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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인터뷰] '농군' 강기갑 "야당 분열, 국민은 정치 희생제물" <상>

  • 정치 | 2016-02-25 05:00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18일 경남 사천 자택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18일 경남 사천 자택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야당의 분열로 국민들의 희망이 완전히 무너졌다"면서 상생의 정치를 주문했다./경남 사천=배정한 기자

[더팩트 | 경남 사천=오경희 기자] "강기갑 씨요?" 아내 박영옥(49) 씨가 "대표님을 만나러 왔다"는 손님에 웃으며 인사한다. 박 씨는 "(강기갑 전 대표가) 안에 있으니 맛있는 거 많이 달라고 하세요"라며 집을 잠시 비웠다.

"잘 지내셨어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강기갑(63)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흙 묻은 작업복 차림 그대로 통화 중이다. 지난 2012년 9월 정계 은퇴 후 고향(경남 사천)으로 내려온 뒤 세 번째 만남이다.

농사꾼으로 변신한 지 벌써 3년 2개월여가 흘렀다. "매실 수확은 갈수록 많아지지요. 지금은 토종닭이랑 한우, 염소 몇 마리 키우고요. 하늘이 나보고 농사지으라고 내려보냈으니 초연하게 지내고 있어요"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강 전 대표는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지난 시간을 성찰했다. "자기 눈에 들보를 넣어놓고 남의 눈에 '티 빼줄게' 고함치던 사람으로서 통진당 분당 사태를 보면서 부끄러웠다. 어디 가서 정치에 대해 할 말이 없는 사람"이라면서도 "매일 아침 정치와 상생의 세상을 위한 기도를 하고 마음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강 전 대표는 진보정당의 간판 정치인으로 손에 꼽힌다.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이명박 정권에 맞서 한미FTA를 반대하고 'MB악법'에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분당을 막지 못했고 정계를 떠났다.

그는 "진보는 뇌사상태"라고 단언했다. 선험자로서 19대 국회와 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분열을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았다. 지난 18일 서울에서 꼬박 5시간여를 달려 난세 속에 자연으로 돌아간 강 전 대표를 또다시 찾았다.

◆ "국회의원 직책 하나 던졌을 뿐인데…"

2년 전 자택 인근 야산에서 칡을 캐고 내려오는 강 전 대표(오른쪽)와 최근 축사에서 염소를 품에 안은 모습./배정한 기자
2년 전 자택 인근 야산에서 칡을 캐고 내려오는 강 전 대표(오른쪽)와 최근 축사에서 염소를 품에 안은 모습./배정한 기자

-역시나 '농군 패션'이네요. 그래도 2년 전 추석에 볼 때보다 세련되셨는데요?

조금 업그레이드가 됐지요. 하하하.

-'원대 복귀'하시고 매실나무 1000주 심었는데, 그간 벌이는 괜찮으셨는지.

수확은 갈수록 많아지지요. 나무가 자꾸 크니까. 지난해 7톤가량 열매가 났지요. 올해 수확은 6월에 했고, 보통 한 20일 동안 수확해요. 요즘 꽃이 막 필 둥 말 둥 그래요. 꽃이 피려고 하면 추위가 와서, 매화는 원래 2월에 피는 거거든요. 꽃이 설 오기 전에 일부 피긴 했는데 아직 꽃샘추위도 아니고, 아주 냉혹한 추위가 영하 9도까지 내려갔으니까. 꽃은 아마 상처를 입어서 열매를 못 맺을 것이고, 조금만 있으면 꽃이 더 필 거 같아요.

-앞마당을 보니까 파이프도 늘어져 있고, 축사에 동물들도 있던데.

축사가 중고라 물이 새요. 지붕 위에 올라가서 땜질하고 하느라 조금 전에 집에 들어왔어요. 축사 한 바퀴 돌아볼까요? 유기농으로 키우는 토종닭도 있고, 염소도 있고, 한우도 좀 몇 마리 키우고. 얼마 안 돼요. 한우는 6마리고, 새끼를 두 번 낳았는데 딸만 낳았어요. 전부 다 암놈이에요. 암기운이 센 모양이에요. (아~사모님? 하하하) 암놈만 나한테 뭐 당한 게 서러움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하하하.

강 전 대표가 축사 앞 강아지의 목줄을 풀고 있다./배정한 기자
강 전 대표가 축사 앞 강아지의 목줄을 풀고 있다./배정한 기자

-정계에서 은퇴할 때보다 훨씬 건강해지신 것 같은데요. 살도 부쩍 오르고.

아무래도 자연농사가 마음이 푸근하고 편하지요. 사람농사는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계속 이렇게 머리싸움으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고달프지. 정치농사라는 게 그렇잖아요. 국회의원 직책 하나 딱 벗어던졌다고 사람이 이렇게 편안할 수 있는가 할 정도다. 한편으로는 내가 참 대단히 이기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회에 있을 때는 하...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뭐 편할 날이 없었거든요. 애써 모르는 척하는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그게 내가 나서야 할 일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다르더라고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 "국민에 버림받는 정치인들이 불쌍하다"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게 정치 생활동안 제 눈에 티는 보지 못하고 남을 들추려 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하는 강 전 대표./배정한 기자

-어쩔 수 없이 외면하고 있는 부분들도 있다고 했는데요. 지금 야당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다 내려놓고 보시면 안에서 보실 때와 또 다를 것 같은데요.

바둑이나 장기 둘 때 본인이 집중하고 열중하면 고민도 많이 하고 애를 많이 쓰겠지만, 어쨌든 거기에 너무 몰입하고 집착하다 보면 뻔한 것도 잘 못 보는 수도 있고 왜곡수도 쓸 수 있고 그런 건데. 지금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 입장이 되다 보니 객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보긴 보겠지요.

내가 내려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느낀 게 정치권의 생활을 하기 전하고 그걸 경험하고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물을 보고 생명의 조화를 접할 때 깨달은 것이 많이 다르다. 정말 내 10년의 세월이 하루아침, 주먹 안에 아무것도 남김없이 모래는 모래대로 빠져나가고, 재는 재대로 빠져나갈 만큼 세찬 바람 속에 온몸을 훑어서 느꼈지요.

오직 풍요롭고 편리함을 향하는 그것만을 향해 질주하다 보니까 정신적으로 너무나 우리가 메마르고 삭막하고 오로지 경쟁, 교육부터 그렇거든요. 그게 사실 국민 가치관이 올인하고 있는 거거든요. 아무리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 있어도 대체로 거기에 공분을 가지는 사람이 적어요. 내가 가진 바를 조금이라도 공익에 더 큰 공유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희생하거나 내가 좀 어려워지는 것을 다 거부하고 펄펄 뛰잖아요. 이런 것들이 지금 정치 방향 설정이라던가 그때그때 짤막한 작품들이 계속 거기에 맞춰서 이뤄지고 있는 거거든요.

전체로 보면 정말 정치 하나가 잘못함으로 인해서 우리 국민이 이렇게 그냥 공중에 붕붕 뜨면서 계속 실현 불가능한 목표만 좇는데, 국민도 혼란스럽고 힘들지만 정치인들이 결국은 국민에게 다 버림받고 있잖아요. 정치인들이 불쌍한 거예요. 조금만 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이건 아니'라고 할 소리도 하는 그런 것들이 한 번씩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그럴 용기나 결단을 사실 내기가 갈수록 힘들다.

◆ "국민 희망 완전히 무너져 내린 형국"

강 전 대표가 축사 안 유정란을 살펴보고 있다./배정한 기자
강 전 대표가 축사 안 유정란을 살펴보고 있다./배정한 기자

-자연의 조화를 말씀하신 것에 비춰보면 가치와 이념에도 조화가 필요하지 않겠나. 통진당 사태 이후 진보의 위기를 말씀했고,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도 중도로 외연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데.

제가 자기 눈에 들보를 넣어놓고 남의 눈에 왜 티가 있냐고 호통치면서 "티 빼줄게" 설치고 고함치고 책상 두드리고 했던 사람이잖아요. 당 사태 겪으면서 너무나 부끄러웠거든요. 우리 진보의 패권이 이렇게 추하게 국민 앞에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제 눈의 들보를 넣어놓고 정말 가관인 짓을 많이 했어요.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사실은 내가 어디 가서 정치에 대해서 할 말이 없죠.

위기는 어떻든 생존에 위협을 크게 느낄 때 '위기가 왔다'고 보통 하는데. 사실 뭐, 먼저 저번에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서 진보 자체가 뇌사상태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씨를 지금 뿌려야 할 그런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면에서는 국민 마음속에 진보가 사망 선고를 이미 한 상태거든요. 그래서 정의당이 목소리를 내도 국민이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게 희망이다' 캄캄한 밤에 한 가닥 불빛들을 보면 낮에 보는 것보다 그 불빛이 선명하고 멀리서도 잘 보이고 기대나 희망을 많이 품게 되는데 이제는 너무나 미미하다 보니까….

거기에다가 이제 또 야당 내에서 저렇게 파열음이 제2탄으로 벌어졌다. 올해는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저렇게 돼버리니 전체 분위기나 정서, 특히 그나마 야성을 가지고 있는 국민의 기대나 희망마저 이제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그런 형국이라고 봐야 되지 않겠나.

◆ "언젠가는 빛에 대한 갈망이 터져 나올 것"

"어둠이 짙을수록 빛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지는 것"이라며 활짝 웃는 강 전 대표./배정한 기자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국민에게 응원의 메시지랄까. 그런 이야기를 좀 해주실 수 있을지.

어쨌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고. 또 캄캄하고 어둠이 짙을수록 빛에 대한 갈구나 갈망들이 더 커지는 것이니까. 위기가 아니라 다 죽은 것처럼 보여도 거기서는 어쨌든 생명의 기운이 있는 한 꿈틀거리고 살아날 수가 있는 거다. 언젠가는 그런 것들이 하나의 계기가 돼서 많은 사람이 갈구하고 있는 기운이 있는 한 언제 역동적,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지 모른다. 역동성과 폭발성의 기폭제 같은 계기가 마련되면 확 터져 나오는 그런 게 있어요.

옛날부터 많이 있었죠. 역사적으로 보면 4·10, 6·10항쟁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 마음속에 거대한 강 아래위에는 물이 흐르는 대로 이쪽으로 흐르는 건지, 안 흐르는 건지 이쪽인지 저쪽인지 가까이 가지 않으면 넓은 강은 어디로 흐르는지 안 보인다고. 안 흐르는 것 같지만 좁은 계곡으로 가면 집채만 한 바위도 훑어가는 그 물살이 물 밑에서 흐르고 있는 거거든. 그런 것들이 국민 의식 속에 잠재돼 있다고 본다. 매일 아침 정치와 상생, 세상을 위한 기도를 한다.

☞ <중>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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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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