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얼음을 먹는다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는다. 뜨거운 차를 마신다고 체온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추우면 땀구멍을 닫고, 더우면 땀구멍을 연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봄날에도 체온은 인체는 늘 36.5도를 유지한다. 건강한 경우 말이다.
체온뿐만이 아니다. 달릴 때 심장박동이 증가하는 것도, 컨디션에 따라 혈압이 오르내리는 것도, 체내 산과 알칼리가 균형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동조절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생존하기 위해서다.
이를 '항상성(恒常性,Homeostasis)'이라 한다. 프랑스 생리학자 끌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가 처음 발견했다. 생리학적 정의로는 '생물체 내부 환경을 변화시키지 않거나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다행이지 않은가. 얼음을 먹었다고, 북풍한설이 몰아친다고 체온이 떨어지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지 않겠나. 태양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여름날에 땀구멍이 막혀 있다면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것이다.
인간들의 군집인 사회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는 "건강한 사회체계는 균형상태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파했다. 그는 저서 '정신과 사회(1916)'에서 "균형상태에 있는 사회체계는 어떤 인위적인 힘으로 수정 당하게 될 때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려고 하는 반작용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가 바로 시장에서 '80대 20의 균형'으로 유명한 '파레토의 법칙' 주인공이다.
파레토는 '엘리트의 순환설'로도 유명하다. 사회적 갈등은 하류계층의 우월한 요소와 상류계층의 열등한 요소가 축적되면서 빚어진다고 진단했다. 본디 귀족정치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고 활력을 상실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배세력인 엘리트는 타락한 구성원을 배제하고, 활력 있는 새로운 엘리트를 출현시킴으로써 사회적 균형을 이룬다고 봤다.
그는 엘리트 집단을 교활한 여우형과 폭력적인 사자형으로 구분했다. 이들 집단의 권력 점유는 순환적으로 교체된다는 것이다. 굳이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여(與)와 야(野)가 돌아가며 권력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사회는 그렇게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항상성', 바로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다.
'이퀼리브리엄'은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배트맨'으로도 활약한 크리스천 베일이 주인공으로 열연한다. 시대적으로는 3차 세계대전 이후, 공간적으로는 리브리아(Libria)라는 가공의 국가이다. 이 사회에서는 '감정 표현'이 위법이다. 인류를 파멸 직전으로 몰고 갔던 전쟁들은 모두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 때문에 빚어졌다는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도 결국 분노와 슬픔의 반사경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러한 원초적인 감정을 제거하면 갈등도, 불화도, 다툼도, 전쟁도 없을 것이라는 암묵적 동조 하에 사회체제가 수립된 것이다.
리브리아 주민들은 인간적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프로지움을 투약한다. 그럼으로써 외견상 평화와 사회적 균형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렇게 억압된 균형이 지속되겠는가. 인간의 감정 역시 억누르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기 마련이다. 결국, 리브리아는 붕괴됨으로써 균형을 되찾는다. 감정의 억제를 통한 '이퀼리브리엄'이 감정의 폭발로 '이퀼리브리엄'을 회복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사회적 균형과 항상성은 '프로지움'이란 감정 억제제가 아니라 '투표'라는 감정 분출제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차디찬 북풍이 몰아쳐도, 명예훼손죄로 감정 표현을 막아도, 지역감정에 불을 붙이고 휘발유를 끼얹어도, 사회는 궁극적으로 '항상성'을 회복할 것이다. 비록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얼마간 세월이 흘러야 하더라도 말이다.
20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도 아직 정당들의 공천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정당(政黨)이 아닌 사당(私黨), 공천(公薦)이 아닌 사천(私薦) 논란에 정치가 뭉뚱그려 희화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진박과 비박 논란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문제는 여(與)와 야(野)의 구분마저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크로스오버(Cross-over)에 퓨전(Fusion) 시대라고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당간 가치와 비전 경쟁도 사라졌다. 새누리당 정권창출 핵심들이 더민주당 선거를 총지휘한다. 정당간 차이란 술에 물 타고, 물에 술 탄 정도가 됐다. 이제 여(與)와 야(野)는 의미가 없다. 발음만 비슷하게 '요(妖)'와 '유(誘)'의 경쟁이다.
본디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최악(最惡) 대신 차악(次惡)을 뽑는 절차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초록이 다투는 척, 가재와 게가 싸우는 척한다. 결국은 동색(同色)이고, 같은 편인 것을.
정상적인 사회, 진정한 '이퀼리브리엄'을 위해서는 '프로지움'을 끊는 결단이 필요하다. 분노할 때 제대로 분노하고, 미워할 때 똑바로 미워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도 균형을 잡고, 인체도 항상성을 유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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