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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투표소 옆에 흡연실? 담배의 권력학과 저항성

  • 정치 | 2015-01-19 08:27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미스터리 사건의 단서를 두고 “일단 담배를 피워야지, 세 대만 피우면서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라고 뇌까린다. /더팩트DB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미스터리 사건의 단서를 두고 “일단 담배를 피워야지, 세 대만 피우면서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라고 뇌까린다. /더팩트DB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담배는 백해무익한 요초(妖草)라지만, 찬사도 많다. 대만의 수필가 린위탕은 “책상에 담뱃재가 떨어져 있고, 책장에 반쯤 담긴 코냑이 있다면 더불어 세상사를 이야기할 만하다”고 했다. 영국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는 ‘시가렛은 완벽한 쾌락의 완벽한 형태’라고 했으며,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미스터리 사건의 단서를 두고 “일단 담배를 피워야지, 세 대만 피우면서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라고 뇌까린다.

찰스 킹슬리는 담배를 “외로운 사람의 벗,총각의 친구,배고픈 사람의 음식,슬픈 사람의 위로,잠 못 이루는 사람의 잠,추운 사람을 위한 불”이라 했다.

연암 박지원도 담배를 즐겼다. 열하일기의 ‘태학유관록’에는 중국인 왕 씨와 담배를 두고 벌어지는 가벼운 입씨름이 담겨있다. 연암은 “토종 담배와 중국 담배가 맛이 비슷하다. 일본에서 건너와 만주로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화두를 연다. 이에 왕 씨는 “이는 서양에서 왔다. 아메리카 임금이 여러 가지 풀을 맛보고는 담배로 백성의 입 병을 낫게 했다”고 설명한다.

이 일화에는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래된 과정이다. 조선조 광해군 때인 1616년 일본으로부터 ‘남령초(南靈草)’가 건너온다. 남쪽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뜻이다. 담박괴(談博怪)로도 불렸는데, 이는 ‘토바코(tobacco)’의 발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자를 뜻풀이하면 ‘대화를 넓게 하는 괴이한 풀’쯤이지만, ‘담(談)’은 원래 가래를 뜻하는 ‘담(痰)’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조선말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남만(南蠻-중국 남쪽의 ‘오랑캐’라는 뜻으로 지금의 베트남 북부)의 담파고(談婆姑)라는 여인이 담(痰)을 앓다가 남령초를 먹고 낫자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여인의 이름 담파고(談婆姑)를 담파고(痰婆姑)로 하면 말 그대로 ‘담을 앓는 늙은 시어머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담배가 가래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조선말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가래가 목에 걸려 떨어지지 않을 때, 소화가 되지 않아 눕기에 불편할 때 효험이 있다’고 쓰고 있다. 이익이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내세운 대표적 실학자임을 감안하면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닐 터이다. 무엇보다 소화가 되지 않을 때의 효과인데, 여기서 우리는 ‘식후불연초 노상객사’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애연가들은 식사 후 꼭 담배를 피우는데,이는 니코틴이 소화에 뭔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특히 화장실에 갈 때 담배를 피워 무는데, 이 또한 대장의 활동과 관련한 효능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의과대학은 내과학에서 ‘적량의 니코틴은 장(腸)의 활동을 활성화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니코틴의 효능을 서양처럼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대신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의 활동이 느리면 변비가, 빠르면 설사가 일어난다.해우소(解憂所)에서의 근심 중 하나가 변비일 터인데,적량의 니코틴은 장의 활동을 활성화한다지 않는가.아마도 애연가 여성은 상대적으로 변비가 적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처음 담배가 유럽에 전해졌을 때 일부 기독교인들은 ‘사탄의 잎’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 강력한 행복감, 안정감, 각성효과를 어떻게 끊는다는 말인가./더팩트 DB
처음 담배가 유럽에 전해졌을 때 일부 기독교인들은 ‘사탄의 잎’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 강력한 행복감, 안정감, 각성효과를 어떻게 끊는다는 말인가./더팩트 DB

둘째, 담배의 문명세계 전래 과정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바하마제도에 도착했을 때, 그는 중국으로 가는 길목의 서인도쯤으로 알았다. 지명을 ‘산 살바도르(구원자)’로 붙였다. 이곳 원주민들은 콜럼버스 일행에게 구슬과 열매, 그리고 말린 잎을 선물로 준다. 돌아오는 길에 콜럼버스는 이 말린 잎을 물고기 밥으로 던져준다. 이것이 담배였다는 것은 조금 더 시일이 흘러 알려진다. 당시 마야문명에서 담배연기는 제물을 신에게 전달하는 수단이었고, 흡연은 신과 의사소통 하는 방법이었다. 담배는 신과 인간을 연계하는 매개였던 것이다.

처음 담배가 유럽에 전해졌을 때 일부 기독교인들은 ‘사탄의 잎’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 강력한 행복감, 안정감, 각성효과를 어떻게 끊는다는 말인가. 담배를 한 모금 빨면 단 7초 만에 뇌를 자극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을 생성시킨다. 20~30분이면 도파민 효과가 사라지는데, 또다시 담배를 피워 물어야 하는 ‘금단의 간격’인 셈이다.

이 의존성 때문에 ‘담배는 백인이 독한 술을 준 데 대한 인디언의 복수’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쿠바산 시가’는 현대의 뉴욕에서 성공과 특권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 담배에 권력이 스며든다. “호랑이 담배 먹던(피우던) 시절…”은 보통 ‘아주 먼 옛날’을 뜻한다. 그런데 옛날의 상징으로 웬 호랑이에 담배인가. 여기에 유력한 가설이 있는데,그 중 하나가 권력화된 흡연으로부터 소외된 민중의 “아, 옛날이여~”하는 안타까움의 발로라는 추론이다.

인조실록은 담배가 처음 전래된 광해군시절(1616~1617년)에서 불과 5~6년 만에 “피우지 않는 자가 없어서 손님을 대할 때 차와 술을 대신해 연다(煙茶)로도 불렸다”고 전한다. 이 무렵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피웠으며, 따로 예법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담배의 평등화’ 시대였다.

하지만 조선의 성리학이 어땠나. 모든 것을 시시콜콜 예법으로 정하지 않았나. 유득공은 ‘경도잡지’에서 “상민은 양반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관리가 행차하는데 서민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잡아다 벌을 준다고도 했다. 담배는 이제 양반의 특권이 된 것이다. 긴 담뱃대 장죽은 권위의 상징이고, 갖가지 담배용품이 사치품으로 등장했다. 박지원도 ‘양반전’에서 “담배를 피울 때 볼에 우물이 패이지 않게 하고…”라며 나름대로 흡연의 예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피우다 어른을 만나면 급히 끄거나 손바닥 안으로 숨긴다. ”어린 녀석이 담배라니”나 “얻다 대고 맞담배질이야”라는 호령도 이 연장선이다. 이렇게 특권화,권력화된 담배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안타까움이 “옛날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호랑이까지도 담배를 피우는 자유가 있었다”는 한탄으로 전화됐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리한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월급쟁이 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연말정산 관련 법을 손질하고, 투표소 인근에 흡연실을 만들어둘지도 모르겠다./국회= 문병희 기자, 임영무 기자
어쩌면 영리한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월급쟁이 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연말정산 관련 법을 손질하고, 투표소 인근에 흡연실을 만들어둘지도 모르겠다./국회= 문병희 기자, 임영무 기자

이런 상실감은 세월이 흘러 ‘궐련’의 시대에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해방공간과 6·25를 거치면서 미군을 통해 양담배가 뿌려진 것이다. 이에 정부도 조세수익을 올리려 전매청을 세우면서 합법적 니코틴 중독자를 양산하는데 앞장선다. 가격정책에 따라 돈이 없는 서민은 잎담배를 신문지나 달력종이에 말아 피우거나 개비 담배를 샀고, 부자일수록 비싸거나 양담배를 구입해 피웠다. 조선시대에는 신분 권력에 따라,현대에는 자본 권력에 따라 기호(嗜好)도 결정돼 갔던 것이다.

우리의 흡연문화가 권력화에 질식했다면, 서양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이 됐다.

영화 에덴의 동쪽,자이언트로 유명한 제임스 딘의 입술에 담배가 물려있지 않다면 어떨까. 기성세대에 대해 저항하는 젊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매개체가 바로 담배가 아닌가. 체 게바라는 어떤가. 오토바이로 남미를 질주하는데, 텁수룩한 얼굴에 질겅거리는 담배야말로 체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아니던가. 조금 비약하자면, 영화 ‘황야의 무법자’ ’더티 해리’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질겅거리는 담배를 통해 반체제적 캐릭터를 완성했다고 본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담배는 프로이트가 말한 ‘입술 에로티시즘’과 칼 융의 ‘남성성의 상징’이 결합된 이미지가 엿보인다. 여기에 강렬한 저항성까지. 록큰롤의 황제인데, 록(Rock)의 정신이 바로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이 아닌가.

담배는 이렇듯 권력과 저항이 교차하는 ‘풀’이다. 미국이 영국과 벌인 독립전쟁도 알고 보면 ‘담배전쟁’이었다. 당시 식민지 미국에서 담배는 금과 맞먹는 통화수단이고, 따라서 담배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대영제국과 식민지 미국의 관계 정립의 분기점이었다. 조지 워싱턴과 토마스 제퍼슨이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현대까지도 미국과 영국간 담배전쟁은 계속돼 왔는데,최근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담배회사가 아니라 시민단체가 전쟁 상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법적 소송전쟁에서 연전연패 중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약간 다른 형태의 ‘담배전쟁’이 진행 중이다. 담배회사와 민간단체간 소송전쟁은 소강상태인데, 정부가 흡연자를 상태로 ‘선전포고’한 형국이다. 흡연자들은 비싼 세금을 물게 됐는데, 그나마 피울 곳도 마땅찮다. 담배는 ‘공공의 애물단지나 천덕꾸러기’쯤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담배 청정국’이 될 것인가. 정부가 조세수익을 노렸는지, 국민건강을 도모했는지 헷갈리지만, 여하튼 분명한 것은 서민의 담배 피우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흡연이 또다시 자본이란 권력에 종속된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묘한 정치적 흐름이 감지된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환급의 ‘핵융합 반응’이다. 흡연자 서민들에게 담뱃값 인상은 세금폭탄이고,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에게 줄어들거나 심지어 토해내야 할 연말정산 환급 역시 뜻밖의 세금폭탄이다.

이를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가렴주구(苛斂誅求)’쯤인데, 과연 내년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도도한 저항으로 나타날지, 순응하거나 망각으로 스러질지 궁금하다. 어쩌면 영리한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월급쟁이 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연말정산 관련 법을 손질하고, 투표소 인근에 흡연실을 만들어둘지도 모르겠다.

정치사회팀 tf.pstea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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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리한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월급쟁이 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연말정산 관련 법을 손질하고, 투표소 인근에 흡연실을 만들어둘지도 모르겠다./국회= 문병희 기자,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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