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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취재기] '태극기'의 무차별 공격…"XXX들 오늘 다 죽었어"

  • 정치 | 2017-03-11 05:00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인 10일 오전 박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안을 인용한 가운데, 이에 반발한 박사모 및 보수단체 회원들이 헌재 앞 안국역에서 경찰과 대치를 하고 있다. /종로=이새롬 기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인 10일 오전 박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안을 인용한 가운데, 이에 반발한 박사모 및 보수단체 회원들이 헌재 앞 안국역에서 경찰과 대치를 하고 있다. /종로=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종로=신진환 기자] "당신 아들이 돌에 맞는다면 좋겠냐."

10일 오후 헌법재판소 인근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 앞. 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를 내리자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일부 보수성향 시민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헌재로 향하려 할 때 이를 지켜보던 같은 '동지'가 제지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태극기 집회를 열었다.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박 전 대통령이 파면 되자 질서를 유지했던 집회는 삽시간에 폭력 시위로 돌변했다. 긴장감도 고조됐다.

오후 12시께 군복을 입은 몇몇 사람이 선두로 나서 헌재로 가는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을 뚫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흥분한 한 참여자가 차벽으로 세워진 경찰버스 지붕에 올랐다. 급기야 전달받은 각목으로 경찰들을 향해 휘저으며 위협을 가했다.

이를 본 성난 참여자들이 폴리스라인을 허무는 데 가세했고, 그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떤 이는 쇠파이프나 '탄핵 기각'이라고 적힌 야구방망이를 들고 "재판관들을 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소리치면서 경찰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각목이나 태극기 봉은 약한(?) 수준의 무기였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인 10일 오전 박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안을 인용한 가운데, 이에 반발한 박사모 및 보수단체 회원들이 차벽을 흔드는 등 격렬하게 시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인 10일 오전 박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안을 인용한 가운데, 이에 반발한 박사모 및 보수단체 회원들이 차벽을 흔드는 등 격렬하게 시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던 와중에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한 남성이 "XXX들 오늘 다 죽었어"라며 어른 주먹만 한 돌을 들고 무리에 합류했다. 그리곤 경찰을 향해 돌을 힘껏 던졌다. 기자도 모르게 "안 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다행히 아무도 맞지 않았지만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었다.

역시나 돌을 투척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이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보다 못해 이를 말렸다. "이러지들 마세요. 경찰들도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것인데 무슨 죄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혼자서 여러 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는 인상을 구기며 자리를 피했다.

격한 시위 탓에 경찰 버스도 파손됐다. 특히 버스 지붕 위에 있는 경찰이 있음에도 차체를 흔들어댔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취재진도 여러 위험에 노출됐다. 기자도 취재하는 도중 부러진 각목 일부가 버스를 타고 넘어와 앞에 떨어지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어디서 돌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젊은 놈이 여기서 뭐 하느냐"는 볼멘소리부터 "기자XX들도 여론 선동하는 '빨갱이'"라며 기자를 둘러싸기도 했다. "취재하고 있다.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에도 이들은 안하무인이었고, 거친 몸싸움에 시달려야 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인 10일 오전 박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안을 인용한 가운데, 이에 반발한 박사모 및 보수단체 회원 중 한명이 스피커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인 10일 오전 박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안을 인용한 가운데, 이에 반발한 박사모 및 보수단체 회원 중 한명이 스피커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기자뿐 아니라 다른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근처에 있던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손으로 막고 거칠게 항의하거나 주먹을 쥔 채 금방이라도 때릴 기세로 덤벼들었다. 또, 기자와 같은 곳에 있던 대만의 모 방송국 카메라기자는 돌로 뒤통수를 가격당해 피를 흘렸다. 일본 외신 기자 역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격한 시위 탓에 시위 현장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70대 남성이 차량에서 떨어진 스피커에 맞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또, 신원 미상의 중년 남성이 심정지로 발견돼 끝내 목숨을 잃었다.

박 전 대통령이 임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파면되면서 보수 성향 시민들의 거센 반발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취재진을 위협하고, 무차별적이며 비평화적으로 경찰에 물리력을 행사했다. 이들이 자칭하는 '애국시민'이라는 명칭이 무색했다.

온종일 시위를 지켜보며 시달렸던 탓일까. 당신의 가족이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위협받고 있다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냐 묻고 싶다. 경찰도 취재진도 주어진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다. 태극기집회 주최 측은 앞으로도 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폭력으로 얼룩진 유혈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자칭 '애국시민'이라면 평화적이고 합리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애국'은 '자기 나라를 사랑함'을 뜻한다. 하지만 헌재 앞에서 보인 '애국시민'의 폭력적 시위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이 아닌 '편협한 애국주의'에 지나지 않는 '징고이즘(Jingoism)'이면서,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광신적인 애국주의나 국수적인 이기주의'인 '쇼비니즘(chauvinism)'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yaho101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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