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 세종대왕동상 등 전국 곳곳 낙서로 신음
[더팩트ㅣ이덕인 기자] '글자나 그림 따위를 장난으로 아무 데나 함부로 씀'이란 뜻을 지닌 '낙서'는 꼭 부정적 의미만 갖고 있지는 않다. '낙서'란 단어를 곱씹어 보면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미소가 지어질 때가 있다.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멍' 때리고 싶을 때쯤 연필로 노트 구석구석 낙서를 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없던 상상력도 생기곤 했다.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도 약간은 있는 '낙서'가 문화재나 동상 등 보존해야 할 것들에 새겨져 있다면 어떨까.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취재진은 무분별한 낙서의 현주소를 취재하며 생각보다 많은 양의 '불편한 낙서'를 만났다.
서울은 물론 전국에 퍼져있는 '평화의 소녀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낙서 등 훼손으로 이슈 된 대부분 소녀상은 재정비가 됐지만, 평택에 있는 소녀상의 얼굴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유동인구가 많은 문화센터 한편에 자리한 소녀상의 이마와 볼에는 송곳류로 파인 낙서로 얼룩졌다.
'낙서'는 대한민국 곳곳에 쓰여 있었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낙서로 가득했다. 충분히 지울 수 있는 낙서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방치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이들에게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계승시키고자 건립한 동상이 후손들의 손길에 처참히 긁힌 것이다.
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은 관광객들의 크고 작은 낙서로 아름다운 운치를 망치고 있다. 남녀노소 발길이 잦은 한국민속촌 서낭당 주변은 수많은 낙서로 도배돼 있고, 독일이 기증한 종로구 베를린 장벽과 남산공원 일대에도 그라피티 등 낙서들이 넘쳐났다.
국외로 눈을 돌려보니 관광지 명소로 알려진 하와이도 낙서가 넘쳤다.
취재진이 찾은 오하우섬 열대우림 정글 '마노아 트레일'은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장관을 이뤘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대나무와 선인장 등 나무 곳곳에는 관광객들이 새긴 낙서로 훼손돼 있었다. 누군가가 나무에 남긴 낙서 하나가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해 결국 숲을 점점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면 그 고통은 어떨까. 관광지를 빛내는 나무들도 신경세포가 있기에 낙서를 당하게 되면 큰 고통을 느낀다. 마노아트레일에서 조깅을 하던 주민들은 상처로 가득한 나무들을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곤 했다.
여행은 얻으려 가는 것이 아니라 비우려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곧 자연과 문화유산에 이름을 남기고 오는 것보다는 그곳을 충분히 느끼고 흔적 없이 돌아오는 것이 아름다운 발걸음이지 않을까.
문화유산과 관광명소는 물론,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공장소에도 낙서는 존재했다. 서울역 내 무인민원 발급창구 모니터에는 물감으로 보이는 낙서로 이용객들에게 불편함을 줬고, 데이트 명소인 낙산공원 일대는 관광객들이 이름 등 메시지를 남기기에 급급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1980년대 당시 뉴욕시는 지하철의 치안 상태가 형편없었지만,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해 지하철 내의 모든 '낙서'를 지우자 실제로 지하철의 사건사고가 급감했다.
자연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때와 장소를 가려 '낙서'를 한다면 그것은 얼굴 찌푸려지는 끄적임이 아니라 미소가 지어지는 '힐링 글귀'가 될 것이다.
thelong0514@tf.co.kr
사진영상기획부 photo@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