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역사전쟁’이라고들 한다. 전쟁이란 표현을 굳이 쓰겠다면, ‘역사내전(內戰)’쯤이 적절할 것이다. 누가 이기고 지든지 그 결과 또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 될 테니까. 여하튼 ‘객관적인 역사’가 작금 사태의 키워드이다. 그런데 과연 ‘객관적인 역사’가 가능한가.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카 역시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역사적 객관성은 ‘사실’과 ‘해석’ 사이에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에 객관성이 자리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가 부여하는 의미에 의해서만 역사적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L.내이미어의 “역사가는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한다”는 말도 이 연장선이다. 현재에 서서, 미래를 기준으로, 과거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이다.
이렇게 무거운 역사이지만, 가볍게 관통할 수 있다. 마치 공기와 비슷하다. 깃털보다 가볍다고 여기지만, 지구를 둘러싼 공기의 무게는 태산도 평평하게 짓누를 수 있는 것이다.
“태정태세문단세…”가 조선 역사의 한 씨줄이겠지만, 날줄과 함께 삼차원으로 구성하면 그저 누항(陋巷)과 저잣거리 기록과도 비등한 흔적일 수 있다. 예컨대 조선시대 시장의 기록을 통해 왕조실록보다 더 정확하게 그 시대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왕조의 변천이 역사의 기둥 줄기는 아니다. 어쩌면 ‘정치적 역사’나 ‘엘리트주의적 역사’는 도도하게 흐르는 ‘민중의 역사’ 강물 위에 떠가는 낙엽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 낙엽은 흐름을 만들지도 이끌지도 못하면서 그저 떠내려갈 뿐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통해 강물의 흐름을 아는 것이다.
지난해 김영사에서 ‘고전통변’이란 책을 내놨다. 한국고전번역원의 노관범 전문위원의 역작인데, 제법 두툼하지만(512쪽), 마치 한란(寒蘭)의 기품이 있다. 그런데 소위 ‘고전’이란 “사람들이 칭송하면서도 읽지는 않는 책(마크 트웨인)”이 아닌가. 각설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해진 지금, 다시금 일별할 가치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저자는 18세기부터 20세기 공화정에 이르기까지 고전을 선별해 소개한다. 압축하면 ‘근대 지성사의 전후’쯤이다. 실학이 태동하고, 왕조가 몰락하며, 공화정이 들어서는 일련의 역사 속에서 당대의 지성인들이 현실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고민하며, 어떤 세상을 꿈꿨는지를 짚어본다.
거시사(巨視史)보다는 미시사(微視史)에 관심을 둔 저자의 취향이 짙게 밴 문선(文選)이어서 자연히 엘리트주의 역사관을 통해 이미 접했을 군왕이나 재상이 아니라, 누항(陋巷)과 낙학(洛學)의 선비들이 대상이다.역사의 표면에 드러난 상징보다 그 도도한 저류(底流)를 더듬었다고나 할까.
조구명은 남북기론(南北氣論)에서 세계사의 중심을 중국에 두고 ‘역사는 늙고 병들었다’고 진단한다. 중원에서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의 거듭된 권력 교체를 ‘남북순환’으로 설명하면서다.청(淸)이 명(明)을 축출하면서 북세남진(北勢南進)의 정점을 찍은 것으로 봤다. 그런데 중국이 아니라 조선에서 세계사를 바라봤다면 과연 어떤 역사법칙을 이끌어냈을까.
영조 때 안정복은 저잣거리에서 벙어리 저금통을 처음 접한다. 상인에게 벙어리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를 묻자 “신하들이 임금이 성군이고, 나라는 치세(治世)라면서 덕과 부덕을 논하지 않는 세태를 비꼰 것”이라고 답한다. 결국 해야 할 말도 못하고 서로 경계하면서 천하가 벙어리가 된 것이다. 그저 말없이 동전만 챙기는 세상이었던 셈인데, 아마도 명분보다 실리라는 통찰인 듯하다.
홍대용은 실옹(實翁)과 허자(虛子)의 문답을 통해 “역사는 상대적이고, 화이(華夷)는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공자를 시간적으로는 주(周)나라로, 공간적으로는 조선으로 데려오는 ‘대체역사’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다면적인 역사의 모습을 제시한다. 만년 성균관 유생이었던 윤기는 “사마천도 오경(五經)을 낮추고, 인의(仁義)를 앝보고, 수절(守節)을 천하게 봤다는 지적이 있다”며 “역사서에 사실은 있지만 진실은 찾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전환기에도 선비는 꼿꼿함을 잃지 않는다. 깊은 공부에서 우러난 자부심이 원천이다. 임오군란과 청일전쟁이 지나간 어느 날 조선의 선비 박승동은 청(淸)의 손경종과 만난다.공맹(孔孟)의 땅에서 온 손 선비에게 박승동은 조선 성리학의 대표 이황과 이이의 가르침을 전해준다.손이 “해외에서 뜻하지 않게 훌륭한 스승을 얻었다”고 하자 박은 “자기의 마음이 엄한 스승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물러선다. 일종의 필담을 통한 학술교류인 셈이다.
임오군란(1892)이 난 해 김윤식은 삼국지를 빌어 ‘시무(時務)’를 언급한다. 유비의 입장에선 전력을 다해 조조를 토벌할 것이냐, 물러나 천하삼분지계로 때를 기다릴 것이냐가 선택의 기로이다. 전자는 기세는 그럴 듯하나 부응하기 어렵다. 이처럼 전환기의 조선은 무차별적인 부국강병의 공간이 아니다. 매우 평범하게 들리겠지만, 당시로서는 ‘탐학한 관리를 내치고 백성의 구휼에 힘쓰는 것’이다. 부국강병은 ‘가지와 이파리’이고, 중요한 ‘뿌리’가 바로 백성이다. 이로부터 2년 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보면 시무의 방향이 분명하다.
단발령이 공포되기 사흘 전 안효제는 흥선대원군의 밀지를 받고 러시아 공사관을 찾아가 이를 막아달라고 웨벨(Weber)에게 호소한다. “단발하면 임금이 죽고, 임금이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웨벨은 “개화와 단발이 무슨 관계냐, 일 개 공사로서 내정간섭은 곤란하다”고 짐짓 외면한다. 결국 고종은 단발하고 만다. 이후 ‘단발’이 횡행하면서. 모던(Modern)은 모단(毛斷)으로 통했다. 안효제의 행적은 한국근대사에서 잊지 못할 한 장면이 아닌가.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에 육용정은 “자식이 외국에 유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앞선 지식과 문물을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선 효도의 근본 자세부터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덕행이 근본이고 학술과 기예는 말단인데, 철없는 어린이가 덕행을 쌓기도 전에 학술이라는 말단에 치우치면 곤란하다는 인식이다.
1909년은 구학과 신학이 맞붙은 해이다. 군산으로 낙향해 공부하던 유영선은 ‘신서론’을 통해 소위 신학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인륜과 강상(綱常)의 ‘도(道)’가 근본이지 ‘이(利)’라는 한 글자를 학문의 전체 강령으로 삼고 있다고 폄하한다.
이도 어찌 보면 일찍부터 천박한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근대 이후 ‘새’라는 접두사가 붙은 경우 시대인가, 가치인가. 신(新)이 거의 신(神)과 동의어가 됐다고 한탄한다. 이러한 비판이 섬 지역에서 울려 퍼졌다는 것은 바로 이미 서울을 중심으로 신사조(新思潮)에 점령됐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우리나라 최초의 중화민국 여행기, 이병헌의 ‘중화유기(中華遊記).1916년 중국 산동성 공자묘에서의 기도문은 ‘유교 때문에 망하였느냐,나라를 구원하고 조국의 혼을 부르는 것이 유교가 아니냐”며 새 유교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박은식의 ‘한국통사’가 출간된 것도 이 즈음이다. 제왕의 유교에서 민중의 유교로 전환도 이때부터가 아닐까.
세월은 역사의 바탕일 뿐, 세월 자체가 역사는 아니다. 세월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인식이란 ‘역사적 사유’가 개입돼야 한다. 박장현은 구사학론(舊史學論)에서 ‘사학은 국민의 밝은 거울이며, 사상 진보의 원천’이라고 정의한다.
마지막은 제주에서 본 한국사의 일면이다. 김석익은 ‘심재집’에서 “4월3일, 산군(山軍) 소동이 발발하였다”며 유사이래 없었던 참화를 설명하고 있다. 바로 4·3사태이다. 여기에 6·25까지 발발하면서 “지식이 있고 명망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소탕됐다”고 한탄하고 있다.
역사는 이처럼 군왕이나 대통령, 제도와 변란만으로 완벽하게 기술할 수 없다. 동시대의 자잘한 글에 담긴 생각의 편린이 오히려 역사의 속살을 제대로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대로변의 건물만 보고 그 이면의 삶을 놓쳐서는 제대로 도시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고전’의 선택과 해석은 오롯이 저자의 몫이다. 이를 읽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이란 영화에서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폭군 진시황은 춘추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천하를 중국 최초로 통일한 진정한 영웅으로 표현된다. 그야말로 어제의 진시황은 폭군이었으나, 오늘의 진시황은 영웅이다. 객관적인 역사라는 것은 이처럼 ‘사실’과 ‘해석’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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