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을 제정하는 기관은 국회다. 때문에 우리는 국회를 입법기관, 국회의원을 '로메이커(Law Maker·입법권자)'라 부른다. 그러나 법과 현실의 체감거리는 멀기만 하다. 법안을 발의했으나 낮잠을 자는가 하면 있으나마나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더팩트>는 법안 취지를 조명하고, 시행 현장을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 제약회사 사무직 30대 중반 원 모 씨는 두 번의 임신 실패와 남편의 만류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난임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인공수정에 도전하고 있는데 과배란유도주사를 맞는 날 아침이면 지난번 겪었던 고통이 떠올라 벌써 겁이 난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힘들게 시술을 받지만 성공률은 1회에 20% 남짓.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 의문이다. 병원마다 예약 잡기도 하늘의 별 따기인 데다 휴가도 한 두 번이지 자주 쓰려니 회사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내 아이를 갖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힘을 내 본다.
직장을 가진 난임 부부들은 오늘도 '우리 아이'를 기다리며 고군분투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이 지난 2월 20일 보건복지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난임 환자는 2007년 17만8000여 명에서 지난해 20만8000여 명으로, 7년 만에 약 16% 늘었다.
난임 부부들 상당수는 직장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를 난임의 원인으로 꼽는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고자 올해 4월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이른바 '난임 휴가법'으로, 근로자가 난임으로 장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해 휴가를 청구할 경우 연 90일 이내로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일정 기간 병원 시술이 필요하고 수정란의 착상을 위해 휴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난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은 '난임 휴가법'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와 마포구 일대 보건소, 여성클리닉을 찾아 '난임 시술'을 받고 있는 직장인 여성들을 만났다.
◆ "시술 한 번에 수차례 병원행…'휴가' 익명성 보장해야"
이날 오후 4시 30분께 A 여성 클리닉. 난임률이 높아졌다는 것은 비단 통계로만 알 수 있는 수치는 아니었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진료를 기다리던 난임 부부와 여성들이 줄을 이었다. '난임 휴가법'에 대해 이들은 대부분 찬성했다.
남편과 함께 온 30대 중반 김 모 씨는 "회사에서도 난임 부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10명 가운데 3명 정도. 그래서 육아 휴직을 2년 주는데 '불임 휴가'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 '육아 휴직' 가운데 하나긴 하지만 뜻밖에 '불임 휴가'라는 제도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 씨는 "기존 '육아 휴직'과 별개로 '난임 휴가법'이 생긴다면 좋을 것 같다"면서 "인공수정을 한 번 시술하는 데만 6~7번 병원을 오가야 한다. 업무에도 지장이 있고 매번 휴가를 쓰려니 회사 눈치도 많이 보인다. 그래서 최근 들어 휴직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다. 90일이면 마음 놓고 시술받기에 적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는 30대 유 모 씨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유 씨는 "'난임 휴가'는 필요한 제도다. 체외수정 시술(시험관아기)을 준비하고 있다. 배란유도주사부터 시작해 수면 마취를 하려면 금식해야 하고 남편도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면서 "미국에 있을 때는 휴가를 쓸 때 눈치를 안 보고 썼는데 한국은 다르다. 돈도 여러 번 시술 받으면 천문학적인 액수다. 전액 지원해주는 제도들이 외국에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지원금을 못 받는 사람들은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의 '육아휴직' 제도처럼 마음 놓고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30대 강 모 씨는 "'난임 휴가제'를 들어본 적 있다. 정말 필요한 법"이라면서 "IT 업계다 보니 직업 특성상 남자가 많다. 일단 '난임'이라고 하면 뒤에서 수군수군 대고 인식도 안 좋고 주변에 난임 환자인 동료가 없다보니 밝히기가 꺼려진다. 그래서 대놓고 난임 휴가를 쓰기란 곤란하다. 게다가 상사가 남자라면 더욱 그렇다. 한 달 단위로 대체 인력을 구할 수도 없고 눈치도 보인다"고 털어놨다.
강 씨는 "익명성이 보장된다면 가능할 것"이라면서 "아니면 '병가'라고 표기되면 부담 없이 쓸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 "치료비 어마어마한 금액…시술비 지원도 해줬으면"
이날 만난 난임 부부들은 '난임 휴가법'에 긍정적이지만 시술비 지원과 횟수 확대 등을 바라기도 했다. 앞서 말한 김 씨와 같은 맞벌이 부부의 경우 정부 지원금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아직 체외수정은 시도하지 않았고 인공수정을 하고 있다. 70만 원(1회) 상당인데 우리 부부는 맞벌이에 소득도 꽤 높은 편이라 국가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고충도 털어놨다. 난임 환자라고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전국 가구 월평균소득 150% 이하, 여성 연령이 만 44세 이하여야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난임 시술을 진행할 수 있다. 월평균소득 150%는 2인 가족 기준으로는 약 579만 4000원인 셈이다. 여기에 건강보험 납부금액이 일정 액수 이하(17만 5500원) 인 환자만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라면 100% 자비로 치료해야만 한다.
영등포 보건소 모자보건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가에서는 인공수정의 경우 50만 원, 체외수정은 19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공수정 시술 비용은 병원이나 주사를 몇 번 맞느냐에 따라 달라 지지만 보통 70만 원이며, 체외수정은 300~500만 원(1회) 정도다. 정부 지원금은 언뜻 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회사에 다니면서 난임 시술을 받기 힘들어 3개월 전 그만두었다는 30대 여성 신 모 씨는 "90일이 주어지면 모자랄 것 같다. 하지만 생기는 것이 어디냐"면서 "휴가법도 좋지만, 지원금을 높이거나 횟수를 늘리는 방향도 재검토했으면 좋겠다. 주부의 측면에서 보면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해 힘이 든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그는 "한 번 만에 성공한 사람들을 '로또 맞았다'고 한다. 한 번도 부담인데 많게는 10번도 시도해야 한다더라. 기둥뿌리 뽑힌다는 말이 딱 맞다"라고 말한 뒤 상담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난임 휴가법'을 발의한 박광온 의원은 18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여태껏 내놓은 '저출산 대책 시리즈'가 하루 빨리 통과돼 국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하겠다"면서"'난임휴가법'에 이어 난임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법안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팩트 | 마포구·영등포구=서민지 기자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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