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권력과 술의 공통점은 취(醉)하기 쉽다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술은 취하는 맛에 마시고, 권력은 휘두르는 맛에 잡는다고. 틀렸다. 술은 권하는 맛에 마시고, 권력은 베푸는 맛에 잡는 것이다. 술은 벗과 더불어 마시고, 권력은 국민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혼자서 술에 취하거나, 오로지 권력에 탐닉하면 볼썽사나울 뿐만 아니라 종당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해친다.
다산 정약용은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본인이 그러한 만큼 자식들에게도 술을 상당히 경계했다. 그랬지만, 본디 주량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다산이 벼슬하기 전에 중희당(重熙堂)에서 세 번 일등을 했단다. 중희당은 정조(正祖)가 원자(元子)를 위해 세웠는데, 임금이 대대로 현명하여 태평성대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여하튼 다산은 옥(玉) 필통 가득 담은 소주를 마시게 됐다. 그 순간 "나는 오늘 죽었구나" 했는데, 그다지 취하지 않았다고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나온다.
하루는 춘당대(春塘臺)에서 임금과 학사(學士)들이 어울려 '맛난 술'을 커다란 사발로 마셨단다. 다른 학사들은 곤드레만드레 정신을 잃어 몇몇은 남쪽을 향해 절을 하고, 몇몇은 자리에 누워 뒹굴었다고 한다. 원래 임금은 북악산 아래 있어 신하는 북쪽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 법도이다. 그런데 방향을 잃고 남면해 절을 하는가 하면, 임금과 함께 공부 중인데도 취해서 뒹굴더라는 것이다.
다산은 "책을 다 읽어 내 차례를 마칠 때까지 조금도 착오가 없었다"고 했다. 다만 퇴근하였을 때 취기가 조금 있었을 뿐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알고 보면 대단한 술 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다산이 자녀들에게는 '반잔 술'을 제시한다. 술 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는 것이다. 소가 물을 마시듯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은 절대 술 맛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입술과 혀에 적시지 않고 바로 목구멍으로 들어가는데, 무슨 맛을 알겠느냐는 얘기다. 사실 맛이야 혀로 느끼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고 결론짓는다.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하고 잠에 곯아떨어진다면 술 마시는 정취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일찍이 목민관으로서의 자세가 몸에 배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민관은 요즘으로 치면 행정+사법 공무원이다. 근무 중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근무가 끝났더라도 술자리는 일부러 피하려 했던 것 같다. 이리저리 얽히고설키다 보면 이런저런 청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술이야 청탁(淸濁) 불문이지만, 관리에게 청탁(請託)은 불가이다. 술마저도 실사구시(實事求是)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다산의 시에선 호방함이나 서정(抒情)을 느껴볼 수 없다.
'반 잔의 미학'을 내세운 다산은 '뿔 달린 술잔'을 소개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도자기로 술잔을 만들 때 뾰족하게 뿔을 달았다고 한다. 그러면 한꺼번에 마실 수가 없고, 조금씩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공자(孔子)도 제자에게 '각잔(角盞)'을 권했다고 한다. "뿔 달린 술잔이 뿔 달린 술잔 구실을 못하면 어찌 뿔 달린 술잔이라 하겠는가"라면서. 이는 "소금이 짜지 않으면 어찌 소금이라 하겠는가"라는 말로 들린다. 술로 치환하면, "술이 취하지 않으면 어찌 술이라 하겠는가!"
권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잡으면 확인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특히 인정받고 싶어하는 이들은, 원래 심지가 강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이 잡은 칼을 시험해 본다. 호박이라도 찔러보고 넝쿨이라도 잘라본다. 마치 철없는 아이들처럼.
그러나 권력에도 '각잔(角盞)'이 필요하다. 반쯤 여유를 남긴 권력이 진정한 힘이다. 공자의 뿔 달린 잔은 '계영배(戒盈杯)'를 만든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桓公)에 대한 오마주(Homage)일 것이다. 계영배는 말 그대로 넘치는 것을 경계한 술잔이다. 잔이 가득 찰 것 같으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린다. 과음을 경계하는 잔이지만, 인간의 끝없는 욕심, 특히 한없는 권력에의 탐닉을 경계하는 것이다.
벌컥벌컥 마시는 술은 맛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마구잡이 휘두르는 권력도 그 진정한 맛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칼도 칼집에서 머물 때, 설혹 뽑더라도 칼날만 보일 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미 뽑아버린 칼은 힘이 없다. 마찬가지로 휘둘러버린 권력은 더는 권위가 없다. 무턱대고 휘두르는 권력은 감동이 없다는 점에서 망나니나 선무당 칼춤과 비슷하다.
술자리엔 '삼취(三醉)'가 있다. 일취(一醉)는 벗, 이취(二醉)는 자리, 삼취(三醉)가 술이다. 먼저 벗(사람)에 취하고, 다음 자리(분위기)에 취하며, 마지막으로 술에 취한다는 것이다. 권력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먼저 국민이고, 다음이 공직이며, 마지막이 스스로의 자리가 아니겠는가.
내일(21일)은 하지(夏至)다. 낮의 길이가 연중 가장 긴 날이다. 찬란한 태양이 작열하는 정점이다. 달리 보면 화려하고 눈부셨던 낮이 사위어가기 시작하는 전환점이다.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이 없는 법이 아닌가.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권력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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