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스타와 공존하는 '찍덕'...해외에서도 원정 '관광 상품'
[더팩트ㅣ이효균 기자]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집 안에 틀어박혀 좋아하는 것만 들여다보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지금은 어떤 분야에 몰두해 열정을 보이는 사람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최근 '덕후'의 상징, '아이돌 덕질'을 하는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아이돌 덕질'을 이해하려면 먼저 ‘굿즈(Goods)’를 알아야 한다. ‘굿즈’는 팬덤계 전반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아이돌 덕질의 세계에서는 아이돌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주제로 제작된 상품을 뜻한다. 사진첩과 DVD, 달력, 지갑, 스티커, 응원봉, 우비 등 아이돌과 관련된 모든것을 망라한다.
'덕질러'들을 구분하는 용어도 생겨났는데 특히 아이돌을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는 사람을 '찍덕(사진 찍는 덕후)' 또는 '홈마(홈마스터·연예인의 고퀄리티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라고 부른다. 이들은 방송국 가요프로그램, 시상식, 연예프로그램 등 자신이 사랑하는 연예인이 가는 곳으라면 언제 어디든지 나타난다.
◆ 애정 가득한 한 컷의 사진... 사진 장비만 최소 500만원
KBS '뮤직뱅크' 리허설이 열린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100여 명에 달하는 '찍덕'들이 고가의 카메라를 들고 방송국을 찾았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 이들은 문이 열리자 재빠르게 좋은 자리를 선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등장하자 연신 셔터를 눌러 댄다.
"트와이스 온다!" "아... 초점이 나갔어" "이 사진은 어때?"
이들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옆 사람과 비교해가며 연예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지나가면 "힘내!"라는 말과 함께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한다.
덕후들은 원하는 굿즈가 없을 때 직접 제작에 나서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스타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덕분에 한국 팬들의 촬영 실력은 수준급으로 정평이 났다. '찍덕'은 애정 가득한 한 컷의 사진을 위해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고가의 장비 구매도 서슴지 않는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급 DSLR 보디와 망원렌즈, 여분의 렌즈 1~2개, 삼각대, 사다리 등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장비만 해도 최소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에 달한다. 프로사진가 못지 않은 장비다.
◆ 늘어나는 해외팬...'최고 인기 K-POP'
최근 여의도 KBS 본관을 찾는 해외팬도 늘어났다. 국내 여행사들은 '뮤직뱅크' 리허설에 연예인을 보기 위한 상품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9일 한 한국인 여성 가이드는 20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과 이른 시간부터 이곳을 찾았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동한 이들은 K-POP 가수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연신 DSLR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DSLR 카메라가 없는 팬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영상을 촬영했다.
이날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 하자마자 캐리어를 들고 한 걸음에 내달려온 해외팬도 있었고 동남아, 유럽, 남미 등 여러 국가에서 온 여성팬들로 가득했다.
◆ 팬심 더해진 고퀄리티 사진... '공식 홍보 사진'으로 채택되기도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하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지난달 14일 오후 7시에 찾은 이곳은 이미 수 십여개의 사다리로 자리가 가득차 있었다. 1주일 내내 보이는 라디오가 진행되기 때문에 팬들은 이곳에 사다리를 고정시켜 둔다. 덕분에 이들에게 장비를 빌려주는 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한 사진영상장비 대여업체 관계자는 "요즘 연예인들을 찍기 위해 사진 장비를 대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외국인들도 이곳을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사진관련 장비를 렌탈할 경우 보급형 DSLR 카메라 보디는 5만~7만원 (24시간 기준), 망원렌즈의 경우 3만~5만원 (24시간 기준)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찍어야 내 스타가 가장 아름답게 나오는지를 아는 팬심이 더해져 고퀄리티의 사진을 완성시킨다. 그런 내공을 인정받아 연예매체 사진기자로 채용되는 찍덕이 나오는가하면, 내한했던 배우 톰 히들스턴의 경우 공항에서 팬이 찍은 사진을 공식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연락하기도 했다.
◆ 생방송 전날 밤 찾아가보니... 줄줄이 '사다리 대기'
지난달 15일 밤 'KBS 뮤직뱅크' 리허설을 찍기 위해 대기하는 '찍덕'을 찾았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간, 이들은 이미 여러군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새벽에 와서 줄을 서면 순번이 늦어지기 때문에 보통 전날 밤에 먼저 자리를 잡는다. 사다리나 접이식 의자에 테이프로 마킹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종이에 자신의 자리임을 표기해 두기도 한다.
이들은 2~3시간 간격으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러 오기도 했다.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김재덕 씨(21)는 "이렇게 사진을 찍은지 1년이 다 되어간다. 하루 전에 와서 자리 잡는 게 피곤하지만 다음날 좋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또 "어떤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앵글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퀄리티의 결과물을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고 말했다.
◆ 콘텐츠 살리기도 하지만... 판권없이 화보집 판매, 기자 명함 도용 문제 끊이지 않아
이렇듯 팬들은 계산적인 행동보다는 팬덤 특유의 문화에 의해 합리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좀 과장해서 말하면 죽어가던 콘텐츠를 되살리거나 '듣보잡' 브랜드를 뜨게 만드는 '미다스의 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찍덕'들은 스타들의 사진을 찍어 화보집을 만들고 그것들을 국내외 불특정다수의 팬들에게 유료로 판매해 연예인 소속사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판권 등 법적인 문제를 동시에 발생시키기도 하는데 이들의 이런 모습이 순수한 팬심으로 접근하는 팬들에게는 못마땅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또 연예인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기자들의 명함을 도용해 발각된 적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한 매체의 사진기자 김 모씨는 "영화 제작발표회장에 취재를 갔는데 한 남성이 제 명함을 주고 들어오다 홍보팀에 제지를 당했다"며 황당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일이 연예 취재현장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라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라도 법적 대응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제 팬덤 문화는 소비자가 주도하고 참여하는 문화 주체적 현상이 됐다. 몇몇 불미스러운 일들만 개선이 된다면 앞으로 팬덤 공동체 활동은 스타와 팬이 함께 하며 스타 이미지 상승과 서로에게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글로벌 K-POP의 신문화 현상을 설명했다.
스타에게는 힘이 되고 팬에게는 안식처가 되는 '덕질'. 이제 그들은 새로운 K-POP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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