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 재발 방지 vs 과잉 처분
14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는 성폭력 범죄자에게 성충동 약물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의 정당성과 약물의 효과 및 부작용, 기본권을 침해하는지를 두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는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과 제8조 제1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렸다.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은 이른바 '나영이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사면서 국회를 통과하게 된 일명 '화학적 거세법'이다. 이는 성폭력 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이 인정되는 성도착증 범죄자에게 약물치료를 선고하게 돼 있다. '화학적 거세법'은 법원이 범죄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없이 법원의 결정에 따라 최대 15년 동안 집행된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성도착증과 성폭력범죄의 관계, 성충동 약물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의 효과 및 부작용, 성충동 약물치료의 근거 규정인 심판대상조항이 대상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처분은 아닌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피고인 측 대리인 장우승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 치료명령이 집행된 사례가 없어 재범률을 낮출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라면서 "외국의 사례와 통계만 제시하고 있다. 학문적인 연구나 사례가 없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장 변호사는 "자발적으로 성충동 약물치료에 응하는 사람도 심리적 저항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심리적인 저항 자체가 약물투여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고 결과적으로 효과 면에서 떨어진다고 본다. 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오히려 성충동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결과도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장 변호사는 "부부간의 동거 의무 배우자가 있는 피치료자라면 약물치료로 인해 성호르몬에 이상이 생겨서 혼인의 본질적인 의무인 '부부간의 동거 문제를 침해하는 것 아닌가"라며 되묻기도 했다.
지난 2012년 법 시행 이후 법원에서 치료명령이 확정된 피고인은 모두 10명이다. 그러나 성충동 약물치료는 피고인들이 선고받은 징역형이 종료되기 2개월 전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실제로 법의 적용을 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장 변호사는 이 부분을 꼬집어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기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날 재판부는 선고 당시 치료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됐지만, 장기간 수감생활을 하고 난 이후에도 치료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유지되는지에 대해 재차 물었다.
송동호 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장도 "비자발적인 화학적 거세는 효과가 없다"면서 "성도착증 병세 자체보다 여러 정신적 문제들과 더 관련이 깊고 자발적으로 치료에 대한 동기가 있어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항호르몬 요법은 치료 기간 동안 성범죄와 관련된 행동들이 감소하긴 했다. 하지만 이는 최소 3년 이상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데 장기간의 치료는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성이 있다"면서 "특히 약물투여를 중단하면 테스토스테론 혈중 농도가 다시 상승해 정상화되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 측은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이들은 성폭력 범죄의 현실이 매우 심각하다고 강조하며 '화학적 거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 대리인으로 나선 서규영 변호사는 "성도착증 환자란 성적 이상이 있는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면서 "성폭력은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73.8건이 발생하고 있고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는 하루 평균 2.9건이다. 기존의 형벌이나 예방만으로는 성폭력 문제의 근절은 힘들어서 약물치료 같은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 변호사는 "성도착증 환자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높고 이 때문에 성적충동과 환상을 보게 된다. 약물치료의 목적은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낮추는 거다"라면서 "예전에는 에스트로젠이라는 여성 호르몬을 직접 투입했지만, 지금은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거의 0에 가깝게 내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재범의 확률을 낮추는 기본 기재다"라고 주장했다.
약물치료의 효과 지속기간은 한 달이고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원상회복을 한다는 서 변호사의 말에 재판부는 기간이 지나면 계속해서 위험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물론 위험성을 가진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인지행동치료)를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면서 "인지행동치료는 약물치료 기간이 끝났을 때 스스로 성충동 환상을 낮추는 것에 목표를 둔다. 인지행동치료가 약물치료 없이도 비교적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답했다.
여기에 재판부는 다시 한번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지만, 심리치료로 욕구가 억제될 수 있다면 약물치료는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되물었고 서 변호사 측은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는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술을 계속 마시는 상황에서 심리치료를 한다면 효과가 없지 않겠느냐. 충동이라는 것이 보통사람과 같이 억제가 안 되는 특정한 사람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즉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심리치료를 해야지 심리치료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전지법은 지난 2013년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임 모 씨에 대한 재판에서 화학적 거세법이 헌법에서 보장한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자유와 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공개변론으로 의견을 수렴해 이르면 올해 안에 위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더팩트 | 서민지 기자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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