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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희의 P-STORY] "정치권의 관행", 비겁한 변명입니다

  • 정치 | 2016-06-29 05:00

최근 정치권이 '관행'이란 이유를 내세운 '특권'과 '갑질' 의혹으로 얼룩졌다.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을 받고 있는 김수민(왼쪽) 국민의당 의원과 '가족 채용' 논란으로 도마에 오른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더팩트DB
최근 정치권이 '관행'이란 이유를 내세운 '특권'과 '갑질' 의혹으로 얼룩졌다.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을 받고 있는 김수민(왼쪽) 국민의당 의원과 '가족 채용' 논란으로 도마에 오른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더팩트DB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어린 시절 할머니는 아플 때마다 '뇌선'을 밥처럼 물과 함께 삼켰다. 이 약은 가루형태의 진통제다. 상당수 어르신들이 복용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그 시대엔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특히 제주 해녀들은 잠수병을 치료하기 위해 과거부터 카페인 부작용을 알면서도 두통을 치료할 길이 없기 때문에 뇌선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와 체질이 모두 달라 처방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할머니의 뇌선 복용은 반복적으로 굳은 습관과 위약 효과(실제 효과가 없는 것도 맹신) 때문일 것이다. 내성 탓도 있다.

'습관'과 비슷한 단어로 '관습'과 '관행'이 있다. 굳이 사전적 의미로 구분하자면, 습관은 '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굳어진 전통적 행동 양식'이고, 관습은 '오랫동안 되풀이하여 몸에 익은 채로 굳어진 개인적 행동'이며, '관행'은 사회에서 예전부터 해 오던 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셋 모두 사회규범의 범주에 속하나, 국가적 강제성으로 실현되는 '법' 위에 있지 않다. 또한 잘 쓰면 명약이지만, 반대의 경우 독이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정치권의 '관행'이 그렇다. 최근 불거진 김수민·박선숙 의원 및 왕주현 사무부총장 등 국민의당의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족 채용' 논란, 두 의혹에 묻혔지만 이군현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진 급여 유용 혐의' 등에 대처하는 정치권의 변명은 '관행'이었다. 대처 방식 또한 기존 비위 연루 정치인들과 다르지 않은 '침묵과 부인' 등 '관행'대로였다.

국민의당 총선 리베이트와 관련해 당시 회계책임자였던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출두해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국민의당 총선 리베이트와 관련해 당시 회계책임자였던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출두해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지난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4·13 총선 과정에서 B사와 S사 등 2개 업체로부터 총 2억 3820만 원의 리베이트를 받고 허위 보전청구와 회계보고를 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김 의원, 박 의원, 왕 사무부총장, 업체 대표 2명 등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침묵과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초기 당당한 자세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며 세 차례 고개를 숙였지만, 의혹 자체에 대해선 국민의당은 "업계의 관행"이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왕 부총장을 28일 구속했다. 당은 결국 이날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연루 의원의 출당 조치 및 지도부 책임론 등에 대한 공방을 이어가며 비상사태로 전환했다.

지난 21일 서 의원은 자신의 딸을 인턴으로 채용했으며, 딸의 로스쿨 입학에 영향을 행사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23일 자신의 오빠와 친동생을 각각 후원회 회계책임자와 비서관으로 임명한 논란도 불거졌다. 서 의원은 논란을 피하진 않았다. 다만 "딸이 PPT의 귀재였다" "3년 전 일인데 이렇게 저한테 마녀사냥 식으로"란 그의 해명이 의혹의 본질인 '특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엿새 동안 침묵하던 더민주 지도부도 지난 26일 당 차원의 감찰을 결정하고, 다음 날 김종인 대표가 나서 직접 사과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낡은 관행을 잘 정리해 의원실에 알려드려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원내 대책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친인척 채용'은 정치권의 관행으로, 법적으론 규제할 근거가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이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국민들은 이제 오만한 정치와 그릇된 특권을 묵인하지 않는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국민들은 이제 오만한 정치와 그릇된 특권을 묵인하지 않는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입법권자'인 국회의원에게 관행은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이제 오만한 정치와 그릇된 특권을 묵인하지 않는다. '청년 실업 100만 시대'에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를 뒀으며 청년벤처기업인이란 이유로 김 의원처럼 청년들을 대변할 비례대표로서 금배지를 달 수 있고, 서 의원의 딸처럼 어머니가 국회의원이라서 인턴 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게 '관행'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일까. 분명한 것은, 정치권의 관행이 국민의 관행은 아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과거 정치권 안에서 '관행'으로 묵인되었던 것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음을 확인한다. 한국 사회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높아진 눈높이에 신속히 맞추지 못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한 번에 훅 간다"고 지적했다. 더는 '(정치권의) 관행'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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