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미국 대학에도 예체능 특기자 전형이 있다. 대학마다 풋볼(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야구팀 등이 있는 것이다. 이들 대학 스포츠팀은 애교심을 고취하는데 1등공신이다. 특히 졸업생들에게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불러일으켜 기부금을 모금하는데도 효과적이다.
라이벌 대학과의 경기가 열리기라도 하면 대학가는 텅 빈다. 경기장은 거의 전쟁터가 된다.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UCLA)와 남가주대학(USC), 듀크(DUKE)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의 라이벌전은 유서가 깊다. 우리의 연고전(고연전)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자질이 있는 운동선수를 유치하려는 경쟁도 뜨겁다. 뛰어난 선수라면 학비 면제는 물론 생활비도 대준다. 인기종목일수록 특히 미식축구의 쿼터백이라면 특급 대우를 받게 된다.
물론 비인기 종목도 운영한다. 예컨대 하버드대과 매사추세츠공대는 조정팀을 두고 있다. 찰스강에서 열리는 양 대학의 라이벌전은 한 폭의 그림이다. 비인기 종목은 주로 '동아리활동' 방식으로 운영된다. 차별을 극도로 경계하는 미국사회인지라 이들 비인기 종목에도 배려는 있다. 입학에 유리한 것이다. 다만 동문의 관심도가 떨어져 학교 대표팀에 소속되어도 장학금 혜택은 박하다.
인기, 비인기 종목 외에 '귀족 스포츠'가 있다. 과거 유럽의 기사도에서 비롯된 승마와 펜싱이 대표적이다. 이들 스포츠는 서민들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돈이 엄청나게 드는 것이다. 말이나 펜싱 장비도 그렇지만, 레슨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화여대가 승마를 대입 체육특기자 종목에 넣은 것도 '특정 개인'의 입학만을 위해서라기보다 차제에 '귀족스포츠' 종목도 하나 끼워 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삼성이나 한화 등 재벌들의 취미가 승마라는 점도 은근히 작용했을지 모른다.
예일대 등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에는 대부분 펜싱팀이 있다. 펜싱 선수경력은 이들 대학에 입학하는데 매우 유효하다. 한국의 한 사설 펜싱클럽이 미국의 유명대학 입시컨설팅도 겸하는 배경이다. "펜싱으로 아이비리그 가기"쯤인데, 실적도 만만치 않게 낸다고 한다.
그런데 승마 특기로 이화여대에 합격한 학생과 펜싱 경력에 힘입어 예일대에 진학한 학생의 학교생활은 전혀 다르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이화여대는 정유라 씨가 제대로 출석하지 않아도, 엉터리 리포트를 제출해도 학점이 나온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아서 해외에 장기간 머물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더욱 '이화인'들의 공분을 사며 ;특혜 논란'을 빚었다.
반면 예일대는 학사관리에 엄격하다. '제적-재입학(Withdrawal & Readmission)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학점을 제대로 취득하지 못하면 다음 학년에 등록할 수가 없다. 대학 팀에 소속된 학생이라도 예외가 없다. 결혼했다고 봐주지도 않는다. 학생의 1차 본분은 공부라는 것이다. "공부하고 나서 스포츠"라는 것이다.
최근 예일대에서 1주일 사이 두 명의 학생이 죽었다. 한 명은 경제학 전공 남학생이고, 한 명은 이번 학기에 등록하지 않은 한국 출신 여학생이다. 그러자 학장이 전체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무슨 일이 있으면 친구들이나 카운슬러, 학장에게 연락하고, 대학부설 정신건강센터에 언제라도 전화하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예일대에서는 '제적-재입학(Withdrawal & Readmission) 정책'에 대하여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1년 전 왕루창이란 학생이 자살하면서 유서에 이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도 1주일 간격으로 예일대의 캘훈(Calhoun) 칼리지(예일대 12개 칼리지 중 하나)에서 두 명이 잇따라 숨지자 대학 당국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20세 남학생은 자살로 판명됐지만, 한국 출신 21세 여학생은 공식 사인이 발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일데일리뉴스나 학장의 이메일에서 카운슬러와 정신건강센터 상담안내를 상세히 전하는 것은 이들의 죽음이 '학업 관련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하버드, MIT, 코넬대 등 유명 대학일수록 학업 스트레스에 의한 자살이 학내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화여대는 이화학당 시절부터 130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고등교육기관이다. 예일대는 315년이 된 역사 깊은 대학이다. 둘 다 명성이 자자하지만, 명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좀 다른 것 같다.
승마와 펜싱을 국한해 말하면, 이화여대는 '힘 있는' 부모의 자제를 받아들여 적당히 점수 주며 동문을 만드는 식으로 보인다. 예일대는 자질 있는 학생을 받아들여 '힘 있는' 동문으로 성장시키는 식으로 보인다.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입학=졸업'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요즘 KLPGA가 인기다. 그런데 선수들의 어깨에는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건국대 등 대학명칭이 붙어있다. 스폰서가 있는 프로선수이면서 동시에 그 대학 학생이라는 이야기이다. 문득 궁금하다. 거의 매주 대회가 열리는데, 여름 방학기간에도 열리는데, 이들 선수 대학생들은 어떻게 학점을 관리할까.
미국 LPGA의 미셸 위 선수는 스탠포드대에 제출할 리포트를 쓰느라 비행기에서도, 호텔 로비에서도 자료와 씨름해야 했다. 시험기간에는 대회도 건너 뛴다. 하지만 우리 대학생 선수들은 어떠한가. 골프 성적과 연동해 '톱 텐'이면 A, 상위권이면 B, 시드 유지하면 C일까. 그렇게라도 해서 동문이 되면 그 대학이 빛이 날까. 아니면 골프 중계 때 보이는 대학 로고만으로도 충분히 홍보효과가 있다는 것일까.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