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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색다른 인문학] 백성은 물, 임금은 배

  • 정치 | 2016-12-26 10:43

교수신문은 최근 올해의 사자성어로
교수신문은 최근 올해의 사자성어로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다.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의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순자(荀子)는 왕제(王制)편에서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다.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고 했다. 따라서 군주는 이를 명심해야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이 같은 내용의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절묘하다. 세월호가 온 국민의 피눈물 속으로 가라앉았다면, 그는 일렁이는 촛불의 바다에서 침몰하고 있다. 진도의 차가운 남해 바다에 선수만 뾰족하게 남았던 세월호의 잔영과 탄핵의 파도에 휩쓸려 지붕 한 귀퉁이만 남은 청와대의 형상이 묘하게 겹친다.

두번째 사자성어는 '역천자망(逆天者亡)'이라고 한다. 천명(天命)을 거스르는 자 망한다는 뜻이다. 민심은 천심이니 천명은 바로 국민의 지엄한 명령이다. 둘 다 현재의 상황을 짚었다.

지난해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뜻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어지럽힌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셈이다. 모두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영애 시절 최태민 목사 등을 직접 취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장은 박 대통령에게 큰 영애와 최태민의 관계를 보고했으니 묵살당하자 이에 대통령을 시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대통령기록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영애 시절 최태민 목사 등을 직접 취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장은 박 대통령에게 큰 영애와 최태민의 관계를 보고했으니 묵살당하자 이에 대통령을 시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대통령기록관

아마도 그는 촛불만 생각하면 자괴감보다 괴로움이 앞설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북풍이 한번 불면 꺼질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풍전등촉(風前燈燭)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LED 촛불은 북풍한설에도 찬연히 빛을 발했다.

사실 그가 수첩을 들춰가며 깨알 지시를 내릴 때 무미불촉(無微不燭), 사물을 샅샅이 밝히어 살펴보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저 구반문촉(毆槃捫燭)하는 것이었다. 장님이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어루만져 본 것만으로 태양에 대해 둥글다 뜨겁다고 말한다는 의미이다. 남의 말만 듣고 지레짐작으로 이렇다 저렇다 논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남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이제 모두가 안다.

그런 와중에 추락하는 인물들도 많았다. 한때 높이 날아올랐던 그들은 양초로 만들어진 날개가 녹아내리면서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본디 '고촉이명자전(膏燭以明自煎)'이라 했다. 초는 그 타는 불빛으로 인해 스스로 소멸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재지(才智)로 말미암아 재앙을 자초하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여하튼 성난 촛불의 바다에 그대로 가라앉아 구명조끼를 입었는데도 발견하기 어려워 구조되지 못한다면, 그래도 민심은 '향촉대(香燭代)'쯤의 성의는 표시할지 모르겠다.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되풀이된다고 마르크스가 말했던가. 아버지 대통령의 '유신정권'이 비극으로 최후를 맞이했다면, 딸 대통령의 '미신정권'은 웃음거리로 그 막을 내리고 있다. 슬픈 역사의 '도돌이표' 변주곡이다. 공통점이라면 '백성이 주인이고 물이며, 자신은 심부름꾼이고 배'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사진은 지난 1963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등 가족이 함께한 신년기념촬영. /사진=대통령기록관
사진은 지난 1963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등 가족이 함께한 신년기념촬영. /사진=대통령기록관

그렇다고 그저 손가락질 하기에는 좀 멋쩍다. 검지 하나가 그를 가리킬 때 중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나의 가슴을 가리키지 않는가. 엄지는 하늘을 향하면서 말이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며, 여기가 거기이고, 거기가 여기 아니냐"고 하던 독백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장자(莊子)가 추수(秋水)편에서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장소에 갇혀서(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여름 벌레가 얼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때에 붙잡혀서(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굽은 선비가 도(道)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배운 바에 묶여서(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教也)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장소에 갇히고, 때에 붙잡히고, 배운 바에 묶인 자는 누구인가. 그들인가, 우리들인가. 너인가, 나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과 사실상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국회는 지난 9일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국민은 매주 주말 거리로 나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과 사실상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국회는 지난 9일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국민은 매주 주말 거리로 나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미망(迷妄)일 뿐이다. 본디 우리네 삶이야 천지간의 하루살이일 뿐이요, 우리네 몸이야 짙푸른 바다의 한 톨 좁쌀에 불과한 것 아니겠나. 그런 것을 기념한들 무엇이며, 묘비명에 새긴들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시인 키이츠는 이마저 "물에 쓰인 이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적과 흑'으로 유명한 스탕달은 묘비명에 이렇게 썼다. "살았고, 썼고, 사랑했다." 누구나 살고 사랑하지만, 쓴다는 것은 선택이자 일종의 구도(求道)이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말했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그저 화광동진(和光同塵)하며 현동(玄同)하라고.

그럼에도 필자는 숨을 쉬듯 써왔다. 때로는 질식할 것 같았고, 때로는 한숨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기에 가슴 속 깊이 시원함을 맛보기도 했다. 내가 쉰 숨을 그대가 마셨을 것이며, 그대가 내쉰 숨을 내가 마셨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숨을 함께 나눠 마신 것이다.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다.

종지부 없는 인생이 없는 것처럼 모든 글을 끝이 있다. 그 끝에 마침표가 찍혀 있다면, 또한 느낌표가 찍혀 있다면 그나마 미완(未完)은 아니지 않겠나. 보는 이여, 그저 '차가운 눈(Cold Eye)'을 던지며 넘어가시라!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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