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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붉은 장미는 붉은색이 싫다

  • 정치 | 2015-07-20 11:34
민심(民心)은 천심(天心) 천 겉절이 정치보다 잘 숙성된 정치가 제맛이 아니겠는가. 백합이나 백조 같은 배타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흑장미나 까마귀 같은 이타적인 정치인이 그립다./임영무 기자
민심(民心)은 천심(天心) 천 겉절이 정치보다 잘 숙성된 정치가 제맛이 아니겠는가. 백합이나 백조 같은 배타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흑장미나 까마귀 같은 이타적인 정치인이 그립다./임영무 기자

빛이 항상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눈은 자외선과 적외선의 사이 '가시광선'만 본다. 가시광선(可視光線)은 말 그대로 볼 수 있는 빛이라는 뜻이다. 이 가시광선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 '빨주노초파남보', 바로 무지개이다.

우리가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물체는 고유의 색깔을 띤다. 색깔을 '가진다'는 표현 대신 '띤다'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다. 노란색으로 보이는 호박꽃은 실제로는 노란색만 제외하고 모든 색을 흡수한다. 노란색은 흡수하지 않고 반사(反射)하는 것이다. 호박꽃이 '싫어해서' 반사해버린 노란색을 보고 "호박꽃은 노랗다"라고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빨간 장미도 마찬가지이다. 빨간 장미는 모든 색을 흡수하고, 대신 자신이 극도로 싫어하는(?) 빨간 색은 그냥 반사해버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싫어해서 되쏘아버린 빨간색을 보고 아름답다며 찬사를 바친다.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색깔 때문에 사랑받는 장미, 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순백(純白)의 정결한 이미지를 가진 백조(白鳥)는 원래 색(色)이 싫었다. 그래서 모든 색깔을 반사해버렸다. 이런저런 색깔과도 화합하지 못하고 스스로 '왕따'를 자처한 백조가 하얀색으로 보이는 이유다. 반면 검은 까마귀는 모든 색깔과 화합한다. 노란색도 빨간색도 파란색도 다 받아들였다. 그래서 검은색이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배타(排他)적인 백조를 '선(善)'의 상징으로 여긴다. 어떤 색깔이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이타(利他)적인 까마귀는 '악(惡)'의 상징이다. 아마도 색(色)의 이런 본질을 알았더라면, 흑(黑)과 백(白)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마치 본질보다는 피상(皮相)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인간들의 내밀한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지 않은가. 공자(孔子)도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이라 했다. 듣기 좋게 꾸미는 말, 보기 좋게 꾸미는 낯(얼굴)은 대체로 어질지 않더라는 이야기이다. 노자(老子)도 도덕경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하지 않았나. 여기서 '무위(無爲)'는 '행함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꾸밈이 없다'는 '무위(無僞)'를 말한다.

민심이 모인 국회 정치라는 것이, 정치인이란 속성이 본디 그런 것임을 몰랐다는 자인(自認)이기도 하다. 이를 깨달았다면 길은 크게 두 갈래일 것이다. 국민도 나도 속이지 않는 정치, 국민도 나도 속이는 정치이다. 어느 쪽인지 민심(民心)이 가늠할 것이다./서민지 기자
민심이 모인 국회 정치라는 것이, 정치인이란 속성이 본디 그런 것임을 몰랐다는 자인(自認)이기도 하다. 이를 깨달았다면 길은 크게 두 갈래일 것이다. 국민도 나도 속이지 않는 정치, 국민도 나도 속이는 정치이다. 어느 쪽인지 민심(民心)이 가늠할 것이다./서민지 기자

그럼에도 사람들은 실제 그 자체보다 보이는 것에 관심을 보이며 몰두하는 습성이 있는 듯하다. 예컨대 사자는 짜증 나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 포효(咆哮)한다. 행복한 사자는 그저 어슬렁거리거나 벌렁 드러누워 낮잠을 잔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사자의 불만스러운(?) 포효를 보면서 멋있다, 늠름하다고 한다.

초원의 스프링복은 용수철이 튀듯이 깡충깡충 뛰며 초원을 가로지른다. 이런 우아한(?) 도약 때문일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가 상징동물로 삼은 것은. 그러나 스프링복의 도약은 사자나 하이에나 무리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필사적 '필생기(必生技)'일 뿐이다.

어쩌면 본질은 본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꽃은 피었다가 필경 지는데도, 시든 꽃잎은 애써 외면한다. 연녹색 신록(新綠)을 예찬하다가도 낙엽으로 구르면 지저분하다고 한다. 화수분을 마친 시든 꽃잎과 열매에 태양의 자양분을 공급한 낙엽은 후세(後世)를 위한 밑거름이 되려는 것이다. 그래서 불필요한 자양분을 소비하는 대신 속히 시들고 떨어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숭고한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밭이랑 같은 주름살을 추(醜)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마도 인간만이 스스로를 천변만화(千變萬化)로 꾸밀 것이다. 지조(志操)도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는데, 겉모습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우스개가 있다. 전체 국회의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요지는 이랬다. "당신이 국회의원을 포기하면 남북통일이 이뤄진다. 당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남북통일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겠는가?" 모든 국회의원의 답은 "내가 국회의원이 된 다음 남북통일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단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을 위해 정치를 한다. 진실로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정치인은 국민이 잘 알아보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 정치의 함수가 있다. 국민은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정치인보다 정치인 스스로를 위해 정치를 하는 정치인을 결과적으로 선호하는 것이다.

백조와 까마귀로 비유한다면, 어떤 색깔과도 화합하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백조 정치인을 유권자들은 결과적으로(!) 좋아한다. 낮은 자세로 모든 색깔을 받아들이며 섬기는 이타적인 까마귀 정치인은 결과적으로 배척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을 비틀어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텅 빈 의석 전체 국회의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요지는 이랬다.
텅 빈 의석 전체 국회의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요지는 이랬다. "당신이 국회의원을 포기하면 남북통일이 이뤄진다. 당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남북통일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겠는가?" 모든 국회의원의 답은 "내가 국회의원이 된 다음 남북통일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단다./문병희 기자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 하늘은 스스로 챙기는(돕는) 자를 챙긴(돕는)다고 한다. 하늘도 스스로를 챙기는 자를 챙긴다는데, 어디다 대고 국가와 국민을 챙긴다는 것이냐. 민심도 역시 스스로 챙기는 자를 챙긴다. 따라서 나라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정치를 하는 정치인을 민심은 지지하는 것이다." 맞는 말인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말은 어쩌면 뒤늦은 후회와 반성일지도 모른다. 정치라는 것이, 정치인이란 속성이 본디 그런 것임을 몰랐다는 자인(自認)이기도 하다. 이를 깨달았다면 길은 크게 두 갈래일 것이다. 국민도 나도 속이지 않는 정치, 국민도 나도 속이는 정치이다. 어느 쪽인지 민심(民心)이 가늠할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민심은 '스스로 챙기는 자를 챙긴다'고 하지 않았나. 낙관으로 비치든 비관으로 비치든, 이것이 엽전의 양면과 같다면, 결국 모두가 작은 엽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화장(化粧)과 분장(扮裝)은 다르다. 얼핏 우리말로 들으면 화장(花粧)과 분장(粉粧)으로 들린다. 꽃처럼 단장하는 것이나 분가루 바르는 것쯤의 차이로 말이다. 하지만 똑같이 얼굴을 꾸며도 화장(化粧)은 본디 모습을 더욱 예쁘게 하는 것이고, 분장(扮裝)은 역할에 맞게 분장(粉粧)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민 낯'을 거북스러워하는 것이다. 마치 꽃도, 이파리도 아직 없는 초봄의 앙상한 나무처럼.

겉절이는 상큼하지만 김장 김치의 숙성된 깊은 맛은 없다. 겉절이는 말 그대로 겉만 절인 김치다. 아직 온갖 양념과 배추가 한데 섞여 화합하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이다. 김장 김치는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인 상태이다. 김치는 역시 어느 정도 익어야 맛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겉절이 정치보다 잘 숙성된 정치가 제맛이 아니겠는가. 정치가 '허업(虛業)'이란 JP의 회고는 바로 겉절이만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숙성된 김치라면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실업(實業)'일 터이다. 결과적으로 겉절이 아닌 숙성된 김치는 결국 기다릴 줄 아는 '진득한' 민심을 담그는 것이다.

더불어 백합이나 백조 같은 배타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흑장미나 까마귀 같은 이타적인 정치인이 그립다. 다시 말하면 붉은 장미는 원래 붉은색이 싫고, 흰 백조는 모든 색깔이 싫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

텅 빈 의석 전체 국회의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요지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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