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선화 기자] 지난 1994년 이래 최악의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 올 여름. 40도를 넘나드는 체감온도에 불쾌지수를 더해주는 것들이 있다. 뜨거운 햇볕, 아스팔트의 열기, 자동차의 보닛, 그리고 바로 이것. 에어컨 실외기다!
"뜨거워, 뜨거워~!!"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여럿이 골목길을 지나가며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담배를 피우던 몇몇 시민이 잠시 힐끔거리다 말았고, 차 키를 정리하던 주차관리원은 자주 있던 일인 양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학생들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시끄러운 기계음과 뜨거운 바람만이 남아 있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흘러나온 것들이다.
지난 2012년 개정된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는 에어컨 실외기는 도로면으로부터 2m 이상의 높이에 설치해야 하며, 열기가 인근 건축물의 거주자나 보행자에게 직접 닿지 아니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내용은 에어컨 실외기의 외관에도 '경고'라는 문구와 함께 적혀있다.
취재진이 지난 20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시내 곳곳을 취재한 결과, 가게 앞 혹은 근처 골목길 아래서부터 바람이 올라오는 실외기는 허다했고 성인의 키보다 낮게 설치된 실외기는 굳이 찾지 않아도 눈에 많이 띄었다.
왜 규정을 지키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설치가 쉽고, 비용은 절감되고, 설치에 관한 명확한 법적 규제도 없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설치된 실외기는 불쾌감만 유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방재난본부에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에어컨 화재의 76.7%가 실외기와 실내기를 연결하는 배선 부위에서 시작됐다. 그만큼 관리가 필요한 부분인데, 실제 여러 곳을 취재한 결과 길가에 설치된 실외기 주변에는 낡은 배선과 함께 담배꽁초, 젖은 걸레, 각종 쓰레기, 심지어 LPG 가스통이 설치된 곳도 있었다. 아찔한 광경이었다.
에어컨 실외기 화재는 전기배선 이상이나 먼지에 불씨가 붙어 일어날 확률이 높다. 특히 먼지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길거리 실외기는 가정 실외기보다 더 관리가 필요한데 실제로는 더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에어컨 관리 전문가들은 "실외기 화재의 대부분이 전기 배선에서 발생하므로 전선의 피복이 잘 감싸져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피복이 벗겨져있다면 정말 위험하다. 또 먼지가 쌓이면 화재에 취약하므로 잘 점검해야 한다"고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에어컨 실외기를 제대로 설치하고 관리한다면 지나가는 보행자가 불쾌할 일도, 화재위험에 노출될 일도 없다. 무더위에 잠 못 드는 밤이 늘어나는 요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누리기 위해선 그만큼의 책임도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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