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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색다른 인문학] 낙하산을 기다리는 곳이 어디 체육회뿐이랴

  • 정치 | 2016-09-05 14:47

체육계가 리우 올림픽 이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통합의 성급한 추진 후유증을 겪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2016 리우올림픽 선수단./ 임세준 인턴기자
체육계가 리우 올림픽 이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통합의 성급한 추진 후유증을 겪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2016 리우올림픽 선수단./ 임세준 인턴기자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요즘 체육계엔 묘한 정적이 흐른다. 일견 리우 올림픽의 후유증으로도 보인다. 비록 종합 8위를 기록했지만, 금메달 수는 예상보다 적은 것이다. 특히 유도는 '유구무언'이다. 남자 유도의 경우 세계 순위 1위가 여럿 있었지만, 결과는 '노메달'이다. 여자 유도의 정보경이 은메달을 딴 것으로 자위하기는 좀 멋쩍다.

여러 뒷말이 있지만, 대체로 두 가지에 고개를 끄덕인다. 먼저 특정 대학 위주 선수진이다. 용인대 선후배들이 '우점종'인 상황에서 외부 수혈이나 객토(客土)를 통한 자극이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시루 속 콩나물 키 재기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자부에서 은메달은 딴 정보경 선수가 경기대 출신이라는 점을 높이 사기도 한다. 용인대 출신 심판과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견제를 딛고 서러움을 떨치며 기존의 편견을 보기 좋게 메다꽂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통합의 성급한 통합 추진이다. 통합은 당위이지만, 꼭 올림픽을 앞두고 서둘러야 했느냐는 것이다. 올림픽 이후로 잠깐 미루자는 체육계의 요청을 묵살하고 정부가 밀어붙이다 보니 정작 리우 올림픽에 전념하기 힘들었다는 변명(!)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적막감은 이해하기 힘들다. 대한체육회장의 후보 등록(9월22~23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석연휴를 감안하면, 사실상 선거운동 기간이라야 1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자천타천으로 하마평이 나돌 시점이다. 헌데, 조용하다.

대한체육회장이 보통 자리인가. 장관 정도가 아니라 총리급 대우를 받는 국제적인 자리이다. 역대 회장만 봐도 여운형, 신익희, 조병옥, 이기붕, 이철승, 김동하, 민관식, 김택수, 박종규, 정주영, 노태우, 김운용, 이연택, 김정길, 박용성 등 정재계의 핵심 인물들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국민생활체육협의회까지 통합한 초 중량급이다. 당연히 스스로 욕심을 내거나, 주위에서 권유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리우올림픽에서 예상보다 금메달 숫자가 적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금메달리스트 진종오, 장혜진, 이승윤, 최미선, 기보배, 박상영, 구본찬, 김우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정한 기자
리우올림픽에서 예상보다 금메달 숫자가 적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금메달리스트 진종오, 장혜진, 이승윤, 최미선, 기보배, 박상영, 구본찬, 김우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정한 기자

물론 장정수(64) 전 볼리비아 올림픽위원회 스포츠대사가 출마선언을 하기는 했다. 현재까지는 유일하다. 대한농구협회 방열 회장은 주위에서 출마권유가 많았지만, 그냥 농구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한때 대한체육회장 출마를 깊이 고심했지만, 결국 단념한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후보로 나서려면 8월 24일까지 현직 사표를 내야 하는 선거관리규정에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뿐이다. 더는 이런저런 말이 안 나온다. 아직 수면 아래 잠수해 있을 뿐, 추석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봇물 터지듯 난무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런데 난데없는 '낙하산론'이 퍼지고 있다.

아무리 자천타천 뛰어봐야 "정권이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면 끝"이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굳이 병풍 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장정수 씨가 출마를 선언한 것은 이런 국내사정을 전혀 모르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반면 방열 회장은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 명망과 관계 없이 "아무래도 나는 권력의 낙점(落點) 대상이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선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

종합하면, 누가 낙하산으로 내려올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라는 형국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리지만, 학습효과를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과거 김정행 회장이 이에리사 후보에 3표 차이로 승리한 것을 예로 든다. 당시 윗선의 뜻은 짐작하지만, 투표에서는 이른바 '표심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대한체육회는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간다. 문체부 주도로 산하 경기단체들은 임원 3연임 불가로 정관을 바꿔야 했다. 여기에 한 대학 출신이 임원의 30%이상을 차지하지 못하게 했다. 유도의 경우 용인대가 임원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또 대한체육에서의 입김도 강했는데, 이에 대한 보복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체육회장이 보통 자리인가. 장관 정도가 아니라 총리급 대우를 받는 국제적인 자리이다. 또 내년에는 대통령선거라 치러지다 보니, 체육계 인사가 아니라 정치인이 '낙하산'으로 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이효균 기자
대한체육회장이 보통 자리인가. 장관 정도가 아니라 총리급 대우를 받는 국제적인 자리이다. 또 내년에는 대통령선거라 치러지다 보니, 체육계 인사가 아니라 정치인이 '낙하산'으로 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이효균 기자

물론 당시는 안현수 선수가 빙상연맹과 갈등을 빚으면서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으로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던 것이 국민적 관심사이기도 했다. 끼리끼리 문화가 스포츠의 공정함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3연임 불가나 한 대학출신 비율을 강제하는 것도 그 시점에서는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었다.

여하튼 지금의 대한체육회장은 체육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자리이다. 국민생활체육협의회는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인 대한체육회와 달리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산과 시설 등을 지자체로부터 지원받는 것이다. 자연히 선거철이면 이런저런 정치적 휩쓸림이 논란을 빚기도 한다.

이렇게 조금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자리와 통합하다 보니, 또 내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체육계 인사가 아니라 정치인이 '낙하산'으로 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는 것이다.

한때 강력한 후보로 지목됐던 대한수영연맹 이기흥 회장은 지난 3월 자진(?) 사퇴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인지, 그가 한 일간지와 '통합 반대' 인터뷰를 하자 대한수영연맹 임원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졌고, 결국 자신도 사퇴하게 된 것이다.

이런저런 일이 "잘못 나섰다가 괜한 화살을 맞는 것은 아니냐"는 몸조심으로 흐르게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낙하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파도는 맞서는 것이 아니라 타고 넘는 것"이라지만, 혹자는 "파도를 가르며 나아간다"고도 한다.

어디 낙하산을 기다리는 곳이 대한체육회뿐이랴. 수많은 공공기관의 이사장, 협회장과 감사 자리가 비어 있다. 고도(Godot)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지만, 낙하산은 때가 되면 내려올 것이다.

ps.tea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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