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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의 정사신] ‘올바른 역사교과서’ 방향 맞나요?

  • 정치 | 2015-10-13 11:22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12일 오후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12일 오후 "정부가 직접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 역사 교과서의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사회적 논쟁을 종식하고자 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더팩트 DB

[더팩트 l 이철영 기자] 조선왕조실록 태종 7권, 4년(1304 갑신/명 영락(永樂) 2년) 2월 8일(기묘) 4번째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혔다.

‘임금이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으나 사관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다.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해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하였다.’

태종은 자신이 말에서 떨어진 모습을 실록에 기록하지 않으려는 이유로 '사관'에게 알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사관은 태종이 말한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는 말까지 기록했다. 당시의 기록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객관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사관이 왕을 무서워해 기록하지 않는다거나 한쪽에 치우쳐 기록했다면 조선왕조실록은 ‘편향(偏向)’ 논란으로 역사적 가치가 지금과 같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부는 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를 했다. 정부의 국정화 시도에 새정치민주연합은 물론 교육계, 시민사회단체 등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반면 보수단체는 국정화를 환영했다. 국정화 반대 측이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정부의 입맛에 맞게 기술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과 달리 찬성 측은 좌편향적 역사교과서를 정상적으로 교정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편향'에서 비롯했다. 현재 '검정' 교과서가 지나치게 좌 편향적이어서 수정이 불가피해 새롭게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 이유다.

정부의 국정화 추진일정은 ▲중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행정 예고(10월12일∼11월2일) → ▲‘중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 고시(11월5일) → ▲교과서 집필진 및 교과용도서 편찬심의회 구성(11월 중순) → ▲교과서 집필(11월 말∼2016년 11월 말) → ▲교과서 감수 및 현장 적합성 검토(2016년 12월) → ▲학교 현장 적용(2017년 3월) 등을 거치게 된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정부가 직접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 역사교과서의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사회적 논쟁을 종식하고자 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황 장관의 이 같은 설명에 공감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 황 장관의 말에 따르면 현행 역사교과서가 이념적 편향 즉, 좌 편향적이다. 하지만 현재 역사 교과서는 2011년 8월 이명박정권이 정한 집필기준에 따라 만들어졌고, 2013년 8월 박근혜정부가 최종합격 판정을 내린 교과서다. 그럼에도 ‘좌 편향적이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정부와 여당은 또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필요한 이유로 현재 교과서의 '좌 편향'을 꼽는다. 정부와 여당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나온 한국사 교과서 39권 중 38권의 집필자가 좌 편향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 교과서에서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와 다를 바 없다’, ‘천안함사건은 미국이 일으킨 자작극이다’, ‘이승만도 이완용이랑 비슷한 친일파로 나라를 팔아먹으려했다’, ‘이승만은 민족의 분단책임자이며, 북침통일을 외치다가 6.25로 많은 동포를 죽였다’ 등 좌 편향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당정은 국정 교과서를 통해 이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당정이 좌 편향적이라고 주장하는 이 교과서들은 모두 이명박정권과 현 정부의 검정을 모두 통과했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로만 배울 경우 역시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팩트DB
국정 한국사 교과서로만 배울 경우 역시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팩트DB

한쪽으로 치우친 교과서를 바로 잡는데 반대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국정화가 우려스러운 것은 공과(功過)를 기술할 때 공(功)만을 기술하고 과(過)를 기술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기술하는 것 등이다. 법원은 5.16을 군사쿠데타로 판결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성과를 이유로 5.16을 쿠데타가 아닌 ‘군사혁명’으로 보기도 한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이유다.

역사는 결코 하나의 시각으로만 기술할 수는 없다. 과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 시대는 붕당정치로 당쟁이 무척 심했다. 따라서 당파에 따라 실록을 작성했다. 남인이 작성한 ‘현종실록’을 못마땅해 한 서인은 경신환국으로 다시 권력을 잡고 ‘현종개수실록’을 썼다. 그러나 이들이 지킨 것은 후대가 참고하고 판단하라고 원래의 실록은 파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은 선조실록을 작성한 이이첨을 비롯해 40여 명을 참수하고 200여 명을 귀양 보냈다. 하지만 이이첨이 작성한 ‘선조실록’ 원본은 폐기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양한 역사서를 통해 후대 사람들이 진실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21세기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 다양성 측면에서 시대를 역행한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시대가 야당의 주장처럼 유신시대여서는 안 된다. 차라리 역행하려면 조선 시대로 가는 것이 낫다. 왕과 집권한 붕당의 권세가 하늘을 찌름에도 역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후대에 판단을 맡긴 그때로 말이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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