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7년 전 오늘(23일)이다. 필자는 친구들과 넷이서 산행을 나섰다. 목적지는 경기도 남양주 예봉산. 중앙선 팔당역에 내려 김밥 몇 줄을 샀다. 붐비는 등산로 초입에 들어섰을 때다. 친구 한 명이 휴대폰 꺼내 보더니 문득 걸음을 멈췄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신음처럼 내뱉었다. "노통이 죽었대."
그는 '노통'시절 수석 비서관을 지냈다. 곧바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회부 당번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후속 대처를 지시했다. 친구는 발길을 돌려 황황히 김해로 떠났다. 나머지는 가게 안 TV를 통해 시시각각 전달되는 긴급뉴스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불과 7년 전인데, 아득히 먼 옛 일처럼 느껴진다.
그 시절 언론은 '노통' 관련 기사로 넘쳐났었다. 검찰 출입기자들은 매일 '물 먹이고(특종) 물 먹는(낙종)' 나날이었다. 그 중심에 '홍(만표) 검사'도 있었다. 그의 입으로부터 나온 몇 마디는 이튿날 신문에 시커먼 제목으로 바뀌었다. 첩보 수준의 내용이거나, 설령 피의사실이라 해도 수사 도중에 밝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1억 원 대 손목시계'였다. 이후 김해 일대 논두렁에는 '노다지' 찾는 사람들이 출몰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나돌았다. 검찰은 '노통' 주변을 탈탈 털었다. 먼지의 낌새만 보이면 슬쩍 굶주린 하이에나들에게 흘렸다. '망신 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검사들과의 대화는 '바보 노무현'의 순진한(혹 순수한) 일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동시에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실체를 엿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다. 검찰은 도둑을 지키는 맹견(猛犬)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주인도 물어버리는 맹견(盲犬)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노통은 검찰견에 목줄도 입마개도 채우지 못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안다.
어쩌면 노통도 같은 법조인이라는 동류의식이 작동했을지 모르겠다. 문재인 비서실장 역시 법조인이다. 그래서 검찰 권력에 견제의 목줄을 채우지 않았는지 의심하는 것이다. 목줄을 채우지 못했거나, 채우지 않았거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권력이든 재야이든, 법조인은 선민(選民)이라는 동류의식이 강하다. 자신들은 천족(天族)이고, 나머지는 천족(賤族)이다. 끈끈한 '그들만의 리그'가 존속하는 바탕이다. 그 연장선에 '전관예우'가 있다.
전관예우는 '끼리끼리'의 다른 말이다. 언젠가 나도 법복을 벗고 나설 텐데, 그 때를 위한 '보험'일 수도 있다. 어쩌면 관행이라기보다 '불문율'일 수 있다. 관행이라면 끊을 수 있지만, '불문율'은 어기느냐 지키느냐의 문제이다. '율법'을 어기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추방당할 수 있다. 그건 두렵다. 온실 속에서 자란 그들에게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광야는 끔찍함 자체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외피로 하고, 음습하면서도 달콤한 권력에 취하는 것이다.
그들의 힘은 '유예'에 있다. 기소독점권을 쥔 검찰은 언제든 기소를 유예할 수 있고, 판사는 선고를 유예할 수 있다. 이 '유예 동아리'는 전관예우라는 그럴 듯한 이름의 불문율을 면면히 이어온 것이다.
하지만 전관예우의 실제 속살은 '공범(共犯)'의식이다. 전관예우는 자신들의 끼리끼리 범죄를 마치 미풍양속이라도 되는 양 호도하는 표현에 불과하다. 어떻게 전화 한 통화로 실형이 집행유예가 되고, 어떻게 저녁 한 끼에 무죄방면이 될 수 있는가. 사법(司法)을 끼리끼리 사법(私法)한 것이 어찌 전래의 미풍양속인가.
그런 공범(共犯) 행위는 첫 발만 머뭇거릴 뿐이다. 부장검사와 함께 선배 변호사를 만난 첫날뿐이다. 어느 대학교 선후배, 사시 몇 회, 연수원 몇 기로 공범의 끈은 맺어진다. 우회적으로 찔러주는 돈 뭉치와 선물은 낚시 바늘이 든 고깃덩어리라는 건 안다. 하지만 외면하기엔 군침이 가득하고, 외면했다간 북풍한설 광야이다. 게다가 낚시 바늘은 잘 하면 목에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선배들도 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공범 조직은 완성되고,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다.
최근 '네이처 리퍼블릭' 문제로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사법공화국의 속살이 들춰졌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기소단계 담당이다. '홍 검사'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의 선고단계 담당이다. '최 판사'다. 속칭 형사사건 공정 가격이라는 500만 원의 10배, 100배도 아니고 항소심 한 건에 50억 원이라니.
들리는 말로는 '최 판사'의 로비가 너무 요란해서 항소심 재판부로서는 혹시 오해라도 받을까 봐 실형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구치소 접견실에서 주먹다짐이 오갔고, 그 여파로 엄청난 수임료의 내막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자신의 실형 선고가 결과적으로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끈적하면서도 강고한 '공범 트러스트'를 깨는 전환점이 되리라 예견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스스로 선민(選民) 천족(天族)을 자처하는 것은 그 자체가 쿠데타적 발상이다. 그래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도 나오는 것이 아닐까.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추모하고 또 추억하겠지만, 필자는 약간은 아쉬움으로 회억(回憶)한다. 진정한 서민의 대통령이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바보' 노통이 우직하게 '견제 받는 권력'으로 검찰을 거듭나게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에서다. '막 가자는' 검찰을 '마지막 가는' 심정으로 개혁했다면, 정말 그랬다면 어떠했을까. 본인의 비극도, 당금의 악취 풍기는 '그들만의 리그'도 다른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말이 들려온다. 누구라도 일단 권력을 잡으면 대신해서 물어줄 맹견을 필요로 한다고. 또 자신이 밥을 줬으니 자신만은 물지 않는 애완견이라 믿는다고. 그들은 그렇게 맹신(盲信)을 심어주고는 눈 딱 감고 맹견(盲犬)이 되는 것이라고. 선출 권력은 유한하지만, 시험 권력은 '전관예우' 속에서 영원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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