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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취재기] "손가락이 잘려도 감사" 강기갑의 '행복론'

  • 정치 | 2016-02-27 05:00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18일 경남 사천 자택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18일 경남 사천 자택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내 손 한 번 봐. 지난해 10월 풀 베다가 손가락이 날아갔어. 그래도 얼마나 감사하다고"라며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사천=배정한 기자

[더팩트 | 경남 사천=서민지 기자] '어랏?' 처음 발견했을 땐 두 눈을 의심했다. 강기갑(63, 17·18대 의원)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져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손톱이 없었고 뭉툭했다. 상처가 아문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그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손짓하며 "서울에서보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다. 도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진은 지난 18일 정치권을 떠나 3년 2개월째 '농부'로 살고 있는 강 전 대표를 찾았다. 당 대표 시절보다 살이 조금 오른 구릿빛 얼굴에 취재진이 "더 건강해지신 것 같다"고 말하자 강 전 대표는 "서울 생활은 사람 농사고, 촌은 자연 농사 아닌가베. 진짜배기 자연농사니까 아무래도 마음이 푸근하고 편하지"라면서 허허 웃었다. 밀리터리 문양의 누빔 작업복을 입은 그의 표정은 서울 생활 때보다 훨씬 온화해 보였다.

축사에서 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강 전 대표./사천=배정한 기자
축사에서 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강 전 대표./사천=배정한 기자

비록 마음은 편할지라도 아파 보이는 손가락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흰 수염이 지긋한 어른인지라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골 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난 것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 '소명' 이야기를 하다 그가 먼저 손가락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은 농사가 내 소명이고 일이야. 내 손 한 번 봐. 지난해 10월 풀 베다가 손가락이 날아갔어. 서울에 가서 피부 이식하고 살을 다시 붙인 건데, 그래도 손가락 길이가 줄었잖아. 손이 다 뭉그러졌어. 손가락이 안 오므려진다고. 지난해에는 지붕에 비가 줄줄 새는 바람에 지붕 잇다가 5m 높은 곳에서 떨어졌잖아. 저승사자 앞에까지 갔다 왔어. 마누라랑 막내는 옷 입은 채로 생똥을 싸고 하니까 죽었다고 난리도 아니었지. 근데, 아이고~ 그래도 얼마나 감사하다고."

강 전 대표는
강 전 대표는 "이 순간에 모든 걸 '꼴아박는 것',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좌우명"이라면서 활짝 웃으며 "행복하다"고 말했다./사천=배정한 기자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데다, 손가락도 잃었는데 계속해서 "감사하다"고 하는 강 전 대표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농사가 좋으냐, 국회로 돌아와서 국민의 행복을 찾아줄 생각은 없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강 전 대표는 "먹고살기 급급하고 힘든데 왜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순간 속에 영원이 있고 영원 속에 순간이 있는 거예요. 순간순간이 모여서 영원이 되는 거잖아. 이 순간 감사하게 되면 영원히 감사하고 곧 행복하게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 순간에 모든 걸 '꼴아박는 것',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좌우명"이라고 말했다.

'순간에 모든 것을 꼴아박는 것.' 자신만의 '행복 비법'을 전수하며 벙글벙글 웃었다. 강 전 대표에겐 손가락 하나 아픈 것 따윈 안중에 없어 보였다. 자신의 축사를 한 바퀴 돌자며 취재진을 이끌었다. 집밖에는 오래돼 페인트가 벗겨진 파란 지붕 아래 '강기갑의 동물농장'이 꾸려져 있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염소 새끼와 풀어놓은 200여 마리의 닭, 암소 6마리 등을 알뜰살뜰 돌봤다. 3만 평이 넘는 임야와 과수원을 가꾸는 것도 그의 몫이라고 했다. 봄을 알리며 돋아난 새순 앞에선 "이제 곧 염소를 풀어놓고 키울 계획"이라고 설렘을 드러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강 전 대표./사천=배정한 기자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강 전 대표./사천=배정한 기자

"지금은 여기에 있는 게 내 모든 것이야. 내가 정치할 때 모든 온 힘을 쏟았던 것처럼 농사를 지으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 언제, 어떻게, 어떤 일로 내가 '부름'을 받을지라도 거기에 '모든 것'을 쏟는 거지. 여기 있더라도 정치가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여전하지. 가장 안 된 건 우리 국민들이야. 자꾸만 정쟁으로 몰아가고,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이런 방향으로 가면 불행해 질 수밖에 없어. 우리가 정말 행복을 찾을 길이 없어."

강 전 대표와 축사를 한 바퀴 돌고 집 앞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가 말한 '행복의 조건'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전히 멈춰있는 서울 여의도가 떠오른다. 국민은 과연 20대 총선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을까. '국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꼴아박으실 분(?)을 말이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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