비윤리적인 난자 확보 문제가 불거지자 황 전 교수를 변호하는 등 지탄을 받았다.

그런 그의 청와대 입성에 과학기술계는 반발했다. 과학기술인들이 중심이 된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지난 8일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운다'는 성명을 내고 "박 본부장 임명은 한국사회 과학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기술체제 개혁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건강과대안, 보건의료단체연합, 서울생명윤리포럼, 시민과학센터, 한국생명윤리학회, 환경운동연합 등의 시민단체들도 이날 박기영 본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정치권도 일제히 임명철회를 촉구했다.

과거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돼 논란 자질이 일고 있는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 참석하며 박 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원들을 지나치고 있다./이새롬 기자
과거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돼 논란 자질이 일고 있는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 참석하며 박 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원들을 지나치고 있다./이새롬 기자

이에 박 본부장은 10일 '황우석 사태'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일할 기회를 달라"며 사퇴 불가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박 본부장이 사퇴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는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한 책임자로서 저도 수백번 무릎꿇고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과학기술이라는 배의 항해를 맡았는데 배를 송두리째 물에 빠뜨린 죄인이라는 생각에 국민 모두에게 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묵묵히 모든 매를 다 맞기로 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어떠한 사과도 귀기울여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라고 억울한 마음을 호소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청와대도 박 본부장의 자진사퇴 쪽에 무게가 실린 분위기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11일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께서 아침에 (박기영 본부장 임명 논란에 대한) 언론 보도를 담은 보고를 받으셨다"며 "과학기술계의 반응 등을 유념해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처럼 '자진사퇴' 형식으로 사실상 '임명철회' 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됐다.

이후 청와내 내부에서 '박 본부장의 이번 주말 사퇴설'이 흘러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본부장이 버티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그러나 주말까지도 가지 않았다. 그는 11일 곧바로 자진사퇴를 발표했다. 더는 자신을 기용한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지울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본부장은 "어려운 상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저를 본부장으로 지명해주시고 대변인 브리핑으로 또다시 신뢰를 보여주신 대통령께 감사 드립니다"라고 했다.

지난 10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는 박기영 본부장./이새롬 기자
지난 10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는 박기영 본부장./이새롬 기자

무엇보다 '여성비하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는 탁현민 행정관과 달리 우군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박 본부장은 사퇴 이전 탁 행정관과 같은 케이스로 평가받았다. 야권과 여성계는 지난 5월 말부터 2개월여 동안 탁 행정관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박 본부장과 달리 탁 행정관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야인 시절부터 인연이 깊고, 문 대통령의 측근 일부는 탁 행정관을 지원사격했다. 반면 박 본부장은 여당마저도 옹호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결국 10년 만에 화려하게 공직으로 복귀했던 박 본부장은 또다시 불명예 퇴진했다. 그는 "대학 1학년때부터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을 가졌고 사회의 과학기술운동에 거의 40년간 몸담았습니다. 이번 계기로 제가 노력했던 꿈과 연구 목표 그리고 삶에서 중요시 여겼던 진정성과 인격마저도 송두리째 매도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에게 큰 실망과 지속적인 논란을 안겨드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저의 사퇴가 과학기술계의 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고 했다.

한편 박 본부장의 사퇴로 청와대 인사시스템도 흠집 났다. 청와대 인사와 검증을 담당하는 인사추천위원회는 비서실장(위원장), 인사수석(간사), 정책실장, 국가안보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 국민소통수석, 국정상황실장 등으로 구성된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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