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정치권이 시끄럽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내년 1월 조기귀국 소식 때문이다.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반 총장인 만큼 여야 정치권이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야권은 반 총장의 조기귀국을 곧 대권 행보의 시작으로 규정했다. 그리곤 철저한 인사검증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반 총장의 의도가 어떻든 정치권은 이미 내년 대권 출마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내년 대선과 관련해 정치권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도 내년 대선에 큰 관심을 보인다. 지난 추석 연휴에 30년 지기 친구 5명과 술잔을 기울이며 대선과 정치참여에 관해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평소 잘 만나지 못하는 터라 친구들의 정치적 관심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학창시절이나 그동안 만나온 바로는 친구들이 정치에 관심이 있을까 싶던 것도 사실이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올랐을 때 한 친구가 내년 대통령 선거는 어떻게 될지 질문을 던졌다. 한 친구는 대선 후보들을 열거하며 나름의 평가를 했다. 몇몇 친구는 대선 후보에 관해 그리고 여야 정치권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일부는 반박하기도 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이야기에는 왜 그런지를 되묻는 등 나름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대선에 관해 물은 친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친구는 "지난 총선 전까지 나는 한 번도 투표를 안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니까 투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가 됐든 나라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투표하지 않으면 정치가 바뀌지 않으니까, 투표해서 주권을 행사해야 돼"였다.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말이었지만, 투표가 가지는 의미를 알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이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가 반박하고 나섰다. "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우리가 투표한다고 나라가 바뀌냐?"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로 바뀌었잖아"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여소야대가 뭐? 그래서 달라질 것 같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는 "너는 수구 보수야"라고 웃으며 놀렸다. 기분이 좀 언짢았는지 이 친구는 "돈 있는 사람이나 정치하는 사람은 너희들이 이런다고 신경 안 써"라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친구의 말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심지어 교육부의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국민은 개·돼지"라는 말이 순간 떠오르까지 했다. 당시 자리에는 총 6명이 있었고, 정치와 관련해서도 3:3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세 명은 정치 참여가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나머지 세 명은 그렇지 않다는 쪽이었다. 정치 이야기를 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정치권의 모습이었다.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으로 나뉘어 논쟁한 것은 아니지만, 접점이 찾아지지 않는 것이 정치권과 다를 바 없었다.
대화는 결론 없이 그렇게 끝났다. 언쟁을 이어 가봐야 감정만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 명의 친구들이 정치에 회의를 보인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동안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지금 정치권의 모습도 달라진 것 없이 마찬가지다.
지난 7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박 위원장은 동료 의원과 정부를 향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경제가 어려운 것도 청년실업도 양극화도 모두 정치 문제다.
씁쓸하지만 부정할 수 없이 "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우리가 투표한다고 나라가 바뀌냐"는 친구의 냉소야말로 우리 정치의 현주소요, 민심의 일부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정치권의 공통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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