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이는 한국 이야기다. 일본은 패전 70년이다. 중국은 승전이다. 미국은 2차대전 전승국으로 일본에 진주했으니 그들에게는 '종전'이다.
요즘 한일간 역사전쟁이 재연되고 있다. 위안부 논쟁이 그 중심에 있다. 정작 우리는 어정쩡하게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는데, 제3자인 미국은 '성 노예(Sexual Slaves)'라고 강하게 표현한다. 일본은 '인신매매'로 짐짓 자위한다.
이런 논쟁에 중국은 슬며시 비켜 서있다. 우리 못지 않게 수많은 인민들이 유린당하고, 능욕당하고, 학살당했지만 상대적으로 의연하다. 승전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복군(독립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아니 오히려 상하이 임시정부의 역할과 비중에 대해 스스로 깎아 내리면서 한반도의 '수복(탈환)'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광복'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에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 비극의 씨앗은 세월이 흘러 작금의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로 자라난다.
최근 미국 시카고대학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매우 도발적인 역사평가를 던졌다. 미국은 종전 이후 70년 동안 단 한번도 한국을 일본보다 중요하게 여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큰 형님'에 최선을 다해온 주류 친미보수에게는 청천벽력이거나 뚱딴지 같은 소리다. 아니, 진주만을 선제 공습한 일본을, 그것도 미군을 적지 않게 살상한 일본을, 원자폭탄으로 제압한 일본을 한국보다 긴밀한 동맹국이자 형제국으로 대접하다니.
그렇다. 미국이 얄타회담에서 소련에 대일본 참전을 요구하면서 한반도를 분할하는 안을 낸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연합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했는데, 함께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그대로 두고 한국을 분할 점령한 것이다. 어쩌면 당시 미소 양국은 한국을 일본의 주권이 미치는 영향권으로 보고, 일본의 힘을 제약한다는 차원에서 한반도에 38선을 그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이후 포츠담 회담에서 일본의 주권을 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 네 섬으로 제한한 이유가 설명된다. 원래 그게 일본의 주권영역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독일처럼 점령지를 반환하거나 독립시키고 자신이 두 동강이 나야 되는데, 애꿎은 한국이 마치 일본영역인 것처럼 두 동강이 난 것이다.
이후 미국은 단단한 태평양 담장치기에 나선다. 한국전쟁의 단초가 됐다는 미국의 '애치슨 라인'이 일본열도~오키나와~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로 이어진다. 이 라인이야말로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의 태평양 경략의 핵심이자, 중국에 대한 해상봉쇄 라인이 아닌가. 중국의 댜오위다오(일본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분쟁에 미국이 일본 손을 확실하게 들어준 것도 결국 이 봉쇄라인이 터지느냐 유지되느냐 전략적 고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미국에 한국의 전략적 위상은 대 중국 견제와 동맹국 일본의 직접적 방위부담 완화라는 측면에서 결정될 것이다. 물론 북한의 위협도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계륵'이 아닐까. 중동이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직접적인 필요가 있을 때는 전쟁을 불사하지만, 한반도는 그저 '관리대상'인 것이다. 일본~대만~필리핀~인도네이사의 태평양 방벽이 뚫리는 것에 비하면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고 박근혜 대통령도 "통일 대박"이라고 외치지만, 우리나라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흐름이 이상하다. 한국은 동북아에 밀집된 미중러일간의 '균형자'로 자부(?)해왔고, 이런 열강들의 신 각축시대에 오히려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서 '축복'이라고 자위(?)하지 않았나. 그런데 일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국은 외면하며, 중국은 눈을 흘기는 상황이 솔직한 형세 진단 아닐까.
어제(17일)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방한,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했다. 언론들은 북한 잠수함의 미사일 발사체에 대한 공동대처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존 케리는 6월 방미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떻게 들으면 조언이고, 어떻게 들으면 타이름이고, 또 달리 들으면 짜증 섞인 꾸지람을 퍼부었을 것이다.
문제는 '일본'인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가 설파했듯이 미국에 일본은 한국보다 최소한 3배는 더 중요하다. 한국의 2014년도 GDP는 1조4495억 달러로 세계 14위이다. 일본은 4조7698억 달러로 세계 3위이다. 경제규모에서 3배가 조금 넘는다. 국토의 면적도 37만7915 m²로 우리(남한 9만9720평m²)의 4배쯤이다. 인구도 1억2710만영으로 우리(5139만명)의 2.5배다.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그 중요도는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미국 처지에서 보니 한일관계가 냉랭한 것이다. 한미일 협조가 공고해야 새로 구축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에 맞설 수 있는데, 직접적으로 중국의 경제적 국제정치적 팽창을 제어할 수 있는데, 한국이 토라져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을 보니 독도와 군 위안부 문제다.
최근 만난 전직 고위 외교관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두고두고 외교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고 했다. 이미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일본의 고위층이 아닌 저급한 차원의 도발은 적절히 무시하면서 잘 관리해 왔다는 거다. 그런데 MB가 내정을 위해 외교를 끌어들이면서 한일외교가 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당장 일본은 고위층 차원의 독도 대응으로 치닫고, 교과서문제도 더욱 악화되지 않았나. "우리나라 대통령이 우리 땅인 독도에 왜 못 가느냐"는 식은 전형적으로 외교를 이용한 내부 정치라는 것이다.
게다가 위안부 문제가 생각보다 커졌다. 65년 한일수교 때 제대로 거론되거나 정리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처럼 인권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지금 이 문제가 거의 '국교 단절' 수준으로 치닫게 하는 국가적 쐐기가 된 형국이다. 물론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만, 과연 이 문제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교착상태에 빠뜨릴 만큼 시급하고 중요한가 좀더 차분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많은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하지만, 공개적으로는 입을 닫는다. 한일간 민족감정은 미묘하면서도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점을 케리는 한국측에 압박할 것이다. 과거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서로에게, 물론 미국에게도 유익하다고. 마침 6월에는 오바마와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우리 국민은 이미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의 아베 총리를 얼마나 극진하게 대우했는지 봤다. 상하 양원 앞에서 미국에 사죄하면서도 위안부 문제는커녕 태평양 전쟁에 고통 받고 신음한 동아시아 국가와 민족에게는 안타깝다는 정도로 구렁이 담 넘어갔다.
이 때 우리 정부는 아베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전된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박 대통령과 비교될 텐데, 지금 외교당국은 최소한 아베 정도는 대접을 받아야 자신들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하지 않을까. 하지만 애당초 가당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아베 입장에서는 힘과 실력이 3분의1도 안 되는 한국이 자꾸 "잘못했다. 용서해달라"고 하라고 소리지르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아무리 윽박질러봐야 마이동풍이자 쇠귀에 경읽기다. 그런 한국을 미국은 마치 허약한 아이가 다부진 아이에게 떼쓰며 보채는 것으로 보지 않겠는가. 그러니 미 국무부 정무차관 웬디 셔먼이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직설적으로 불편함을 토로한 것이다. 이후 외교 경로로는 해석상의 문제다, 와전됐다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미국의 현재의 한국을 바라보는 솔직한 속내인 것이다.
최근 들어서야 '투 트랙 외교'란 말이 나온다. 위안부 문제 따로, 한일간 당면 현안은 따로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로 한일간 당면 문제를 언제까지 '마비'시킬 것인가 하는 고뇌의 산물이다. 물론 우리의 외교당국은 일본이 적절히 사과해주면 그걸 기점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일본이 예상한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오산이다. 일본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리가 전향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누군가는 돌팔매를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 엄중한 시기에 상대방의 사과 몇 마디에 매달리는 외교는 외려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국가간이든, 기업간이든, 개인간이든 관계에는 '신뢰'가 필요하다. 하지만 때로 경쟁할 때는 '전략'도 필요하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최고의 전략을 꼽으라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싸우면 나도 다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론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자, 한미일 외교전쟁에서 이미 우리는 심한 내상을 입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미국과 일본을 몰랐고, 우리의 처지와 실력도 몰랐거나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고로 '짖는 개는 무섭지 않다'고 했다. 삼십육계의 제1계가 '만천과해(瞞天過海)'이다.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는 뜻이다.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법이라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드러난 행위에 자신의 의도를 감추는 것인 데, 웃음 뒤에 칼을 숨긴다는 제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도 그 방법론일 것이다.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는 은근히 웃으면서 결정적일 때 옆구리를 찌르는 것 말이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멋있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부 정치엔 쓸모가 있겠지만, 냉엄한 국제외교에서는 초보 아마추어가 아니겠는가.
다음 제2계는 '위위구조(圍魏救趙)'다. 위(魏)를 포위해 조(趙)를 구한다는 뜻으로 적의 예봉을 피해 급소를 찌르는 우회전술이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빈과 방연의 일합인데, 방연이 정예병을 이끌고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자 손빈은 이를 우회해 위나라 수도 대량을 공격한다. 이에 방연이 한단의 포위를 풀고 대량으로 황급히 돌아오다 손빈의 매복에 걸려 전멸한다.
이는 아베와 극우파를 정면으로 맞서는 것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무엇을 찾아 우회 공격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아베 총리는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여서 직접 사과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러면 일왕(혹은 일본 우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사)이 직접 사과하라"는 식의 우회전술을 펴는 식이다. 그러면 아베가 의리와 체면이 있다면 먼저 사과하겠다고 나서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말이다. 최소한 그런 것이 외교전략이 아니겠는가.
가장 절묘한 방법이 제3계 '차도살인(借刀殺人)'일 것이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상대를 제압한다는 뜻이다. 굳이 일본만을 향해 위안부 문제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그런 행위가 있었던 중국, 대만, 필리핀, 싱가포르 등지의 피해 유족들과의 '평화적 힐링 센터'를 추진하는 방식이 훨씬 강력하겠다. 우리는 오히려 대범한 자세를 취하면서 인근 국가들의 피해자와 그 가족을 돌본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일본을 압박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 정부는, 외교당국은 오히려 '균형자'나 '주도국'이란 자만과 착각에 빠져 스스로 떠벌리면서 상대를 자극하고 경계심만 잔뜩 키우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지피지기다. 우리의 국력이나 실력으로 무엇을 주도하며 어떻게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나. 이런 엄중한 현실을 자각해야 21세기의 격랑을 국민차원에서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나.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국민 가슴에 잘못된 자만심만 풍선처럼 부풀려 놓고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외교는 불신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불신할수록 외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으로서는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외교가 필요한 상황이다. 노자도 아닌데 '무위지치(無爲之治)' 하겠다는 것은 아니잖은가.
어쩌면 한미일 외교에서는 '이대도강(李代桃僵)'의 슬기가 필요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는 큰 복숭아를 위해 자두가 희생한다는 뜻으로, 악부시집(樂府詩集)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물가 복숭아 나무, 그 옆에 자두나무/벌레가 복숭아 뿌리를 갉자 자두가 대신 시들었네/나무도 서로 그런데, 형제는 어찌 잊을까'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를 대신 희생시켜도 '형제'인데 어찌 그 은공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한 상호 신뢰가 있으면 좀더 주도적으로 외교적 균형을 찾아갈 수가 있지 않을까.
삼국지에서 방통이 조조에게 썼던 제35계인 '연환계(連環計)'도 있다. 상대가 내부적으로 서로 견제하며 속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 정가도 역시 권력투쟁은 있을 것 아니겠나. 지식인과 정치인들을 묶어서 서로가 부담이 되도록, 그래서 편향되지 않도록 심모원려(深謀遠慮) 외교가 필요해 보인다.
본디 국가간 외교의 기본은 제23계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이 점에서 보면 우리로서는 바로 옆 중국과 일본이 가장 위험하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먼' 중국과는 선린을 유지하면서 '가까운' 우리는 강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 미국과 선린 유지가 필요할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지피지기(知彼知己)다. 미국은 세계 1위다. 중국은 2위이고, 일본은 3위다. 경제력이자 실질적 힘이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외교적 역량이다. 실질적으로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굴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면서, 무엇보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자극하지 않고 적당히 비위도 맞춰주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번영과 안정과 나아가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그렇다면 일시적 기분이 아니라 잘 갈무리된 승리의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입 벌리고 누워있는 게 우리 외교안보다. 북한이 저절로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게 그렇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거나 독도 깜짝 방문 이벤트, 사과할 생각 없는데 끈질긴 사과요구. 외교(外交)가 아니라 외치(外治)의 모양새다. 무능 무책임한 외교가 참으로 걱정이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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