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시청=서민지 기자] 야권 대선주자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사방의 시선이 집중되는 만큼 이들은 '표정 관리'에 힘썼지만, 때로 드러나는 '인간적인 감정'이란 어쩔 수 없었다. '대결구도'를 형성한 상대방에 대해선 얼굴도 붉히고, 거침없는 쓴소리도 내뱉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날 오전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3회 한국여성대회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행사에 참석했다.
가장 속내를 숨길 수 없는 대선주자는 이번 대선에서 '文과 安의 대결'을 공언한 안 전 대표였다. 최근 논란이 된 '짐승' '정치가 무섭다' 등 '가시돋인 발언'들을 주고받은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의 신경전은 이날 분위기 속에 그대로 묻어났다. 2015년 12월 안 전 대표가 민주당(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가시화된 두 사람의 갈등이 최근 야권의 대선주자로 마주하게 되면서 심화되는 모양새다.
안 전 대표는 가장 먼저 행사장에 도착해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특유의 "하하"라는 밝은 웃음 소리가 강당 내 울려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11시 50분께 문 전 대표가 도착하면서 부터 굳은 표정을 보였다. 악수를 하긴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나란히 앉아서도 한 마디 정도의 짧은 대화만 나눴을 뿐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문 전 대표는 손에 쥔 보라색 장미꽃을 바라봤고, 안 전 대표는 앞만 쳐다보며 눈을 깜빡깜빡 떴다 감았다.
반면 최근 '브로맨스(brother romance·남자들끼리 갖는 매우 두텁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안 전 대표와 이 시장은 이날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평소 점잖은 이미지의 안 전 대표는 이 시장과 악수를 나눌 땐 장난스런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쳤고, 이 시장 역시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3일 안 전 대표가 JTBC '썰전'에 출연한 당시부터 부쩍 가까워졌다.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는 '경쟁자'로 꼽았지만, 대선주자 중 친구 삼고 싶은 한 사람은 이 시장으로 꼽았다. 그는 "정치적으로 자수성가한 것 아니냐. 동질감을 느낀다. 힘내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다. 파이팅"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의 응원에 이 시장은 "안철수 의원님 고맙다. 찬바람만 가득한 벌판에 살포시 내려앉은 아침 햇살 같은 말씀에 감동했다. 안철수 파이팅"이라고 했고, 여기에 안 전 대표가 온라인 상에서 공개적으로 '티타임'을 제안하면서 '친분'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 시장 역시 같은 당 '경쟁 관계'인 문 전 대표를 향해선 경계심을 드러냈다. 민주당의 경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이 시장은 당내 지지율 1위인 문 전 대표를 꺾고 반전을 노려야 하는 입장이다.
대선주자들은 '성평등 마이크' 코너에서 배우이자 여성연합 홍보대사인 권해효 씨와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의 사회로 '성평등'에 대한 질의응답을 주고 받았다. 대부분의 주자들은 '성평등 정책' 관련 질문에 미리 준비한 답변을 이어갔다. 그러나 마지막 주자로 나선 이 시장은 '낙태법 폐지'라는 '돌발질문'을 받았다.
다소 민감한 주제인 만큼 이 시장은 "정말 곤란한 질문이다. 문 전 대표는 미리 답을 다 알고 읽는 것 같던데 왜 나한테만 어려운 부분을 질문하나"라며 '50대 여성을 위한 정책'에 대한 질문을 받고 준비된 내용을 읽은 문 전 대표를 저격했다.
같은 당 대선주자인 이 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비해 의사 전달력이나 표현력, 호소력 등이 약한 인물로 평가되는 문 전 대표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KBS 주관 대선주자 좌담회나 민주당 지방의원협의회 초청 대선 후보 토론회에 불참하면서 '토론회를 기피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 시장의 '뼈있는 농담'에 당황한 질문자 김 대표는 "우리 서로 그런 부분은 말하지 않기로 하자"며 농담으로 마무리했다. 이래저래 '공공의 적'인 문 전 대표는 멋쩍은 듯 웃었다. 야권이란 한지붕 아래 불꽃튀는 주자들 간 전쟁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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