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계사=신진환 기자] 불법 시위 혐의 등을 받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25일째 은신하고 있던 한상균(5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이로써 길고 긴 경찰과 불교계의 긴장상태가 해제됐다.
◆ "투쟁 끝까지 할 것"…한 위원장 '자진 퇴거'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25분께 자신이 머물던 조계사 관음전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대웅전으로 자리를 옮겨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는 의식을 치렀다. 뒤이어 한국불교역사문화관으로 이동해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공개로 면담했다.
한 위원장은 대웅전 옆 생명평화법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잠시 현장을 떠나지만, 노동개악을 막아내는 총파업 투쟁을 끝까지 함께하겠다"며 "정권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구속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피하지 않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한 위원장은 정권에도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위원장을 구속하고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을 하더라도 노동개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자 서민을 다 죽이고 재벌과 한편임을 선언한 반노동 반민생 새누리당 정권을 총선과 대선에서 모든 민중과 함께 심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25일 동안 고통과 불편을 감내하여 주신 조계종과 조계사 스님과 신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한 위원장은 도법 스님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경찰 호송차에 몸을 실었다. 경찰은 수갑을 채우면서 체포 영장을 집행한 뒤 남대문경찰서로 이송했다.
◆ 경찰, 체포영장 집행…한 위원장 혐의 크게 4가지로 분류돼
경찰은 48시간 안에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이르면 12일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 위원장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수공용물건손상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같은 혐의와 여러 사람이 집합해 폭행과 협박 또는 손괴 행위의 죄인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 6월 검찰로부터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남측 도로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서 시청광장까지 행진하다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하고 1시간가량 왕복 8차로를 점거하는 등 불법시위를 벌인 혐의 때문이다.
그는 5월 1일 노동절 집회 중 제지하는 경찰을 폭행(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6월 23일 한 위원장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아울러 법원은 10월 4차례에 걸쳐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한 위원장에 대해 구인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구인장은 법원이 피고인 또는 증인을 강제로 소환해서 심문하기 위해 발부하는 영장을 말한다.
그럼에도 법정에 불출석한 한 위원장에게 법원은 11월 11일 구금용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다만 이 구금용 구속영장은 법원이 새 구속영장을 발부할 경우 반환된다.
민주노총 사무실 등에 머무르며 두문불출하던 한 위원장은 지난달 1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차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에 참가해 노동개혁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한 위원장 체포 작전에 돌입하고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몸싸움을 벌였으나 과열 양상을 보여 충돌 위험이 있다고 판단, 인력을 철수시켰다.
◆ '은거' 한 위원장…조계사에서 무슨 일이?
한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오후 10시 30분께 조계사로 피했다. 경찰이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등 8개 단체의 사무실 12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을 하면서 증거물 확보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기 닷새 전이다.
한 위원장은 조계종 화쟁위원회(화쟁위)에 신변보호와 2차 총궐기 집회 개최 등 중재를 요청했다. 화쟁위는 지난달 25일 경찰청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틀 뒤 경찰이 화쟁위 요구를 거절하면서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경찰이 조계사 주변에 인력을 배치하고 경계를 강화하지 일부 신도의 거센 반발도 발생했다. 일부 신도는 한 위원장의 강제 퇴거를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 위원장의 옷이 뜯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조계사 신도회는 비상 총회를 열고 한 위원장이 6일까지 조계사에서 머물 수 있도록 결정했다. 하지만 그전에라도 신도들의 바람을 읽고 헤아려 조계사를 떠나주길 바라는 '대승적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신도회가 결정한 시한을 넘긴 7일 "노동개악 상황이 끝날 때까지 조계사에 더 의탁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결국 강신명 경찰청장은 8일 오후 4시부터 24시간 안에 자진 출석할 것을 통보하면서 불응할 시 체포영장을 집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 위원장이 관음전 밖으로 나오지 않자 경찰은 체포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경찰력을 관음전까지 전진 배치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10일 낮 12시까지 한 위원장의 거취를 해결하겠다"고 중재에 나섰고 경찰은 이를 받아들여 체포 작전을 연기했다.
한 위원장은 10일 오전 경찰에 자진 출두하면서 24일간의 조계사 은거 생활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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