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오경희 기자] '식물 국회' 성적표를 받은 19대 국회가 오는 29일 종료된다.
지난 2012년 문을 연 19대 국회는 '국정원으로 시작해서 국정원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원 첫해 말 불거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부터 올해 초 야당이 '국정원강화법'이라고 주장한 '테러방지법'까지. 해마다 국정원은 정치권에 등장했고, 여야 대립의 중심에 섰다.
갈등을 반복해온 국회의 성적표 또한 초라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대 국회(2012년 5월 30일~2016년 3월)에서 발의된 법안 1만7752건 가운데 지난 3월까지 가결된 법안은 7129건·40.2%로 나타났다. 이는 15대 국회의 법안 가결률 73%, 16대 국회 63.1%, 17대 국회 51.2%, 18대 국회 44.4%와 비교하면 가장 낮다.
<더팩트>는 지난 4년간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19대 국회'를 되짚어봤다.
◆ '지각 개원'하자마자 '개점 휴업'
19대 국회는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임기 시작일인 ①2012년 5월 30일보다 33일이나 늦은 7월 2일에야 본회의를 열면서 공식 일정에 들어갔다.
개원 전부터 불거진 이명박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이 쟁점화됐고, 야당이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면서 발목이 잡혔다.
그러나 곧 이어진 '대선 정국'으로 국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한편 19대 국회는 국회 선진화법이 처음으로 시행돼 관심을 끌었다.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고,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없는 한 회기 종료까지 토론을 이어갈 수 있게 해 국회 다수당이라 해도 의석수가 180석이 되지 않으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의 강행 처리가 불가능하게 돼 있다.
하지만 국회 선진화법은 오히려 여야의 갈등 요소로 꼽히면서 '식물 국회'란 오명을 안겼다. 소수당은 선진화법을 이용했고, 다수당은 야당의 이런 행태를 '발목잡기'라고 비난했다.
◆ '국정원 댓글' 파문, 국회 '시계제로'
② 2013년 국회 시계는 '2012년 대선'에 멈춰 움직일 줄 몰랐다. 지난해 대선에서 국정원이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로 인터넷과 트위터 등을 통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국정원 댓글' 파문이 정국을 강타했다. 여기에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이 사건 수사의 축소, 은폐를 지시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장외투쟁에 나섰고, 야권은 힘을 모아 특검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특히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대선 불복'을 선언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어 8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열람과 공개 과정에서 'NLL 포기', '대화록 사전 유출', '사초(史草) 실종' 논란 등이 불거지며 국회가 중단됐다.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대화록 원본을 전면 공개할 것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공방은 국정원의 대화록 사본 전격 공개, 국가기록원 내 대화록 찾기 실패로 이어지면서 결국 '사초 폐기' 정국과 검찰수사 착수라는 초유의 기록들을 남겼다. 논란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참여정부 인사가 고의로 폐기하고 이관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또 9월, "전 재산이 29만 원 뿐"이라며 추징금을 내지 않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민의 끈질긴 요구에 백기를 들었다. 전 전 대통령은 16년 4개월 만에 미납추징금 1672억 원을 완납하겠다고 발표하고 장남 재국 씨를 앞세워 국민 앞에 사과했다. 서울중앙지검 '전두환일가 미납추징금 특별환수팀'의 집요한 수사와 압박에 마침내 은닉재산을 토해내기로 한 것이다. 앞서 6월 국회에서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통과시켜 제3자 추징이 가능해진 것도 대대적 환수작업을 도왔다.
◆ 세월호에 분노하고, 정윤회가 휩쓸어
'205일'. 세월호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2014년 11월 7일)까지 걸린 나날이다. ③2014년, 정부와 국회의 무능함에 국민은 울었고, 분노했고, 절망했다. 여야 대치로 국회는 '올 스톱'됐고, 5월 이후 법안 처리 건수는 '0건'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국회 무용론'이 제기되는 등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비난이 거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로 지명된 총리 후보는 각종 의혹으로 연이어 낙마했다. 겨우 안정을 되찾나 싶더니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문이 터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정윤회 씨가 국정 개입을 했다는 의혹을 담은 문건으로, 연말 정국을 휩쓸었다.
국민이 정치권에 실망해설까. 여야는 6·4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선거 결과 경기·인천·부산 등 새누리당이 8곳, 새정치민주연합이 서울과 충청권 등 9곳에서 승리했다. 또, 입법 로비 의혹이 일자 당시 8월 검찰이 국회에 들이닥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의 정당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 해산을 결정하고 소속 의원의 의원직을 상실시키기도 했다.
◆ '성완종 리스트' 강타…정부發 개혁 잇따라
④ 2015년 초는 '성완종 리스트'가 정치권을 강타했다. 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한 뒤 남긴 메모지엔 정권 실세와 유력 정치인의 이름과 금액 날짜 등이 적혀 있었다.
당시 김기춘(10만 달러)·허태열(7억)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포함해 유정복 인천시장(3억), 새누리당 홍문종(2억) 의원, 홍준표(1억) 경남도지사, 서병수 부산시장(2억)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이완구 전 국무총리 등이 쓰여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없는 수사"를 강조했고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발(發) '개혁'도 잇따랐다. 진통 끝에 여야는 회기를 하루 연장한 그해 5월 29일 새벽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고 통과시켰다. 이를 위해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반대하고 야당이 주장한 국회법 개정안을 수용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승민 의원을 '배신의 정치'로 지목했고, 유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자진해서 사퇴하는 최악의 국면까지 치달았다. 이 사태는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공천 파동과 참패로까지 번졌다.
무더운 7월, 국회는 '국정원 해킹 의혹'을 둘러싼 '진실 게임'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국가 정보기관이 외국 해킹팀의 기술을 구입해 민간인의 휴대전화를 몰래 훔쳐봤다'는 의혹은 사실이라면 충격 그 자체였다. 여야는 진실규명에 나섰지만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다.
정부는 하반기 '노동개혁'을 화두로 꺼냈으나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어 9월엔 '2017년 중고교 역사교과서와 한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구체화했다. 당장 여야 간 극한 대립의 단초가 됐다. 그러나 정부는 11월 3일 이를 확정 고시했다.
연말 문재인 전 대표와 '당 지도부 혁신' 문제를 놓고 대립하던 안철수 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뒤 제3당 창당에 나섰다. 안 대표는 결국 올해(2016년) 초 창당을 완료하고, 20대 국회에서 3당으로서 캐스팅보트를 쥐는 데 성공했다.
◆ '192시간'의 필리버스터…여소야대로 재편
19대 국회의 대미는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꼽힌다. 야당 소속 의원 38명은 지난 2월 23일부터 8박 9일간 192시간 넘게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며 테러방지법이 '국정원강화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 세계 최장 기록'이란 수식어에도, 테러방지법은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민의 19대 평가는 20대 총선 결과로 나타났다. ⑤ 2016년, 19대 국회 임기 말 치러진 지난 4월 13일 20대 총선 결과, 민심은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참패', 국민의당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16년 만에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됐다. 20대 국회에선 '식물 국회'란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국민의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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