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울시의회=이철영 기자] "지방의회 개혁방안 중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책보좌관제' 도입이다."
가벼운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양준욱(59·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은 처음부터 지방의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정책보좌관제 도입'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지난 7월 후반기 수도 서울의 의회 의장(임기 2년)을 맡은 양 의장은 3~4대 강동구의회 의원, 7~9대 시의원 3선 할 만큼 시정에 밝다. 이런 그이기에 무엇보다 정책보좌관제 필요성을 역설하며 '정책보좌관제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민족의 명절 추석을 약 1주일여 앞둔 6일 오후 <더팩트>는 서울시의회 의장실에서 양 의장을 만났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다부진 체격의 양 의장은 약 5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책보좌관제 도입'과 박원순 시장과의 파트너십 등을 주제로 조목조목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왜 이 부분에 그렇게 몰두하는 것일까.
◆세밀한 행정감사 위해 '정책보좌관제' 도입해야
취재진과 의장실에서 만난 양 의장의 얼굴엔 가을 햇살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전남 강진 출신으로 가끔 나오는 전라도 사투리는 정감 있고 구수했다. 푸근한 인상의 양 의장과의 인터뷰는 인사말과 함께 바로 시작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 의장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다 그의 최대 고민인 정책보좌관제 도입을 묻자 표정과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양 의장은 "지방의회가 조례 제·개정, 예산 심의·의결, 행정 사무감사, 민원 해결 등 모든 업무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따라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 지원이 가장 시급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보좌관제 도입 문제는 19대 국회에서 정치권의 공감대를 충분히 얻고, '정책지원전문인력 도입'을 골자로 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며 처리될 뻔 했다"면서 "그러나 결국,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다행히 20대 국회에 지방자치법 개정에 관한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양 의장의 숙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20대 국회의 이런 움직임에 양 의장은 무척 기대하는 눈치다.
그는 "추미애 더민주 대표가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이 최대한 이르게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 및 중앙정부와 더욱 긴밀한 소통을 이어갈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의회 내 정책보좌관제 TF팀 구성에 관해 논의가 진행 중이다. 최대한 이르게 구성을 완료해 법 개정을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방안들을 마련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양 의장이 이처럼 정책보좌관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지방의회의 의정 환경 변화와 행정수요의 증가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지방행정은 전문화·복잡화·고도화로 사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 양 의장의 주장이다.
그뿐만 아니다. 민생 현장에서 시민의 요구가 증대해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민원 응대도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는 이 모든 것들을 시의원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보좌관을 9명까지 둘 수 있는 것과 비교된다.
양 의장은 "올해 정부의 예산이 386조 원이다. 서울시 예산은 교육청 예산과 기금을 포함해 38조 원에 달한다"라며 "이 예산을 심의하는데 시의원에게 보좌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우리나라 예산의 10분의 1에 달하는 기금을 철저하게 심의·의결하고 2주 정도의 짧은 기간 민생경제 실현을 위한 세밀한 행정검사를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독일 베를린시의회, 영국 런던시의회, 프랑스 파리레종의회, 미국 뉴욕시의회 등 선진국은 개인 보좌관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며 "일각에서 정책보좌관제 도입을 '개인 비서'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 전시성 홍보예산을 줄이면 가능하다. 그리고 결국, 정책보좌관제는 서울시의 낭비적 예산을 철저히 검증해 시민부담을 낮추는 긍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원순 시장 시의회 배제 우려…의회가 첫 대화 상대여야
서울시는 인구 1000만의 우리나라 지방자치 단체 중 가장 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민들 사이에선 '서울시=박원순'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서울시의회의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양 의장에게 서울시에서 의회는 보이지 않고 박 시장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다소 언짢을 수 있는 질문이다. 그는 서울시 시정과 관련한 것들이 시민에게 의회는 없고 박 시장만 있다는 세간의 인식을 인정했다. 양 의장은 불쾌감을 나타내는 대신 현재 박 시장의 운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민이 맡긴 서울시의회의 고유 역할이 있다. 그것은 집행부에 관한 감시와 견제"라며 "의회는 좋은 정책도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는지,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 형성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된 사업은 없는지, 구의역 사고처럼 대응이 늦거나 미흡하지는 않은지, 예산이 허투루 낭비되는 곳은 없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시장이 주요 시정 업무를 결정할 때 서울시의회를 첫 번째 대화 상대로 생각했으면 하는 부탁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양 의장은 부탁이라고 했지만, 섭섭함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시장의 경우 의회보다 시민에게 먼저 시정을 알리는 때가 심심찮게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박 시장이 워낙 시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다 보니, 정작 민의를 대변하고 있는 시의회를 배제한 채 시민과 직접 대화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될 때가 있다"라며 "열정과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장에서 듣게 되는 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지역, 모든 계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한데 모은 의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꼭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 의장은 서울시의회가 박 시장의 공을 차지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 다만, 박 시장이 의회를 파트너로 생각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좀 더 보여 달라는 요청이다.
이제 곧 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다. 양 의장에게 둥근 보름달을 보며 빌고 싶은 소원을 물었다.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양 의장은 "어려운 경제를 타개하기도 해야 하지만,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해서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니게 해줬으면 좋겠다.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우리 청년들이 빨리 사회에 자리 잡아 정착했으면 좋겠다. 시의원들은 시민을 위해 더 봉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정책보좌관제가 도입됐으면 정말 좋겠다"고 다시 한 번 정책보좌관제 도입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소원을 다시 물었지만, 양 의장은 밝게 웃으며 "개인적인 소원은 없다. 제 소원은 정책보좌관제가 도입되는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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