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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색다른 인문학] 탄핵정국, 사상누각 말고 모죽(毛竹)의 자세로

  • 정치 | 2016-12-19 10:28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농단 의혹의 핵심인 최순실(구속 기소) 씨와의 관계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이같이 표현했다. 키친 캐비닛은 미국에서 대통령이 격의 없이 조언을 듣고 의지하는 비공식 자문위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박 대통령이 '비밀 누설'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윤호 기자,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농단 의혹의 핵심인 최순실(구속 기소) 씨와의 관계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이같이 표현했다. 키친 캐비닛은 미국에서 대통령이 격의 없이 조언을 듣고 의지하는 비공식 자문위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박 대통령이 '비밀 누설'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윤호 기자, 청와대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중국에 모죽(毛竹)이라는 대나무가 있다. 중국 동부와 대만에서 주로 자란다. 발음은 '마오주'이다. 그렇다고 모택동 대나무는 아니다. 일본에서는 맹종죽(孟宗竹), 발음은 '모오소오치쿠'이다. 죽순은 식용으로 쓰인다.

하지만 옷감 소재로 유명하다. 대나무 섬유는 면보다 인장 강력이 세 배 이상 강하다. 모죽이 중국 대나무 섬유산업의 주요 소재인 배경이다. 간혹 재킷의 섬유구성표에 '면 44/ 대나무 36/ 마 20'으로 표시된 경우가 있다. 대나무 섬유가 36%라는 뜻이다. 면과 대나무와 마가 섞인 옷인 만큼 두툼하면서도 시원하다.

그런데 이 모죽이 유명한 것은 그 식생 때문이다. 처음 씨앗을 뿌리면 우선 들쥐들이 먹어 치운다. 생존률은 낮지만 몇 주 지나면 싹을 틔운다. 그런데 첫 줄기는 아주 작아서 5cm이내이다. 두께는 2mm정도로 매우 연약하다.

그런 상태에서 4년 정도가 지난다고 한다. 아무리 물을 주고 거름을 줘도 전혀 자라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4년이 지나 5년이 되면 갑자기 쑥쑥 자라기 시작하는데, 한 달 보름 만에 15m 이상 뻗어 올라간다고 한다. 다 자라면 높이가 30m가량 된다.

일반인의 눈에는 기적처럼 보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밭에서 한두 달 만에 엄청난 높이의 대나무 숲이 생기니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벽해죽전(碧海竹田)이라고 해야 할까. 그 신기함에 찬탄한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달 8일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에 따른 수습책을 위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회동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배정한 기자
사진은 지난달 8일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에 따른 수습책을 위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회동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배정한 기자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자라는 속도가 아니다. 전혀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4년여 동안 실은 넓고도 깊게 열심히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렇게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하루에 30cm 가량 쑥쑥 자라도 그 몸통의 무게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모죽의 이런 성질 때문에 종종 인생의 귀감으로 소개된다. 촐싹거리지 않고 진중하게 준비하면 거센 바람이 아니라 사람이 흔들어도 뽑혀 나가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게다가 대나무는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하나가 아니던가.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한다. 그 뿐이랴. 휘어지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 꼿꼿함 덕분에 선비의 표상으로 일컬어졌다.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해서 매화 소나무와 더불어 선비들의 문인화에 주로 나타난 배경이다.

최후의 유학자이자 서예가인 강암 송성용도 바람에 잎이 흔들리는 이른바 풍죽(風竹)을 즐겨 그렸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 한정식 음식점 '향연'에 가면 진짜배기(!)를 감상할 수 있다.

그 대척에 있는 것이 바로 '사상누각(沙上樓閣)'일 것이다. 모래 위에 급히 지은 누각인데, 작은 물결에 모래가 조금만 쓸려 나가도 누각이 기울고 쓰러지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측이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한 검찰의 수사 발표에 '사상누각'이라고 반발했는데, 국민들이 헷갈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 눈에는 청와대의 권력이 사상누각으로 보이는데, 검찰 수사를 사상누각이라 표현하니 어리둥절한 것이다. 일종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니 항간에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박 대통령과 그 일당이 '인숭무레기'라는 것이다. 순 우리말로, 어리석어 사리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를 낮잡아 부르면 '아둔패기'이다. 아둔한 사람을 이른다. '바사기'란 표현도 있다. 사물에 어두워 아는 것이 없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청와대는 검찰이 최순실 등의 구속 기소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사실상 공범으로 적시하고 피의자로 입건한 것과 관련해
청와대는 검찰이 최순실 등의 구속 기소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사실상 공범으로 적시하고 피의자로 입건한 것과 관련해 "사상누각"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반응을 두고 국민은 "적반하장"이라며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이새롬 기자

그런가 하면 국정조사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축들이 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가 단골 레퍼토리인데, 이들을 일컬어 '멍추'라고 한다. 기억력이 부족하고 매우 흐리멍덩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발음이 비슷한 '맹추'는 똑똑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고시출신으로 장관 수석까지 지낸 고위공직자들이 똑똑하지 않을 리는 없으므로, 이들은 '맹추'가 아니라 '멍추'라고 불러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바야흐로 '배신의 시대'이다. 뒷골목 저자거리의 싸구려 의리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에 대한 배신이다. 국민이 주인인데, 마치 머슴이 주인인 것처럼 행세한다. 마음대로 주인의 재산을 처분하고 주머니 속에 챙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고 우롱하면서 끼리끼리 음습한 의리를 내세운다.

이들은 말이나 행동이 다부지지 못하고 어리석은 '어리보기'라 부르기보다는, 그저 못난 사람을 이르는 '덤거리'라 부르기보다는, 어리석어서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치룽구니'가 적절할 듯하다. 덕분에 모처럼 순 우리말을 공부하게 됐는데, 대부분 '모자란 사람'이란 뜻이어서 아쉽다.

맹자는 말했다. 오히려 하늘이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자신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고. 결국 문득 닥쳐온 화(禍)는 알고 보면 자초(自招)한 것이라고. 결국,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이 아니겠나. 그렇다면 탄핵을 당한 대통령도 자업자득이고, 그런 대통령을 둔 국민도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과보(果報)를 원천적으로 피할 방법은 없을까.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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