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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취재기] '박 대통령 탄핵 가결' 역사의 70분…그리고 그 후

  • 정치 | 2016-12-10 05:00

정세균 국회의장이 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찬성 234표'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찬성 234표'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더팩트 | 국회=서민지 기자] "총투표수 299표 중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78%의 의원이 '촛불(국민)'의 목소리를 수용해 박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탄핵 과정은 속전속결로 진행됐습니다. '친박계 수장'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을 제외한 299명 국회의원 전원이 투표를 해 박 대통령을 탄핵하기까지 단 70분이 걸렸습니다.

단, 검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만큼은 '70시간' 같았습니다. 의원들은 투표를 끝내고 자리에 앉아 초조하게 검표 결과를 기다립니다. 평소엔 주변의 동료들과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웠던 의원들, 아무도 대화를 하지 않아 적막이 흐릅니다. 자동검표기가 표를 세는 '차르르륵'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조용한 가운데서도 각자의 심리는 얼굴에 드러난 표정이 말해줍니다. '주군'으로 열심히 모셨던 박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는 법적 과정이기에 친박계 의원들의 표정은 암울합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멍'한 표정으로 정면만 응시합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천장을 봤다가, 정면을 응시했다가, 그것도 안되겠는지 두손을 꼭 모으고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는 국회의원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이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는 국회의원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이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10여분이 흘렀습니다.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등 일부 야당 검표 의원들이 적막을 깨고 각당에 사인을 보냅니다. 손으로 'OK'를 그리거나, 찬성표 숫자(234)를 쓰는 등 각당에 메시지를 보냅니다. 즉 '가결'이 확정됐단 것이지요.

일부야당 의원들은 이들이 보내 온 '가결 확정 사인'에 양손을 번쩍 들며 좋아합니다. 반면 친박계 의원들은 '올 것이 왔다'는 비통한 표정을 짓습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검표 의원들이 그런걸 왜 말하고 있느냐"면서 지적을 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가결 확정'을 발표했고, 곧장 본회의 '산회'를 선포했습니다. '친박계' 의원들은 가장 먼저 본회의장을 벗어났고 곧장 의총을 열었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각종 '보고대회'를 열며 축제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제대로 즐기기보다, "이제 시작"이라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노란 점퍼를 입고 방청석에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입니다. 이번 박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는 '세월호 7시간'이 포함된 만큼, 유가족들에게 '탄핵 가결'은 특별한 의미입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가결'을 알리며 의사봉을 '땅땅땅' 두드리자, 애써 참았던 눈물을 '주르륵' 흘립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고 본회의가 산회하자마자 가장 먼저 본회의장을 떠나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정현 대표./국회=배정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고 본회의가 산회하자마자 가장 먼저 본회의장을 떠나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정현 대표./국회=배정한 기자

눈물의 종류는 기쁨과 슬픔 그 사이인 것 같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겠지요. 2014년 4월 16일부터 꼭 참아온 눈물이 두 뺨을 타고 쉴새없이 흐릅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빼곡히 담긴 현수막을 흔드는 퍼포먼스도 하고, "국회의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새누리당도 해체하라!" "이정현은 장 지져라" "김진태! 촛불은 활활 타오를 것이다"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하, 기쁜데, 정말 기쁜데…진짜로 이제 다시 시작해야죠. 출발해서 다시 특조위도 해야죠. 우리 애들은 못 살아돌아오지만… 정말 이제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역시 울먹입니다.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담담하게 답을 이어가던 중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습니다.

그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참으며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이 20년은 앞당겨진 것 같습니다. 국민의 힘, 촛불의 힘이 이렇게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제라도 그 뜻을 받아들인 국회,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국민의 바람을 그대로 받아서 수행하는 국회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거나 휴대전화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거나 휴대전화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또다른 유가족인 2학년 8반 학생의 어머니 김정혜 씨는 소감을 이야기 하다가 차디찬 바다 속에 있을 자식을 생각하니 울컥합니다. 김 씨는 "아직 차가운 바다 속에 우리 애들이 있는게 말이 됩니까. 그게 지금 한나라의 대통령입니까? 그래도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박 대통령 탄핵됐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굳은 의지로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진실을 향해 나갈 거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진실을 밝혀, 떠나간 아이들의 아픈 영혼을 달래주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져, 이를 취재하던 몇몇 취재진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각자에게 남다른 '역사의 70분'은 흘렀고, 이날로 탄핵열차는 국회를 떠나 헌법재판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촛불'은 여전히 일렁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말대로 또다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출발점에 섰기 때문이겠지요.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 3분부터 대통령으로서 권한이 정지됐습니다. 과연 박 대통령은 '역사의 70분'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세월호 7시간'과 '최순실 게이트'. 박 대통령도 헌재로 떠난 탄핵열차, 일렁이는 촛불 앞에서 진실해 질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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