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명재곤 기자] ‘초등학교, 중학교 때 말 좀 섞는 사이였다가 갑자기 이래되면 우짜노. 너 잘못이 아니야. 부디 좋은 곳에서 못다한 꿈 이루길.’ ‘얼마간의 시간 동안 기억되다 또 잊혀지고. 그저 반복되지 않기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곳에서는 컵라면이 아닌 맛있고 따뜻한 밥 드셔요. 미안합니다. 나는 또 다른 당신입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2층 대합실 한 편에 마련된 한 청년의 추모공간에는 다양한 색깔의 포스트잇(붙임 쪽지)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다.
꽃다발과 커피, 통조림, 피로회복 드링크제, 빵과 과자, 우유등이 1000여 장의 포스트잇과 함께 애도와 분노의 형상을 꾸려 사고발생 엿새가 지난 2일에도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지난달 28일 오후 6시께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외주 정비업체 비정규직 직원 김 모(19)씨가 보수작업을 하던 중 승강장으로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했다.
가방 속 컵라면 하나가 가슴을 울렸다.
공기업 정규직을 꿈꾸며 주말 오후 묵묵히 일하던 청년의 가방에는 컵라면 한 개와 나무젓가락, 공구, 필기도구등이 들어 있었다. 유물처럼 남은 컵라면 하나는 근무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책임지려고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줘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아이를 기르면서 책임감 있고 반듯하라고 가르쳤다. 우리 아이 잘못 큰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둘째(아이)는 책임감 있고 반듯하게 키우지 않겠다. 책임자 지시를 따르면 개죽음만 남는다”고 ‘제 탓’을 하는 어머니의 절규와 호소는 이 땅의 부모들에게 짙은 여운을 남겼다. 자식을 ‘책임감 있는 아이로 키우지 않겠다’는 ‘어미’의 마음을 누가 이해할까 싶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는 비정규직 근로환경 개선과 안정적인 청년고용 차원에서 유야무야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나는 또 다른 당신입니다’라는 포스트잇이 암시하듯 수십만, 수백만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이 사고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건은 우리 경제의 최대 난제 중 하나인지라 당장 묘수를 찾기는 힘들겠지만 최소한 ‘19세 비정규직의 삶’을 보듬는 방안은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사고의 1차 책임자인 서울시는 더욱 그렇다.
입법권을 지닌 국회도 더욱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제19대 국회에서 관련법을 발의했는데 이런저런 탓에 제정이 안됐다는 식의 립서비스는 오히려 힘없는 을(乙)을 맥빠지게하는 변명에 다름없다는 걸 먼저 알았으면 한다. 여야 정치인들은 사고 직후 앞다퉈 1년에 한번 탈까 말까하는 지하철역을 찾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마디씩’했다. 불행하고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된다며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제를 꼭 만들겠다고 목청을 키웠다.
“지나치게 경비절감 측면만 고려하다 보니 인명문제를 고려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다.” “사람을 절감해야 할 비용으로, 또 가급적 싸게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겨온 우리 사화 경제시스템이 만들어 낸 필연적 희생이다.” “우리가 잘못 바로 잡고 진실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하고 재발 방치책 마련하겠다.” “가방 속에서 나온 컵라면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예전에도 대부분 그랬듯이 이들은 ‘공자 같은’ 말씀을 쏟아냈다.
포스트잇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현안 해결을 위한 정치 작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나 그래도 민생국회를 지향하는 20대 국회인 만큼 김 씨를 추모하는 국민들은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달 중순 20대 여성 강남역 인근 피살사건으로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월 첫날에는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폭발로 비정규직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는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에서도 일어났다.
우리는 위험한 대한민국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위험한 대한민국을 거부합니다’라는 포스트잇 글이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기대가 무너지면 소리 없는 포스트잇은 거리로 뛰쳐나올 수 있다.
“정치란 식(食)과 병(兵)과 신(信) 세가지이다. 셋 중에 부득이 한 가지를 없앤다면 병을 먼저 없애고 다음은 식이다.” 공자가 제자 자로에게 설파한 정치의 요체다. 공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정치의 으뜸으로 세웠다. 공자의 정치는 백성과 나라간 신뢰의 다리를 놓는 것이다.
공자의 왕도정치가 패권정치가 횡행하는 지금의 현실정치와 얼마나 부합되는지는 차치하고 스크린도어 사고와 관련해 아무튼 서울시는 ‘무신불립’을 되새겨야 한다. 같은 사고가 세 번이나 발생하면 누가 믿음을 주고 받겠는가.
“대책이야 그동안 마련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제대로 실천이 안 됐던 것”이라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이 왜 이렇게 안타깝고 허망하게 들릴까.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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