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대선'이 시작됐습니다. 5월 9일 국민은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번 선거는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후보도 많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물론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주요 대권주자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취재 기자들도 바빠집니다. 후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보들과 일정을 함께하는 기자를 '마크맨'이라고합니다. <더팩트> 기자들도 각 후보별 마크맨들이 낮밤없이 취재 중입니다. '마크맨 25시'는 취재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가감없이 풀어쓰는 코너입니다. 각 후보 일정을 취재하며 마크맨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취재를 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 | 목포·광주=서민지 기자] 논란의 제3차 TV토론 다음 날인 24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호남 민심 붙들기' 일정을 쫓았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오후 1시 30분께 목포역에 도착했다. 선거 유세 일정은 오후 4시 시작이라, 시간이 넉넉했다. 동료 기자들과 점심을 먹으며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제 TV토론 챙겼어요?"
우리들의 대화 주제는 단연코 전날(23일) 밤에 있었던 '제3차 TV 토론회'였다. 인사처럼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모두 입을 모아 애써 준비한 토론이 단순 '웃음거리'로 전락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역시 '안철수 마크맨'들이다. 국민의당 당직자들과 나눈 첫마디도 "어제 토론을 어떻게 봤는가"였다. 당직자 두어명은 쓴웃음을 지으며 "정책 토론을 준비했는데, 시간이 너무 짧았지. 아쉽게 됐지 뭐"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모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은 분명했지만 '갑철수'와 'MB아바타'를 몰랐던 사람들에게까지 스스로 알려주며 '셀프디스' 아니었냐는 평가부터, 온라인에선 '안초딩'이라는 별명까지 생기는 등 '뼈아픈 결과'를 낳았다.
▶ '답정너' 취준생 토스 공부하던 시절이 떠오르다
난상 토론이 된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지속하다 보니 갑자기 '취업준비생' 시절 토익스피킹(이하 '토스')을 준비할 때가 떠올랐다. 급하게 자격증을 따야하는 상황이라, 토스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다. 수강한 프로그램은 '3주 만에 토스 정복하기'였다. 토스는 컴퓨터가 랜덤하게 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시간이 15초 등으로 매우 짧은데, 더듬거리지 않고 유창하게 대답을 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짧은 말을 하더라도, 논리가 있어야 한다. 한번 막히면 15초는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이에 따른 '특훈'이 필요했다.
학원 선생님은 3주 안에 고득점을 얻을 수 있는 비법을 전수했다. 그 방법은 이랬다. 어디든 써먹을 수 있는 문장을 몇 가지 만들어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가령 "나는 짜장면을 좋아해. 왜냐하면 짜장 소스는 특이한 맛이 나거든. 특히 명동의 그 짜장면집 소스는 양파가 적당이 곁들여져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 나는 남자친구와 자주 이곳을 찾곤 해" 등의 문장을 만들어놓는다.
이렇게되면, 컴퓨터가 "너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니?"부터 "지난 주말에 뭐했니?" "너의 취미생활은 뭐니?" 등 어떤 질문을 해도, "응 난 짜장면을 먹었어. 나는 짜장면을 정말 좋아하거든. 왜냐하면~"이라는 식으로 임기응변식 대응을 할 수 있게 된다. 뜻밖의 질문이 나오면 당황할 수 있지만, 이런 필수 문장 20여 개를 만들어 놓으면 웬만한 문제는 풀 수 있다. 즉,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돼) 방식이다. 이 방법으로 나름대로 높은 점수를 획득한 바 있다.
안 후보의 '답정너 토론' 방식은 단기간 토스 점수 올리기와 비슷하다. 그는 비슷한 카테고리에 있는 질문을 받으면, 준비한 답변 외 다른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연대설'이 불거졌을 때 연대 관련한 그 어떤 질문에도 "저는 연대로 가지 않고 고~대로 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성대가 상했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때문에 농담도 입력된 말만 하는 '안파고'라는 말이 나왔고, '워딩'을 받아치는 기자들은 "이쯤되니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차라리 자동완성기능이 있었으면"이라고 말을 자주해 왔다.
전날도 미리 준비해 온 '갑철수' 'MB아바타' 질문을 분위기와 맥락에 관계없이 과제를 해치우 듯 던졌다. 안 후보 입장에선, 문 후보가 해야할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토스 시험이 아닌 서로 물고 뜯기는 대선토론에서 문 후보가 컴퓨터가 아닌 이상 나온 질문에 정해진 답을 해줄 리 없었고, 토론도 제대로 풀릴 리 없었다.
▶ 얼굴 빨개지고, 눈시울 붉어진 '진짜 안철수를' 마주하다
안 후보가 늘 토론 때처럼 분위기에 맞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영 소통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으로 돌아온 안 후보는 이날 연설 도중 눈시울을 붉히고, 청년들과 대화에선 상담교수님처럼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늦은 밤 SBSX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선 '실 없는 아재개그'를 던지거나 '먹방'을 찍으며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안 후보는 목포역과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유세에서 울컥했다. '박지원 상왕론' 종식을 위해 정면돌파를 택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에게 감사함을 표하면서다.
"어제 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박지원이 저 안철수 대통령 되면 어떤 임명직 공직에도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안철수의 승리가 제2의 DJ의 길이라고도 말씀 하셨습니다. 반드시 승리해서 그 결단에 보답하겠습니다!"
특히 전남대 유세 때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안 후보의 진심은 고스란히 청중에게 전달됐다. 전남대에 몰린 5000여 명의 광주 시민들의 환호소리는 더욱 커졌다.
나주 한전KDN에선 자상한 교수님 같은 면모를 보였다. 4명의 직원들과 마주 앉아 "모두 나주 분들인가요. 전국에서 다 모였네요. 살아보니 어때요. 여기 거주환경 괜찮나요? 지금 다 연구직인가요, 사무직인가요. 4차 산업혁명 현장에 계신 분들 아닌가요. 어떨 때는 좀 앞으로 어떤 일 생길지 가슴 벅차 두근두근한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막연히 불안하고 걱정될 텐데 지금 여러분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서요"라고 조곤조곤 질문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안철수 신드롬'을 몰고온 '청춘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제 가르마요? 2:8? 아니 자주 변해요, 어떨 때는 7.775 : 2.225. 엇, 어이없어 하는 웃음. 으하하하."
저녁 페북 방송에선 포텐이 터졌다. 개그맨 정찬우 씨, 조정식 SBS 아나운서와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정책과 비전을 설명할 땐 진지했지만, 중간중간 빵을 먹으며 "아유, 먹을 시간이 없네. 맛있습니다~" 라며 '먹방'을 찍는 평소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또, "아내 김미경 교수와 다정해 보인다"는 말엔 "다정해보이는 게 아니라 다정합니다", 조깅하는 사진을 보며 정찬우 씨가 "장딴지가 장난 아니겠네요"라고 칭찬하자, "아니요. 장난이죠. 아하하"라고 웃기도 했다.
실시간으로 올라온 시청자 댓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웃고, 자연스러우니까 보는 저희도 보기 편하네요"였다. 정찬우 씨와 조 아나운서가 댓글을 읽어주자, 안 후보는 호탕하게 웃으며 "하하, 항상 먹을 걸 가지고 다녀야겠네요"라고 화답했다.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진짜 안철수'의 모습을 보였을 때, 큰 호응이 따라오는 것이었다.
25일 또 한번의 TV토론이 안 후보를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도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향후 안 후보의 TV 토론 방향에 대해 "앞으로는 '안철수식'으로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진단했다. 안 후보는 모든 일정을 비우고 오후 8시 40분 제4차 TV토론회에 '올인'했다. 이번 토론엔 '진짜 안철수'의 모습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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