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바이올린의 기나긴 흐느낌이 내 가슴 엔다."
프랑스의 낭만파 시인 폴 베를레느의 '가을의 노래(Chanson d’Autome)'는 이렇게 시작한다. 소네트 형식의 시인데,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가을 시가 아닐까. 사춘기 여고생들이 프랑스에 대한 동경심과 애잔한 낭만을 엮어 가슴에 품고 읊조렸던 시였다.
이 시가 유명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신호로 쓰이면서다. 당시 연합군은 프랑스 레지스탕스에게 이른바 'D-데이'를 영국 BBC방송을 통해 알렸는데, 암호가 바로 '가을의 노래'였다. 첫 세 줄(가을날/바이올린의/기나긴 흐느낌)은 상륙작전이 2주 이내 실행된다는 것이었다. 이 암호는 1944년6월1일 방송됐다. 다음 세 줄(단조로운/초췌함으로/내 가슴 엔다)은 48시간 이내 실행된다는 뜻이었고, 6월 5일 23시15분에 방송됐다. D-데이는 바로 다음날 6월6일이었다.
한 여름에 왜 '가을의 노래'가 암호로 선택됐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특이한 내용이라면 당시 독일의 암호분석반에 포착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대중적이면서도 유명한 시구를 이용한 것이 아닐까. 여기에 좀더 포장한다면, 전장의 비참함과 덧없음이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구르는 낙엽'처럼 느껴졌을까. 한편으론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가을까지 전쟁을 끝내겠다는 희망 섞인 의지의 표명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마도 이 때부터였을 것이다. 가을과 바이올린이 매칭된 것은. 그런데 베를레느는 왜 낙엽 지는 가을에 바이올린의 이미지를 떠올렸을까. 여기에는 조금은 애잔한 스토리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17년 프랑스 국왕의 초대로 파리에 갔을 때다. 궁정에서는 초기 형태의 실내악이 그를 맞이했다. 당시의 주력 악기는 비올(Viol)과 목관악기, 프랑스에서는 클라브생(Clavecin)이라고 불리는 하프시코드 등이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피아노는 1709년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가 하프시코드를 개량해 만든다.
환영파티가 끝나고 다빈치가 궁정을 떠날 때 한 젊은 여인이 마차를 가로막고 엎드린다. 그는 비올을 연주하던 궁정악사였다. 마부가 쫓았으나 다빈치가 불러 세운다. 무슨 일이냐고. 젊은 궁정악사는 "아비가 악기를 제작하는 악공입니다. 그런데 후원자를 찾지 못해 필생의 악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재력가에 예술도 잘 아시니 후원해주십사 이렇게 길을 막았습니다."라고 간청했다. 다빈치는 별다른 뜻 없이 선뜻 후원금을 건넸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다빈치가 파리국왕이 베푼 궁정파티를 마치고 귀가할 때였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여자 악사가 나타나 과거 후원금을 일깨운다. 그녀 안내로 조그마한 아틀리에에 도착했을 때, 파리한 얼굴에 수척한 악공이 낯선 악기를 내보였다. 그가 시험적으로 연주하자 너무나도 구슬픈 선율이 울려 퍼졌다. 다빈치가 물었다. "왜 이다지 슬픈 음색인가." 악공이 답했다. "저의 인생 말년에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제작했기 때문일까요." 이 악기가 바로 바이올린, 프랑스어로 비올롱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듬해 1519년 세상을 떠난다. 역사상 최고의 천재이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그의 마지막 말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런 일화를 잘 아는 베를레느이기에 '가을의 노래'에 바이올린의 원관념을 삽입했을 것이다. 그렇다. 푸르던 잎새 하나 금빛으로 물들면서 가을은 시작한다. 낙엽 한 잎 떨어지며 가을은 깊어가고, 쌓인 낙엽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구르면서 가을은 겨울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느 가을날 시계탑에서 시종이 울리면, 문득 지난날을 생각하곤 눈물 짓는 것이다. 파릇파릇 새순이 돋아나던 잔인한 4월, 온갖 꽃을 피우며 향기가 진동하던 오뉴월, 녹음방초가 꽃보다 아름답다던 여름, 그리고 열매와 낙엽이 교차하는 가을인 것이다.
씨앗을 품은 열매는 화초의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이 열매가 땅에 떨어지면, 푸르름을 황금빛으로 갈무리한 이파리가 낙엽으로 떨어져 덮는다. 화초는 속히 사위어 씨앗의 거름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지 못한 화초,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의 이파리는 보듬고 덮을 '희망'이 없다.
베를레느도 그랬을 것이다. 어리고 젊은 청춘과 뜨겁게 불타오르던 중년을 넘기고 가을의 복판에서 시계소리를 문득 들었을 때 말이다. 낙엽 진 나뭇가지에 '휘잉~'하고 바람이 불 때, 가슴을 후리는 채찍소리로 느꼈을 것이다. 그 찬란한 봄과 생동하는 여름을 어떻게 보냈느냐고. 아마도 다빈치가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고 탄식한 깊은 회한을 가을과 바이올린에 담은 것이 아닐까.
베를레느의 가을이 애잔하고 가슴을 후빈다면, 우리의 시인 고은의 가을은 깨달음이자 초극이다. 그는 '가을 편지'에서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라고 잔잔히 되뇐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시라면서. 그러면서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답고, 낙엽이 흩어진 날 헤메이는 여자가 아름답다"고 했다. 이 시의 정점은 낙엽이 떨어지고 흩어진 후 아예 '사라진 날'이다. 외로운 여자도, 헤메이는 여자도 아닌 '모르는 여자'가 아름답다 한다. 도(道)를 구하려 홀로 외롭게 정진하다, 깨달음의 문턱에서 헤매다, 드디어 그 문턱을 넘어 염화시중 미소의 아름다움을 봤다는, 하나의 게송(偈頌)처럼 다가온다.
중생에게 가을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의 세계이다.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살갗으로 느끼는 ‘물질의 가을’이다. 시인 고은은 이를 뛰어넘어 보살(菩薩)에게 궁극의 진리를 마치 '뜰 앞의 잣나무'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9월은 아직 가을의 문턱이다. 이파리는 황금빛으로 불타오르고, 꿈은 베개에 있으며,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지 않은가. 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이따금 바이올린 선율의 '가을의 노래'도 듣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일이다. 늦기 전에 사랑할 일이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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