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에도 홍대·이대·강남·가로수길 '텅텅'
서울 폐업률 12.4%, 전국 시·도 중 가장 높아
자영업자 수 '4개월 연속 감소'
[더팩트ㅣ배정한 기자]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왔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소상공인들은 따뜻한 봄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새다.
길고 긴 코로나19 사태도 이제는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을 맞이만 소상공인들은 팬데믹(Pandrmic·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태)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팬데믹의 끝자락에 찾아온 고금리·고물가의 영향으로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맥없이 무너지는 상권들이 속출하고 있다.
홍대 입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오히려 코로나 터졌을 때가 더 좋았다. 그때는 지원금도 나오고 대출도 해주고 많이 도와줬으니 어떻게든 버텼다"며 "지금은 장사도 안되는데 물가는 오르고 지원은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때 받은 대출금을 이제 갚으라고 하니 그때 보다 더 힘들다"고 한탄을 했다.
이런 자영업자의 하소연을 입증하듯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서 카드사와 저축은행 사업자 대출 연체율이 지난해 말에 이어 올해도 급등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사 연체율은 1.63%로 전년 말(1.21%)보다 0.42%p 상승해 2014년(1.69%)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축은행의 지난해 말 연체율은 6.55%로, 전년대비 3.14%p 올랐다. 영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10%를 넘어서는 곳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일 찾은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인근. 주변에는 공실로 비어 있는 상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팬데믹 시절 견디지 못하고 폐업을 한 업체들이 떠난 뒤 아직 새로운 임차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고, 최근에 폐업한 업체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팬데믹 전에는 이른바 '패션피플'들로 북적이던 핫플레이스였던 이곳은 공실을 찾아볼 수 없는 알짜배기 상권들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3층 건물이 통째로 비어있거나, 한 건물 건너 두 건물이 통으로 비어있는 상황이다.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영업 중인 한 부동산 관계자는 "팬데믹 때도 안 좋았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 때 임차인들이 못 견디고 많이 빠졌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좋아지겠지 기대를 하고 (임차인들이) 좀 들어오는듯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경기가 좋아지면 계속 진입을 했을 텐데, 더 안 좋아지고 있어 공실 상가에 새 임차인들이 들어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씁쓸해했다.
이어 그는 "임대료를 많이 내려 코로나가 끝나면 조금씩 올릴 생각이었지만 못 올리고 있다"며 "임대료를 더 내려서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려고 해도 그것조차 버티기 힘든 금액이라고 판단하는 임차인이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동인구가 많아져 경기가 좋아졌을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상인들은 너무 힘들어 한다"며 "기존에 있던 임차인들은 버티고 버티다가 안 되니까 나가고, 들어오는 것도 좀 망설이는 상황이라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의 상가 공실률은 중대형 상가(13.5%→13.7%), 소규모 상가(7.3%→7.6%), 집합상가(9.9%→10.1%) 모두 지난해 4분기보다 높아졌다. 한국부동산원은 자영업자 수가 4개월 연속으로 감소한 것을 공실률 상승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홍대입구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큰 도로와 지하철역이 있는 메인 상권은 활기를 띠고 있다. 이에 비해 이대와 신촌은 메인 상권마저도 공실이 넘쳐흐르고 있다.
이화여대 앞에서 영업 중인 한 부동산 관계자는 "보즘금을 엄청 내려도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 이대 주변은 지금 대책없는 수준"이라고 현재의 상황을 분석했다. 그는 "코로나 전부터도 무너지고 있던 상권인데 코로나 때문에 박살이 나버렸다"며 "코로나 끝나고 나서 점포가 좀 들어오긴 했는데 장사가 안돼서 버티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폐업을 하고 싶어도 계약 기간을 채워야 하니깐 못하고 있는 점포들이 많다"며 "장사가 안되는 게 뻔히 보이는데 버티고 있는 거 보면 '결국 월세를 까먹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걱정을 내비쳤다.
'팬데믹 당시 임대료가 많이 내려가지 않았나'라는 질문에는 "임대료는 폭삭 내려앉았는데 지금 장사꾼들은 임대료 낮은 게 문제가 아니라 장사가 돼야 월세를 내고 먹고 살 거 아닌가.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학생들이 많기는 하지만 여기는 원래 관광객 상권이 메인이었다. 코로나 때 의류와 화장품 상권이 무너진 이후 관광객이 오지도 않고 회복도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가 일반음식점, 휴게음식점의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전국 외식업 폐업률이 10.0%로 2005년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지역 폐업률은 12.4%로 전국 시·도 중 가장 높았다. 폐업률이 12%대로 올라선 것은 2005년(12.7%) 이후 처음이다.
이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대표 상권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로수길이 대표적이다. 럭셔리의 상징 청담동 명품거리에도 공실이 나오고 있다. 강남역도 이런 상황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서울 상권의 중심인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돌아오며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팬데믹 시절 폐업하고 공실로 남아있던 몇몇 점포들은 아직 공실 상태로 남아있었다.
명동뿐만 아니라 이태원과 성수, 한남 등 상권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의 유명 장소로 떠오르면서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자연스럽게 유입된 모습이다.
메인 거리들은 다시 활기를 찾았지만 팬데믹 시절 발길이 끊겼던 골목들은 아직 정상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황학동 주방거리의 한 상인은 코로나 사태가 끝났는데도 손님이 없어 힘들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팬데믹 당시) 망할 거 다 망해서 이제 (중고) 물건이 들어오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다"며 "20년 일하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주변을 둘러봐라, 좋은 자리에서 장사하고 있는데 지금 코로나 사태 때만큼 손님이 없지 않나. 폐업을 그렇게 많이 한다는데 (물건을) 사 가는 사람이 없다"며 "망하는 만큼 새로 생겨야 장사가 되는데 손에 들 수 있는 만큼 소량 구매하는 손님들만 가끔씩 오는 것 말고는 그냥 가게 앞에 앉아만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19일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5월 1일부터 코로나19 위기단계를 가장 낮은 '관심'으로 하향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2020년 1월 이후 4년 4개월 만에 완전한 일상 회복에 들어가는 것으로, 사실상 코로나19의 엔데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엔데믹이 오면 경제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전 국민적인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은 팬데믹 시절보다 더 힘든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질병으로 인한 혼란은 정리가 된 것이지만 경제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엔데믹 이후 치솟은 물가와 경제 불황을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국민의 몫으로 남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질병과의 전쟁은 끝이 났지만 경제는 아직 팬데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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